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비슷한 이야기)로 읽는 '문화와 매너이야기(두번째 4월이야기)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를 지나도 나무는 여전히 혼자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을 함께 다니거나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화장품 이야기를 한다.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가기도한다. 그러나 학교가 끝나면 나무는 곧바로 학교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1층에 있는 넓고 쾌적한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다가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 나온다. 요즘 들어서는 세계문화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나무는 고모와의 만남이 더욱 기다려졌다. 나무와 숲이가 고모에게서 받은 과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나무는 학교의 도서관에서 이번 만남을 위해서 ‘한국 설화와 민담집’을 빌려왔다. 도서관 사서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으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설화와 민담을 모아 놓았다. 고모가 오기로 한 날, 나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지난번과 같이 고모는 거실에서 커다란 가방을 풀고 있었다. 고모의 가방에선 또다시 먼 나라의 냄새가 솔솔 났다.
“고모! 여기 책 가져왔어요.”
나무는 고모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보자마자 책을 내밀었다. 이미 집에 와 있던 숲이가 가져온 태극기 자석도 거실탁자위에 놓여있었다. 자석을 보니 나무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지난겨울에 광화문의 ‘충무공 이야기, 세종이야기’를 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엄마가 숲이에게 사주신 선물이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고모의 말에 나무와 숲이는 대답이 없었다.
“숲이는 친구들과는 많이 친해졌니?”
요즘 숲이는 학교가 끝나면 늦게까지 혼자서 풋살 연습장에서 공을 차고 온다. 나무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숲이가 혼자서 공을 차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영어나 태권도, 피아노등을 배우러 간다. 그러나 나무는 도서관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고, 숲이는 그저 공을 찰 뿐이다. 한낮의 풋살 경기장에는 아무도 없다. 나무는 그럴 때면 근처 계단에 앉아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숲이와 함께 집까지 걸어오곤 했다. 숲이는 고모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럼, 나무는?”
“고모와 공부하려고 세계의 문화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나무의 이야기에 기뻐하는 고모는 세상은 다양한 사람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소통은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가는 것이거나 내가 좋은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추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무는 고모가 이야기 하는 ‘소통과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특히 소통은 서로 맞추어가는 것이라는 고모의 이야기를 계속 생각했다.
고모가 이번에 나무와 숲이를 위해서 준비한 우리나라의 문화는 한옥체험이었다. 근처에 있는 공주 한옥마을에 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한옥의 형태 중에서도 초가집을 선택했는데, 세 사람은 특히 온돌방이 기대가 되었다. 구들장을 만들어서 불을 때고 그 온기로 생활한다는 것이 아주 궁금했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는 좀 오래 걸리겠지만 세 사람은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에 금강이 보였다. 강은 햇볕을 받아서 반짝였다. 강물의 빛을 받아서인지 유난히 반짝이는 햇살 한줌이 나무와 숲이의 머리에 활짝 쏟아졌다. 서서히 달리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고모는 말했다.
“문화는 특정한 집단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그 속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나타난 생활방식이야. 문화의 속성은 언어, 종교, 제도, 풍속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과 가옥구조, 경지 유형, 농기구 등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있어. 물질적인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가 지난 번에 먹은 젤리인 로쿰과 같은 거요.”
나무가 말을 하자 지난번에 먹은 로쿰의 장미향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맞아. 음식문화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 프랑스의 달팽이요리인 에스까르고(Escargot)나 일본의 스시, 터키의 케밥(kebap) 그리고 베트남의 국수인 포(pho)와 같이 아주 그 나라 고유의 것들 말야.”
나무는 또 말했다.
“그리고 한복과 같은 것, 그리고 한식과 같은 것도 있죠.”
“맞아. 의복문화로는 베트남의 아오자이와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치파오와 같은 것도 있어. 그리고 주거문화로는 알레스카의 이글루나 동남아시아의 수상가옥들, 유목생활에 필요하게 만들어진 몽골의 게르 등이 있지. 모두들 그 나라의 기후나 환경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들이야. 그런데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단다.“
이번에는 숲이가 이야기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연관된 것들이죠?”
“일상문화라고도 하는 것들인데 중국의 ‘관시’라는 것과 일본의 ‘혼네’, 태국의 불교문화, 이집트의 ‘눅타’와 같은 것들이 있어. 모두다 그들의 삶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것들이지. 나는 오래전에 티베트의 천장 또는 조장이라는 장례문화를 듣고 아주 놀란 기억이 있어. 그리고 인도의 장례풍습이나, 프랑스의 ‘페르라세즈(Père-Lachaise)’ 같은 것도 말야.”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새 버스는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멀리 한옥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단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벌써왔네.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를 또 해줄게.”
고모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이야기했다. 나무와 숲이는 뛰어서 들어가면서 크게 이야기를 한다.
“난 우리나라 한옥이 제일 멋져. 다른 나라 집들은 다 시시해.”
“맞아! 나도”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예약한 초가집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놓으니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넓은 마루에 앉아서 고모는 말했다.
“얘들아! 우리 한옥 참 멋지지. 그런데 우리가 문화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 흔히 문화를 대하는 태도에는 문화사대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와 같은 태도가 있어, 조심해야 할 태도이지.”
고모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자기 문화의 관점에서 다른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자문화 중심주의라고 한다고 했다. 자문화 중심주의는 어떤 집단에도 이런 경향은 있을 수 있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와 같이 나갈 염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문화를 부정하고 다른 문화를 좋게 평가하는 문화사대주의도 있다고 했다. 문화사대주의는 민족문화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여 문화적인 주체성을 상실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나무는 고모에게 말했다.
“아까 우리한옥만 멋있다고 한 말 취소요. 그럼 우리가 다른 문화를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들의 사정을 고려해서 각기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좋겠지. 그것을 문화상대주의라고 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각 문화는 문화의 독특한 환경과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야. 사회의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여 문화를 판단하며, 어떤 문화요인도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다는 견해이기도 해.”
세 사람은 초가집의 한 쪽 방에 자리를 잡았다. 방은 넓고 아늑했다. 그때 밖으로 한복을 입은 분들이 지나다녔다.
“와! 한복은 언제 봐도 아름다워요.”나무가 말하자 숲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누나는 한복이 얼마나 불편 한지 몰라?”
나무와 숲이의 이야기를 들은 고모는 이야기 했다.
“한복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편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옷이야. 그리고 당시의 가옥구조인 한옥과도 가장 어울리는 옷이지. 한옥의 구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이해한 옷이라고 할 수 있어. 미국의 서부시대 당시의 옷도 마찬가지지. 카우보이 복장이라고 하는 그 복장역시도 그 시대의 생활상, 문화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옷이야. 그래서 한복은 전혀 불편한 옷이 아니었다는 거야.“
“하긴 서부시대에 한복과 같은 옷은 어울리지 않았겠죠. 그리고 한옥에 카우보이 복장도 불편했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래서 세계문화를 배우지. 그리고 그것을 알고 인정해주는 것이고 말야. 매너를 배우는 이유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야. 우리문화를 알리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지.”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진심으로 그들에게 대할 수 있겠죠.”
나무와 숲이는 고모의 말을 통해서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친구에게 말을 걸기 힘든 나무에게는 힘든 일이다. 친구를 때리고 놀린다는 이유로 자주 반성문을 써가는 숲이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고모는 무조건 누군가를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모든 것은 상호간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어떤 한 나라이건 사람이건 지금의 그 모습이 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상황들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한다면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문화상대주의가 있는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때에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요소를 고려한다는 것이야. 그러나 모든 문화에는 우열이 없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의 문화상대주의를 이해해야 돼.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에도 한계가 있어. 예를 들어서 태국의 파동족 여성들의 목 늘이기나 아프리카 여성들의 할례도 보편적인 가치에서 보면 좀 곤란하지. 사라진 중국의 풍습인 중국의 전족이나 인도의 사티와 같은 것도 그랬겠지. 인류가 보편적으로 중시하는 인간존엄의 가치가 문화상대주의의 이념과 충돌할 때는 어떨까?
“우선은 인간이 존엄한 게 우선 아닐까요?”
숲이가 말하자 나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것 역시도 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데 아! 너무 어려워요!”
고모는 웃으며 말했다.
“각 문화 간의 차이는 다른 지역이나 국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말이야.”
고모에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무는 생각했다. 문화를 아는 것은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는 것과 같다고. 다른 이들과의 만남에도 그런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도 말이다.
고모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무와 숲이는 한지를 만드는 곳을 가서 체험을 해보았다. 저녁식사로 비빔밥을 먹었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맞이하는 밤은 편안하고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