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는 예술의 전당
성공은 실패한 만큼 채워진다.
금요일, 사군자 수업을 갔다.
늘 타는 버스에 올라서서 내리기 편하게 앞자리에 앉는다.
붐비는 버스는 아니기에 통로는 넉넉한 공간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내리는 정류장을 놓칠까 봐 내리는 곳 바로 앞에 앉는다.
행여 길을 잃고 수업에 늦을까 봐 빨리 가다 보니,
오히려 늘 이삼십 분 일찍 강의실에 도착하게 된다.
늘 보이는 두 세 사람들 언제나 붙박이처럼 앉아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붙박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이다.
연습지를 꺼내놓고 화통을 열어 붓이며 먹이며, 꺼내놓는다.
그리고는 물도 한편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붓을 물에 적신다.
물에 적신 붓을 들고는 넓은 연습지에 글씨부터 써보고 있다.
적신 물의 글씨가 연습지에 물들어 보이다가 말라버린다.
조그만 그릇에 먹물을 붓고, 붓으로 조금 빨아들여 글씨를 쓴다.
주저하는 손의 떨림처럼 글씨가 닮아간다. 삐뚤빼뚤하다.
마음이 아직 평온하지 못해서인지 글씨가 제대로 붓을
놀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다. 이 상태가 나의 본모습이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을 쳐다본다. 그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연습하며 그리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글씨가 아니라
그림의 획을 긋는 연습을 한다. 오른쪽, 왼쪽, 위쪽, 아래쪽이다.
나처럼 떨리지는 않고 있다. 제법 힘이 들어가 보인다.
가끔 체본을 받을 때, 체본 지를 빌리고는 한다. 그림을
선생님에게 받을 때 쓰는 용도이다.
칠판에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림을 받을 순서나 마찬가지다.
칠판에 '예술의 전당 감상'이 적혀있다. 그 순간 기억이 난다.
오늘은 수업을 일찍 마치고 예술의 전당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그 순간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떻게 거기까지 가지? 돌아올 때는
어떡하지? 몇 분 사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밖을 나서니 다행히도
선생님의 차를 같이 타고 예술의 전당에 가게 된다.
한 번 미리 와봤던 예술의 전당 한편에 사군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하나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의
전시된 작품은 쑥스러운지 건너뛴다. 그렇게 감상을 하며 설명까지
듣는 전시회 감상이 혼자 볼 때보다는 더 확연하게 그림을 보게 된다.
혼자서 봤을 때보다 그림이 훨씬 더 잘 보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밖을 나서면서 흩어지는데, 당혹스럽다. 근처에 갈 수 있는 정류장이 없다.
'어떻게 집에 간다지?'
그런데 같이 나왔던 나이 든 분이 태워주겠다고 한다. 한참을 가다가
다행히도 아는 정류장 쪽에 내려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제법
기다리다가 버스를 탄다. 그 순간 한숨이 저절로 쏟아진다. 아는 버스
노선을 타니 긴장이 풀리는 탓이다.
혼자 갔던 예술의 전당보다 같이 몰려다니며 선생님과 보는 그림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게다가 집까지 갈 수 있게 주변 정류장까지
태워준 분의 마음도 내 마음에 고맙게 젖어든다.
버스에 내려 발을 딛는 순간 그날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림의 감상이나 선생님의 수업보다,
한 사람의 온정이 더 따스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하루가 되었다.
마음속에 가시 찔리듯 남은 상처가
집으로 찾아오는 길을 망쳤던 절반의 실패가
재도전 한 끝에 절반의 성공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