가물가물 내 애칭

미술치료수업

by 수필천편

그림 수업이다. 풍경이나 인물화나 그런 그림들은 아니다.


수업에 참여해 보니 오늘 주제는 애칭 정하기다. 말하자면 내 별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내가 정했는데도 집에 돌아와서 기억하려니 떠 오르지 않는다. 내가 노트에 기록이라도 해놓았는가 싶어 뒤적거려 보지만 쓴 흔적이 없다. 아마 별명들을 각자 정해서 내 이름과 별명을 선생님께 주었을까? 혹시 휴대폰에 찍어두었나?. 다음 주에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싶다. '그것 하나 기억 못 해?' 하는 심정이 저절로 솟구친다. '수필천편'으로 정했으면 다행이고, 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그때 그 순간 그것이 제일 적합하다고 지었겠지 생각한다. 다 나와 관계된 것인데 아무렇게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치매'가 어떻게 오류를 범했을지 알 수 없으니 두고 볼 일이다. 강의 장소도 요일에 따라 강의실이 달라진다. 1층과 3층이다. 오늘 들었던 수업교실을 다른 수업으로 다른 날에 사용하기에 어쩔 도리 없이 수업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나야 평생학습관 수업을 자주 들었기에 바뀐 그 위치에 익숙하다. 사군자 수업을 하는 바로 그 근처다. 물론 요일은 다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은 그림을 보고 해석한다. 그 말이 맞을지는 그린 사람 마음에 달리지 않았을까? 대문이 크다, 대문이 작다, 창을 열어두었다, 창을 닫고 있다 따위의 것들을 가지고 프로이트 비슷하게 해석한다. 그게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그린 사람만이 알 터이다. 물론 선생님의 그림 해석이 맞을 수도 있을 터이다. 문제는 내가 뭘 그렸는지 기억이 희미하다는 데 있다. 지금 떠오르는 기억에는 집을 그렸다. 넓은 기와집도 있고, 몇 층 건물 집도 있는데, 기억에는 지붕이 둥근 초가집 그림이다. 기와집 그림도 있는데 말이다. 아니다. 기와집도 그렸나? 보면 알 일이다.


다음 주 수업 시간은 바뀐 강의실 3층 303 강의실이니, 신경 써서 제대로 찾아갈 일이다. 그 강의실이 아니라도 3층은 맞으니 여기저기 열어보면 된다. 벌써 시간이 오후 다섯 시 오십 오분이다. 평소에 걸어 다닌 길, 버스로 움직이니 내릴 정류장이 혼동된다. 결국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그 한 정거장을 오롯이 걸어간다. 그리 멀지는 않다. 다음 주에는 제대로 내려서 제대로 갈 일이다. 오후의 일상이 어두움에 묻혀간다. 정확히 여섯 시다. 하루 낮시간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창밖이 깜깜하다 못해 칠흑 같은 어두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