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책이 꼭 ‘익숙한 책’일 필요는 없다는 것
책쾌는 내가 올해 가장 기대했던 행사였다.
책쾌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인근의 ‘문화공판장’에서 열리는 북페어 행사다. 예전엔 채소며 과일을 팔던 시장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전시와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책쾌’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떠돌며 책을 유통하던 서적 중개상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행사를 처음 알게된 건 작년 여름이었다. 가족들이 전주에 놀러와서 남부시장을 산책하다가 사람들이 한쪽으로 모여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인파를 따라 들어간 곳에서 처음 마주한 낯선공간, ‘문화공판장’이라는 건물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 공간이 생소해서 한참을 주변만 둘러보다가 도깨비 옷을 입은 스태프 한 분이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에서는 전통놀이인 투호게임을 해서 작은 상품으로 마스킹테이프도 받고, 소원을 적은 부채를 매달아보기도 했다.행사장은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부스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었고 발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부산에서 왔어요.”는 어떤 전시객의 목소리가 들렸을 땐, 이 행사가 지역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날 행사장 안에서, ’같은 주제의 에세이라도 작가에 따라 결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고 이후로 책쾌는 매년 꼭 오고싶은 행사가 되었다. 그래서 올해 행사 일정이 발표되자마자 다이어리에 빨간 펜으로 표시해두고 잊어버리지 않게 포스트잇과 핸드폰 캘린더에도 일정을 적어두었다.
기다리던 책쾌 당일. 역시 사람들은 많았다. 작년보다 더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부스 사이를 오가며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는 건 흔한 일이었다. 입구 왼편에는 지난번 기록문구페어에서 알게된 뒤로 정기구독 중인 ’누가의 기록소‘ 부스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직접 구독중이라고, 덕분에 좋은 기록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작가님께서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해주셨다. 아는 작가님을 보게되어 반갑게 인사드리니까 작년에 옆 건너편에서 멀리서 왔다며 인사를 건네던 사람이 떠올랐다. 작년엔 모든 게 낯설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적응하는 모습이 되었다.
오늘의 내 목표는 두 가지였다. ‘이별’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에세이 한 권, 그리고 평소에 잘 읽지 않던 장르의 책 한 권 구매하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드러운 무드의 일러스트가 삽입되어있는 동화책도 한 권도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올해는 작년처럼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책들보다는 다소 무겁고 철학적인 분위기의 책들이 더 많아서 동화책 사기 위시리스트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취향에 맞는 책을 찾는 게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내 취향 바깥의 책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어려운 단어들이 빼곡히 적힌 아주 두꺼운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나는 별로 흥미가 없어 그냥 지나쳤던 책 앞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부스를 돌아보던 중, 마음에 들어온 책이 두 권 있었다. 하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책 제작자의 인터뷰를 엮은 잡지 형태의 책이었고 다른 하나는 ‘작별의 옆모습’이라는 책이었는데, 오래된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변화. 그리고 낯익은 추억이 담긴 풍경들과 ‘작별’하는 내용이었다. 공간과의 작별, 익숙함과의 작별이라는 감정이 사람과의 이별과도 깊이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를 결정했다.
반면에, 책 제작자 인터뷰집은 꽤 오래 망설였다. 책을 구매할 때 여러 번 읽을 만한 책인지를 기준으로 두고 그렇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대출하는데 왠지 이 책은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읽어보진 않을 것 같아서 결국 사지는 았다. 아쉽지만 비슷한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보자는 다짐을 하며 부스를 떠났다.
책을 좋아하지만, 항상 익숙한 장르인 에세이 위주로만 책을 골라읽었다. 그런데 책쾌에 오면 그런 나의 습관을 살짝 벗어나 다른 결의 책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의 형태나 주제, 필체가 다채로워서 평소같으면 지나쳤을 책들 앞에서도 한참 머물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몰랐던 취향의 조각들을 조금씩 더 알게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은 점은 책 제작 관련인들과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작가나 제작관련인들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매력은…”, “제가 이 글을 쓸 때…”
이런 식으로 건네는 설명은 책에 대한 시선과 애정을 한층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담긴 설명을 듣고 나면 처음에 무심히 넘겼던 책장을 다시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 보게 된다. 내 앞에 서있는 작가님의 인생이 담긴 한 권이라 생각하니, 책에 어떤 숨이 불어넣어져, 영혼이 생기는 것 같았다.
책쾌는 단순히 책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것을 넘어서 나의 독서 습관과 취향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책이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을 너머 가지고 나온 책 두 권 안에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음을 느꼈다.
책쾌 정보 출처
: 김준희기자,"고루한 책박람회" 뒤집었다…MZ 바글거린 '전주책쾌'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2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