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
'클로이'라는 영화가 있다. 줄리안 무어, 리암니슨,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꽤 호화로운 캐스팅이 빛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내용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고도 생각된다. 영화를 본 후 나는 관람객평에 이렇게 썼다.
그렇지.역시 젊고 아름답지만 아무것도 없는 여성은 위험해.
누구에게?
본인 스스로에게.
배경없고 자본없고 낮은 직업의 여성은 아무리 젊고 아름다위도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실제로 젊은데 탄탄한 부모등의 누군가 지켜줄 이가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위험한 행동을 많이 하기도 한다. 어쩌면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이 만나는 세상과 사람들은 일반인이 만나게되는 그것들과는 애초에 다른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똑같은 이들을 만나도 상대에 따라서 태도가 많이 변하게 되니까 말이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저메이카 킨케이드, 정소영 역, 루시, 문학동네, 2021.)를 읽었다.
'같은 (불행한) 조건일 때 어떤 인간은 성장하고 어떤 인간은 그렇지 못한가?"는 인생에 대한 나의 오랜 질문이다. 이다. 이것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고 싶었는데 , 이 책 역시도 질문과 비슷한 여성과 그러한 삶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구원했다.
인상깊었던 문장들이 아주 많았다. 그 중에 몇문장을 적어본다.
어떤 이유로 다시 그곳에 살게 되더라도,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냉혹한 비판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44쪽-
나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는데, 과학자보다는 화가의 방식이었다. 정확도와 계산에 의지할 수가 없었다. 믿을것은 직감뿐이었다.
-108쪽-
나 혼자만의 지옥에서 말없이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내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고 내게 찾아든 감정이 있을 법한 감정이란것도 몰랐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그런 삶에서 벗어났다. 내 과거를 이런식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선이 있다. 그 선은 네 스스로 그럴수도 있고 누군가 대신 그려질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생긴 선이 너의 과거다,. 지금까지 거쳐온 수많은 네 모습과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일들, 더 이상은 네가 아닌 네 모습들, 이제는 빠져나온 상황들, 그것이 네 과거다.
-110쪽-
이 문서들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사실 나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19쪽-
난 혼자서 에밀리나 샬럿이나 제인같은 다른 이름을 지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이름이었다.
-120쪽-
그녀가 오래전 이탈리아에서 샀다는 공책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옛날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찾았다고 했다. 새빨갛게 물들인 가죽 표지에, 내지는 우유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지금의 삶을 위해 그녀의 집을 떠날무렵, 난 내 삶이 백지로 된 책 처럼 앞에 펼쳐져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었다.
-129쪽-
그 때 머라이어가 준 공책이 눈에 띄었다. 침대 곁 탁자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엔 예쁜 파란색 잉크를 채운 내 만년필이 있었다. 난 공책과 만년필을 집어들고 공책을 폈다. 첫 장 맨위에 내 이름을 썻다. 루시 조지핀 포터. 그렇게 써놓고 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었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그저 이것뿐이었다.
-130쪽-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소설이며, 고백문학이다. 성장소설로도 페미니즘 문학으로도 탈 식민주의라는 맥락으로도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지극히 가진 것 없는 한 소녀가 성인이 되어가는 그 시기에 많은 불행한 일들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성장하는 이야기다. 내가 오랜 시간 궁금해왔던 그 성장의 비밀은 여기에서도 살짝 나타난다.
하나의 텍스트 , 사랑하는 작가,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신비와 기적, 일생을 통해서 사랑하는 그 하나의 텍스트를 가진 사람은 궁극적으로는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