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무겁다.
루틴이라고 하던가?
했던 대로 하는 것이 결국 나한테는 가장 잘 사는 길이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나서야 더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신혼을 꾸려가면서 집안 가계부는 내가 하나하나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주 꼼꼼히도 썼다. 영수증까지 하나하나 다 붙여놓았다.
그 루틴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아내가 있어서 다행히도 기록하는 것을 다 놓은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을 함께하면서 가계부만 아니라, 일기며 감상문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꽤 많이 써 나갔다.
비록 서투르긴 했지만 영어로 일기도 쓰고, 몇몇 영문소설과 철학논문도 번역해 나갔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그 전작을 아내와 함께 읽으며 감상을 나누었다.
그렇게 내내 철학과 문학을 이야기하며, 남은 평생을 지적인 남자로 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걸 날려 먹고, 한순간에 머릿속이 텅 빈
그야말로 빈털터리처럼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를 아이처럼 다독거려 주었다.
아내가 아니었으면 나는 '쓰는 인간'으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기록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영혼까지 갈아 넣은 독박케어" 덕분이다.
"꿈일기를 써봐, 그게 좋대!"
아내는 병든 몸에 좋은 것이 산삼이래, 흑염소래, 하듯이
치매가 좋아지기만 한다면 뭐든지 시도해 보자고 한다.
그렇게 아내의 권유로, 나는 한 동안 일어나자마자 꿈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쓰지 못한다. 생각나던 간밤의 꿈도 눈을 뜨면서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망각과 소실 속에서도,
꾸준히 소설을 조금씩 써 내려가고, 일기를 쓰며, 각종 감상문까지 써나간다.
그런 가운데 결실을 거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브런치 작가로 승인이 된 일이다.
처음에는 치매에 걸린 화가처럼, 나도 자화상을 그림이 아닌 글로써 그려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물론 아내의 권유가 있었다.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서 브런치 서랍에 보관했다.
오십여 편이 넘었을 때 작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번만에 승인이 났다.
"역시 자긴 대단해!" 아내가 추켜 세워주었다. 내겐 아내의 찬사가 제일 큰 칭찬이다.
남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글쓰기뿐인데, 아내는 그게 가장 큰 거라고 다독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시작했다. 수필을 천 편 정도를 쓰고 나면 나의 뇌도 깨어날 것이라고 아내가 독려해 준다.
나를 '글 쓰는 기계'라고 아내는 부르지만, 나에게 루틴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루틴을 끊임없이 이어가도록 독려해 주는 아내가 없으면,
나는 당장 멈춰버린 녹슨 기계에 불과할 뿐이다.
치매가 아니라면, 가볍게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매는 전혀 얘기가 다르다. 치매는 그야말로 가진 것조차 텅 비어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가 덜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워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거울지라도 가져가고 싶다. 등짐으로 가득 채워 가고 싶다.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과 추억의 무게가 어떤 모습을 가지더라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그 모든 것들로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은 오히려 가벼워질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기록을 무겁게 남겨야 한다.
아내는 오늘도 나의 머릿속을 향하여 우렁차게 명령한다.
"동무! 더 가열차게 기록하라!"
아내를 위해서라도 나는 더 맹렬하게 기록에 복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