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도 생각나지 않는다.
전시회에 갔다. 나의 전시회가 아니다.
사군자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작품 전시회이다.
물론 많은 작가들 작품 가운데 선생님 작품도 여러 점
전시가 되어있다.
그림을 배우는 날이면 선생님의 그림 퍼포먼스가 열리고
배우는 우리들은 그림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직접 필력을
곁들인 작품들을 한 점씩 수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선생님의 선택으로 그려주는 작품을 기다린다.
나도 그 가운데 한 명이기에 그림 두 점 정도를 받았다.
이제 수업이 곧 끝나가는 시기이기에 전시회에 걸린
선생님 작품을 보러 길을 나섰다. 걸어가기엔 먼 길인 데다,
제대로 길을 찾을 자신도 없다. 결국 택시행이다.
가는 길 눈여겨보지만 휙휙 지나가는 풍경들이
낯설어서인지 머릿속에 길이 그려지지 않는다.
분명히 예술의 전당을 가보았지만 길이 낯설어
전혀 이 길이 이전에 간 길인지 자신할 수 없었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서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의 전당이다. 그제야 한숨을 쉬며 건물로 들어가고
1층과 2층을 돌아다니면서 그림들을 한 편씩 감상하며
언제나 저렇게 그릴 수 있을지 부러움 속에서 돌아다녔다.
선생님의 작품을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고 그림 두 점을
익숙한 눈길로 바라본다. 평소의 그림보다 거칠다. 아니
거칠다는 말보다는 날카로워 보인다고 말해야 할까 싶다.
그림 한 곳 한 곳에 힘이 들어간 느낌이다.
전시회는 2층에도 있었다. 서예 작품도 있고, 몇몇 그림도
있다. 넓지는 않아서인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상의 포인트를 찾으려 노력했다.
2층은 사람들이 적은 편이어서 편하게 그림들을 바라본다.
시간이 제법 지나 이제 돌아갈 시간, 밖에 나가니 낯설움이
다가오는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걸어가면서 지나치는 택시를 탈 생각으로 걸어간다. 많이
걸었는데도 택시가 통 보이지 않는다. 외곽이기에 그럴까?
천천히 걸어갈 생각으로 길을 걷다 보니, 택시는 오지 않고
낯선 길거리들만 주위에 잔뜩 보인다. 찾아갈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고집 피우며 움직이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고, 알 수도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그 대답들이 내게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서로 다른 인종이 대화하는 것만
같다. 결국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아내가 오빠를 부르고
찾아온 형님 차에 몸을 싣는다. 내 우둔함이 두 사람의
불편을 가져오고 만 것이다.
집에 가는 길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채로 결국
형님의 차에 실려서는 집으로 간다. 형님의 가벼운 핀잔이
뼈아프다. 왜 이렇게 부족한지, 판단조차 흐린 지 말이다.
전화부터 했어야 했는데, 찾아갈 수 있다는 아집 때문에
감상 잘하고 가는 길을 나 스스로 망쳐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