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전시 갈까?말까? 고민 중인 당신에게
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서울에 다녀왔다. 바로 전날 자격증 시험을 치르느라 여행 계획은 거의 비워둔 채였지만, 마음은 설렜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마르크 샤갈의 전시.
나는 늘 그렇듯 화가에 대한 사전정보보다는 전시의 주제와 포스터에 실린 한두 점의 그림을 보고 예매를 결정했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그림을 보는 일은 늘 좋다. 그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번에도 그렇게 예매 버튼을 눌렀다.
새벽 5시, 아직 밤처럼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 서둘러 준비했다. 첫차를 타러 나온 시각이 딱 내가 예측했던 시간이었다. 출발부터 흐름이 착착 맞아떨어져 기분이 좋았다.
아침 첫차인데도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캐리어를 끌고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여행자의 얼굴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역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그 짧은 여유를 틈타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강남에서 서초로 넘어가는 교통편, 식당과 카페까지, 기대했던 오늘 하루를 조금은 덜 헤매기 위한 계획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나갔다.
첫 식사 장소로는 "지구당"이라는 혼밥 맛집을 골라두었는데, 도착했을 때 가게는 열릴 기미가 없었다. 직원도 보이지 않았고 가게 앞을 우뚝 가로막고 있는 "CLOSED"라고 적힌 이젤 간판도 그대로였다.
기다려보다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자, 아쉽지만 다른 가게를 서둘러 찾았다.
급하게 찾아 들어간 곳은 "TEBO"라는 우동집이었다. 1인석을 제외한 모든 테이블이 금세 사람들로 빼곡히 찼고, 다행히 혼자인 나는 1인석에 여유롭게 앉을 수 있었다. QR로 주문하는 방식도 낯설고 신선해서 기억에 남는다. 붓카케우동을 시키고, 처음 먹는 메뉴라 어떻게 먹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직원분이 메뉴를 갖다 주시며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대로 따라 우동 위에 놓인 레몬을 살짝 꼬집어 즙을 뿌려주니 상큼한 레몬향이 톡톡 뿜어져 나왔다. 그 뒤에, 간장소스를 붓고 통통한 면발을 풀어서 시원한 국물과 함께 호로록.
입 안에서 짭짤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춤을 추듯 어우러졌다. 첫 번째 가게가 닫혀 아쉬웠던 마음도 어느새 잊혀져, 내내 속으로 '맛있어!'를 외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전시장에 가기 전, 근처 카페에서 샤갈에 대해 간단히 찾아보았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들, 자주 사용하는 색 조합의 의미 등.
그는 러시아의 ‘비텝스크’라는 마을에서 유대인 집안의 가장으로 태어났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샤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사람들’, ‘염소’, ‘바이올린 연주자’는 샤갈이 유년기의 유대인 공동체 문화와 신화적 상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샤갈은 보다 폭넓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이주했고 계속해서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어릴 때 만난 그의 영원한 뮤즈, ‘벨라’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샤갈의 전시에 대한 사운드 해설에서 ‘시대흐름보다 감정에 주목해 달라'는 요청의 말이 있었다. 샤갈의 시간은 평형이 아닌 ‘원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떠나온 고향이 여전히 자주 등장하고, 떠난 이들, 잃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시간을 초월해 그대로 살아 숨 쉰다.
샤갈의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깊게 남은 건 그의 마지막 작업실을 그린 그림이었다. 작업실 가운데에 놓인 화병 속 꽃은, 망명하여 국적을 바꿔야 했던 샤갈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닮아있었다. 그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지금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꽃도 결국은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이동된다."
그 말을 듣고, 샤갈의 삶을 떠올리니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러시아 마을> 이란 작품을 보면 샤갈의 고향인 ‘비텝스크’가 그려져 있다. 샤갈은 고향을 떠나 파리에 이주해서도 여전히 옛집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그리고, 벨라가 죽고 다시 재혼을 해서도 그의 평생의 사랑이었던 벨라의 모습을 그려갔다.
나는 화가들을 보면, 그들의 ‘뮤즈’란 존재도, 마음속에 품은 작별한 '고향'도 예술로 녹여내, 현재의 전시객들에게도 그곳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전함으로서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영원의 시간 속에 소중히 저장하는 것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특히 샤갈의 그림을 보며 감동적이었던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있는 기억'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그는 상실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껴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저 현실을 탄식하거나 무기력에 잠기기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감정을 건져내어 그려냈다. 그 치열한 감정의 흔적들이 지금의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누군가 내게 '왜 전시를 보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보여주기 식 아니냐는 비난의 화살도 담긴 질문이었다. 그땐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내 안에서도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한참 전시장에 대한 의미를 찾다가 비로소 그것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렸다.
스무 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사회초년생’으로 온세상이 버겁게 느껴지던 시절, 나를 전시의 세계로 이끈 건 회사의 실장님이었다.
학창시절 꿈을 놓지 않고, 퇴근하고 나면 미술을 공부하시던 그분은 어느 날 나를 전시장에 데려가 주셨다. 사실, 첫 전시는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오히려 웅장한 그림 앞에서 주눅 들기도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만큼은 분명히 행복했다.
그림이 뭔지도 모르면서 뚫어지게 들여다보았고, 오랫동안 전시장을 떠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나를 압도하는 듯한 캔버스 속 그림 앞에서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날 이후로 도망치고 싶던 삶 속에서 전시는 나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감정이 복잡한 날,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 예술가들이 남긴 시간과 감정들을 어떤 세계 너머에서 가만히 바라본다.
그들은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지만 고통을 창작의 재료로 바꾸었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종종 위로를 받곤 했다.
'고통은 언젠가 비료가 된다'
모든 화가들이 그런 메세지를 건네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브런치에서 연재하고 있는 이 <휴학일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간들의 고통을 비료 삼은 창작물이자, 결국엔 다시 나를 일으키게 한 기록이니까 말이다.
전시장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져서 표를 예매할 용기가 안나는 분이 계시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작품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림을 잘 몰라도, 화가의 이름을 몰라도, 그저 감정의 일부를 포착해 보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시는 조금 어렵고, 그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전시장에 다닌 지 벌써 햇수로 5년이 된 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전시표를 예매하고 직전에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 전시는 그저 감정에 대한 표현이니까 때론 내 안의 이야기를 그 그림에 이입해 보기도 하고,
저 멀리 다른 차원 어딘가에서, 고통을 마음에 깊이 품으며 그림 속에 그것을 담아내고 있을 화가와 소통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저 즐거움을 목표로 가볍게 다녀오면 어떨까.. 하는 작은 제안을 드려본다.
P.S
샤갈의 그림 옆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었다.
꽃: 피어나는 아름다움 너머에 깃든 머물 수 없음의 슬픔. 망명과 이주. 개인적 상징이자 내면의 감정이 바깥으로 피어난 형상.
피어난다는 건 어쩌면 머물 수 없음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흘러가는 감정이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