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말을 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by 수필천편

처가 식구들과 점심도 먹고 차도 마셨다.

헤어지고 집에 와서 아내가 하는 말,

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늘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거라고 했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쌓아 두기만 해서 뇌에 찌꺼기가 뭉친 거라고 했다.

평생 말 한마디 안 했으니 오죽하겠냐고 한다.(아내는 과장이 심하다)

속이 터진다고 한다.


치매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소통이 안 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미안하단 말은 듣기 싫다고 한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제발 말 좀 해!"

"음..."



나는 왜 말이 없지? 머릿속엔 이런저런 말들이 빙빙 도는데,

지금 이 순간 이 말이 적당한가? 엉뚱한 소리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채 그저 입속에서

글을 쓰듯 소리 없는 입만 놀린다.


뜬금없는 말로 즐거운 순간을 식힐까 봐 조심스러운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도 늘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로 그다지

소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에도 이런 말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소통이란 함께 눈을 마주치고, 서로 웃으며 말을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너무 말 없는 학창 시절이 그대로 굳어져버린 까닭일까?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지만, 내가 다닐 적에는 국민학교였다.

지금은 학교이름만 떠오를 뿐 어떠했는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건 한 가지가 있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학교를 빠지고 놀다 심심한 나머지 학교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인지, 선생님이었는지 손에 잡혀 교실로 끌려갔다.

선생님께 꾸중 들으며 맞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뒤로는

어쩔 수 없이 착한 학생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말은 잘 듣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