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떡볶이'와의 한 시절

-일상을 나누기-

by junetree

많은 이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도 떡볶이는 소울푸드이다. 요즘에는 그러지 않지만 아주 오랫동안 하루 한끼는 떡볶이를 먹었었다. 무수히 많은 떡볶이맛집을 찾아다니고, 밀키트나 즉석조리식품으로 떡볶이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직접 만들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게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 떡볶이집이 있다.




거의 30여년전 쯤 나는 국내의 한 항공회사에 객실승무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 근처의 연립주택의 방 한 칸을 반월세로 얻었다. 그렇게 얻은 한 칸의 방은 십 오평 연립의 작은 곳이었다. 방이 두 개인 집의 주인 부부는 어린아이 둘과 큰 방 하나를 사용했다. 주방 앞에 있는 작은 제가 쓰는 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당연히 취사도 할 수 없었고, 화장실은 주인 부부가 사용하지 않는 새벽이나 한 밤 등을 이용해서 조용히 사용하곤 했다.

새벽에 나가서 교육이 끝나고 돌아오면 저녁이었다. 입사한 항공사의 교육원에서는 매일 매일이 시험의 연속이었다. 항공운항관련 업무지식, 영어회화, 일어회화, 서비스 마인드와 스킬, 롤 플레이 등등의 준비로 벅찬 나날들이었다. 식사는 교육원에서 먹는 점심이 다였다. 가끔은 동네빵집에서 빵을 사서 커피나 우유 등과 함께 먹기도 했지만 늘 배가 고프고 허기진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간을 지나다가 동네 입구의 작은 분식집을 발견했다.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그곳은 작은 공간에 비닐로 천막을 치고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혼자서 장사를 하시는 곳이었다. 무심코 들어가니 비닐 문 앞에 분식을 판매하는 테이블이 있고, 뒤쪽으로 작은 테이블이 서너 개가 있었다. 테이블은 거의 차 있었지만 가장 안쪽이 비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떡볶이를 주문했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고 하나도 맵지 않은 오묘한 맛의 떡볶이였다. 그렇게 그곳에서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후로는 배가 고프다거나 허기지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퇴근을 하면서 가게에 들러서 ‘그날 분의 떡볶이’를 먹어야만 하루를 완성한 것도 같았다. 늘 앉는 구석 자리 옆에는 작지만 밖이 잘 보이는 창이 있었다. 그 창으로 봄꽃을 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계절을 그렇게 느끼면서 가게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다음날 있을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 가게에서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좁은 방안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덜 외로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가씨는 매일 뭘 그렇게 읽어?”

어느 날 늘 책을 보면서 밑줄을 긋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외우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할머니가 물어보셨다.

마침 다음 날 시험과목이 ‘서비스 마인드와 스킬’등에 관련된 것이라서 ‘고객응대예절’이라고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럼, 나도 좀 배워볼까? 손님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글쎄요. 눈을 마주치고 밝은 음성으로 웃으면서 서비스 하는 것이 좋죠.”

정말 뻔한 답변임에도 할머니는 정말 좋은 것 잘 배웠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이후 수료를 하고 비행을 하게되고,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그 작은 분식집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은 가지 않게 되었다. 이후 승무원으로 몇 년쯤 근무를 한 후 사직한 후, 다른 일들을 하면서 그 분의 생각이 많이 났다. 손님이 많은 편이어서 자리가 늘 부족했던 그 가게의 한편을 떡볶이 한 그릇을 주문하고 문 닫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앉아있던 내게 불편함 없이 내주셨던 그분의 마음이 정말 좋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분의 손님을 향한 진심을 기억하고 깨닫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린 내게 ‘서비스 마인드’를 물어보시고 경청하시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고 편안하게 맞으셨던 그분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공부를해서 나는 어엿한 직업인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어렵고 힘든 시간에 베풀어주는 배려와 진심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갈 수 없는 곳, 그리고 만날 수 없는 분이지만 그 따듯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나는 또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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