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부장의 역할
흘러가는 이 순간을 기록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내 사진보다 남들의 사진이 많다.
내 사진? 거의 없다.
박물관에서 '시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 각자의 시낭송이다. 그에 앞서서
풍악을 울린다. 일종의 팡파르다.
내 역할이 시작된다. 큰 무대에서 회원들
시낭송하기에 바쁘고 나는 한 컷 한 컷
사진을 찍어간다. 이 순간을 기록한다.
내가 내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시간은 정지될 수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오늘 나의 모습은 박물관 무대에 두고 왔다.
같이 왔던 동료는 먼저 바삐 돌아가고, 나는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천천히 걸어간다.
시장거리를 지나서야 정류장이 보인다.
익숙한 811-1 버스에 오른다.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 띄엄띄엄 앉아있다. 누군가 어깨를 친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사람이다. 고개를 갸웃댄다.
산에서 봤다며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다.
그의 활달함이 부럽다. 그리고 그의 기억력도.
일상에서 벗어난 더 바쁜 오늘 하루가 내 뇌를 잔뜩
자극했는지 글을 쓰는 데도 눈이 무거워진다.
눈을 찡그려보지만 조금씩 멍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