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지만 날다람쥐

속리산 트레킹

by 수필천편

일찍 일어나 택시를 탔다.

이른 새벽, 물 한잔 마실 겨를도 없었다.


어둠 속을 달려 늦지 않게 속리산 트레킹 길에 합류한다.

약속장소에 가니 전세버스인듯한 차가 기다리고 있다.

차에 오르니 사람들이 절반 정도의 자리를 벌써 차지하고 있다.


지난번 태백산 가서 고생한 이후로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던 아내가,

또 홍보부장의 말에 솔깃했다. 이번에는 산꼭대기는 안 가고 평지를 걷기만 한다고 했단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다들 왔는지 트레킹 신청자들의 이름을 주욱 읽어댄다.

내 이름도 아내의 이름도 크게 부른다. 아내는 그게 시끄러웠나 보다.

그렇지만 정작 아내는 홍보부장과 끊임없이 소곤소곤이다.

얼마나 둘이 나를 사이에 놓고 주고 받았는지, 어느새 말티재에 다 왔다고 했다.


버스가 멈춰 서고 다들 차에서 내린다. '시산제'를 지낸단다.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눈발이 흩날렸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날씨도 차가운데 다들 진심이다. 나는 제일 뒷줄에 섰다.


돼지머리까지 올라앉은 상차림이 거하다. 식순에 맞춰 제법 길게 진행된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하며 모두들 다 같이 절도 여러 번 올린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좋은 날만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을 것이다.


나는 함께 절하면서 아내와 나의 건강과 행복을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아내와 나만의 기원제를 지낸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속리산에 온 것은 충분하다 싶었다.

그렇게 신심을 다한 '시산제'가 끝나고 시루떡 한 덩이씩 받아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어느덧 속리산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꽤나 길게 걸어가서야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었다.

'세조길'부터 시작해서 상환암까지 간다고 했다. 삼삼오오 몰려 갔다.


아내와 나도 부지런히 걸었다. 가면서 우리끼리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일행들보다 뒤처졌다.

일요일인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아내와 나는 호젓하게 둘이 다녔다.

어느 만큼 가다가 아내는 발뒤꿈치가 아프다며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법주사에 갔다가 박물관도 들렀다.

사진도 찍어가며 천천히 둘러보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갔다.

먼저 온 일행들도 의외로 많았다. 조금 기다리다가 인원이 다 왔다며 점심식사를 하러 출발했다.


버스가 멈추고 또 단체로 내렸다.

바로 근처에 식당이 있다. 먹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인심이 되는 법!

모두들 즐거운 웃음이 뒷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유흥의 시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노래 부르는 삼매경에 빠져있다.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박자가 터질 듯이 들리는데 정말이지 경로를 알 수 없는 노래투성이다.


소음에 가까워지는 노랫소리가 슬슬 지루하다 못해 지겨워진다.

얼른 차에 올라 조용히 눈을 감고 편안한 시간을 갖고 싶다.

멋진 풍경이 소음에 지쳐 시들어갈 지경이다.

세속의 소음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집에 가기까지 조용한 고요 속에서 풍경을 눈에 담고 싶을 뿐이다.


시끄러워도 나는 틈틈이 기록했다.

글을 쓰다가 식당 뒤쪽으로 나갔다.


개 두 마리가 사이좋게 앉아있다. 순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우리가 다가가자 제자리걸음을 하며 얼른 오라는 듯 고개를 주억 거렸다.

계단을 올라가 한 마리씩 붙잡고는 쓰다듬는다.

털이 부드럽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도 찍어본다.

개를 좋아하는 아내가 큰 개를 끌어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람들이 노래 한 자락씩 돌아가며 다 불렀는지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개들과 인사를 했다. 다들 다시 차에 올랐다.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산신제도 좋았지만 제일 즐거운 건 박물관에서였다.

많은 유물은 없었지만 둘 만이 있다는 마음에 즐거웠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긴 시간보다, 짧은 그 시간이 이번 트레킹 가운데 가장 행복했다.


아내는 버스 안에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4월 산행은 지리산이라고 했지만, 아내는 시큰둥했다.

나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려니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의 즐거움이 아내에겐 힘든 하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같이 걷던 길, 버스 타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

옆자리에 앉아서 피곤하게 앉아있는 아내를 본다. 마음 한편이 시큰해진다.


집에 왔을 때, 아내는 잘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눕는다.

웅크리며 자는 아내의 둥근 마음속에는 미처 꺼내지 못한 어떤 말이 담겨있을 것 같다.

이불을 좋게 덮어 주고 싶지만 깰 까봐 그냥 그대로 놔둔다.


다시 평범한 하루가 돌아올 내일이 기다려진다.

특별한 날보다 늘 똑같은 일상이 행복한 하루이지 않을까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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