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고통의 수위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특질이다.
더군다나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도 기억력이란
특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성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까막눈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진다.
깨어져 금이 간 안경을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면서 번번이 책장을
앞으로 다시 넘기는 일이 자주 있다.
읽었던 것이 까맣게 지워진 까닭이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게 마련이지만
잊어버린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
글의 흐름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그 생각마저도
다시 추슬러보곤 한다.
한 번의 일감을 다시 새김질하듯이
수없이 되뇌어가며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