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인어공주
-공유저작물 창작공모전 '인어공주'-
넓고 넓은 바닷속에는 하늘의 별빛을 유난히 많이 받아서 ‘별빛 왕국’이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별빛 왕국’의 근처에는 인어들만 사는 나라가 백여 개쯤은 있죠. 인어들의 삶 역시도 지상의 인간들의 삶과 비슷하답니다. ‘별빛 왕국’은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왕이 세상을 뜬 지 아주 오래되었고, 공주와 그녀의 어머니와 남동생만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한 왕국이었기에, 백성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나라로 이주해버렸답니다.
돈이 없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공주는 학교 대신 이웃 나라로 알바를 다녔습니다. 그렇게 알바로 번 돈은 모두 다 어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살림도 하고 공주의 남동생의 학비를 내고는 했지요. 공주의 남동생은 또래의 다른 학생들과 같이 그들의 세상에서 필요한 실용적인 학문들을 배우곤 했어요.
공주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학교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늘 가지고 있었지만, 가족에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답니다. ‘달빛왕국’의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기도 하고, ‘햇님 왕국’의 휴대폰 가게 앞에서는 호객행위로 손님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가장 잘 사는 나라인 ‘우주왕국’의 고깃집에서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고기를 구워주기도 했지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매일이 고단한 하루였지만, 공주는 자신이 벌어 온 돈에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 때문에 하루하루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깃집의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사장이 들어왔어요. 사장은 ‘별빛 왕국’에서 이 나라로 이주해 온 사람으로 공주의 어린 시절 남자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했죠.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서 쉬고 있던 공주는 놀라서 급하게 일어났죠.
“아! 괜찮아, 쉬어. 쉬어. 괜찮아요.”
전과는 다르게 공주에게 존대까지 하며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장은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그런데 말야!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말야. 공주야, 이상하게는 생각하지 말고 들어라. 네가 만일 나의 연인이 되어준다면, 너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의 열 배를 네 가족을 위해서 줄 수도 있어.”
공주의 가족과 가정 사정을 잘 아는 사장은 공주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습니다.
“거절하겠어요. 하지만 이 일로 나는 내 일자리를 잃고 싶지는 않아요. 여기에서 계속 일하겠습니다.”
‘별빛왕국’으로 돌아온 공주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사장의 제안을 거절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며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공주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고깃집은 곧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새로운 일자리는 옷가게 점원이었습니다. 스무 살인 공주와 같은 또래의 여성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공주에게 그들은 그저 가끔 옷가게 손님으로만 만날 수 있는 먼 존재들이었습니다. 공주는 어머니에게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하려 했지만, 곧 그만두었습니다.
어느 날, 역시 알바를 하고 오다가 공주는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큰 휘오리에 휩싸였습니다. 멀리 멀리 어디론가 떠올라 갔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물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세계는 너무나 밝고 반짝였습니다.
'아! 여기가 바로 그 물 밖의 지상의 세계라는 곳이구나!'
해변가에 있던 사람들은 모여서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곧 한 사람이 나와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아름다웠습니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의 횃대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네
결코 그칠 줄 모르고
모진 바람이 불 때 더욱 감미롭고
참으로 매서운 폭풍만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이 감싸준
그 작은 새를 당황하게 할 수 있을 뿐
나는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
허나 아무리 절박해도 희망은 결코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네
-에밀리 디킨슨 , 「희망은 날개 가진 존재」-
공주는 무언가 너무 아름다운 것을 훔쳐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이 오히려 지나치게 무서워서 다시 바닷속으로 재빨리 들어갔습니다. 이후 공주는 지상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의 한 구절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라고 조용히 입 밖으로 소리내어 보기도 했습니다. 꿈에서는 그녀가 그 구절을 낭송하기도 했죠.
공주는 바닷속에서 가장 지혜롭지만 또한 심술맞기도 한 마법사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이 지상의 사람들이 즐기는 '시'라는 것이며, 물 속 세계에서는 배울 수도 접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공주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네가 돈을 벌어 오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하니? 네 동생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이라도 네가 돈을 벌어 와야 한단다.”
어머니의 거절에 상심한 공주는 다시 마법사 할머니에게 갔습니다. 우선 육지로 나가려면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는 공주의 목소리를 탐냈습니다. 그 목소리만 있으면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네 목소리를 내게 주는 대신 너는 다리를 가질 수 있어. 어때? 그렇게 하면 너는 이제 육지에 가서 마음껏 시를 쓸 수도 있어. 동생의 학비와 너희 집의 일 년 치 생활비까지 내가 주겠다. 내가 잘 아는 서점에 이야기를 해 놓을테니, 너는 그 곳에서 일을 하며 공부를 하면 될 거야.”
공주는 마법사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주고, 다리와 돈을 받고 아무 미련도 없이 육지로 나갔습니다. 육지로 가자마자 공주는 할머니가 찾아가라고 한 서점으로 찾아갔습니다. 주인은 공주에게 다락방을 주고 온갖 잡일을 시켰습니다. 공주는 낮에는 서점 일을 하고 밤에는 시집을 필사하고, 외우고 그리고 시를 썼습니다. 그녀가 천개의 작품을 필사하고, 백개의 작품을 외웠을 때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잃어버린 목소리였고, 부르고 싶은 노래였죠. 시의 제목은 ‘자화상’이었습니다. '자화상'을 쓴 후로는 바닷속에서 만난 이들에게 편지형식의 시를 써나갔습니다. 보고 싶은 이도 있었고, 용서하기 힘든 이도 있었지만 시를 쓰자 의외로 마음이 담담해졌습니다. 그들에게 시를 쓰던 어느 날 공주는 깨닫게 되었죠. 만났던 모두가 상처가 가득한 이들이라는 것을요. 서점 주인의 도움으로 공주는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공주의 시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공주는 어느새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공주는 잠수함을 구해서 다시 바닷속 왕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왕국은 여전히 가난했고, 어머니와 동생은 공주가 쓴 시 보다는 그녀가 지상에서 가져온 물건들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공주는 마법사 할머니를 찾아가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할머니에 대한 시를 건넸습니다.
“아! 네 시를 읽고 나니 나를 평생 괴롭히던 감정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이제 네 목소리는 필요하지 않다. 네게 다시 돌려주겠다.”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돌려받은 공주는 잠수함 안에서 시 낭송을 했습니다. 많은 인어들이 낭송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공주는 일 년 중 반은 바닷속 잠수함에서 나머지의 시간은 육지의 서점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물론 계속 시를 쓰면서요.
공주는 바닷속에서 잠수함을 타고 다시 육지로 올라갔습니다. 일하는 서점에서도 시 낭송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서점 창문에는 공주의 시 낭송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공주의 사진과 시 낭송 날짜와 함께 공주의 진짜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시인 ‘우리’의 시 낭독회라고요. 공주의 이름은 바로 ‘우리’였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룬 공주는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