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할머니의 서랍(사이토린 우키마루 글/구하라시 레이 그림)
나무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무 이름은 잘 모른다. 집 앞에 익숙한 나무들이 쭈욱 늘어섰지만 그 나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나무는 이 봄에 흰 빛의 눈부신 꽃을 피웠다. 그때까지도 나무 이름을 모르다가 어느날 지난해 그 나무에게서 푹신하고 옅은 주황의 열매가 열리는 것을 생각해냈다. 비로소 살구나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우리의 가치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에 달려있지는 않다. 그리고 나라는 상자 안에 무엇을 담든 나는 나이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레미 할머니의 서랍’을 읽다보면 마치 조선시대의 작자미상의 소설인 ‘규중칠우쟁론기’가 떠오른다. 혼자 사는 레미 할머니에게는 작은 서랍장이 있다. 그리고 그 서랍장의 맨 아래에는 할머니가 사용하지 않는 유리병들, 실 뭉치, 쿠키통, 노란 리본등이 들어있다. 새롭게 들어 온 상자는 파리에 사는 딸이 보내준 초콜렛이 들어있었던 상자이다. 모두들 할머니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유리병을 꺼내고 딸기잼을 넣었다. 큼직한 설탕병에는 맛있고 예쁜 피클을 넣었다. 노란 끈은 마을 끝자락에 사는 레오 할아버지네 아기 고양인에게 묶어주었다. 서랍에 사는 다른 병들은 자신들은 어디에 쓰일까 생각하며 기뻐했다. 마을 장날 할머니의 잼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병도 그렇고 포장도 그렇고 언제봐도 참 멋지군요.”
할머니가 빨간 털실은 레오 할아버지의 모자가 되어있었다.
작은 상자는 텅 빈 서랍 안에서 외로웠다. 그런데 어느날 레오할아버지가 이야기 한다.
“정말 좋은 것이 있군 그래”
“레미씨 이 상자 좀 가져갈게요.”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나서 레오 할아버지는 꽃을 가져와서 청혼을 했다. 상자안의 유리병들은 꽃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드디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반지가 있었다.
“어머나, 반지 상자가 됐네!
어쩜 이리 근사할까!
이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 안에 든 초콜릿이 꼭 보석같다고 생각했답니다.”
웃프게도 이 그림책의 상자를 보면서 내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해서 중년 이후의 생활을 할까?하고 고민하던 내게 가깝게 다가온 그림책이다. 물론 안에 무엇을 넣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그러나 나 역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선하게 쓰임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나라는 나무는 이미 몇 번의 꽃을 피웠으나, 다시 좋은 열매와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미지는 '레미 할머니의 서랍'(사이토린 우키마루 글/구하라시 레이 그림)에서 가져왔습니다.
*배소이의 키트:
딸기잼 토스트/ 탄산수/베이비 파우더 향의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