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럴 때 대화가 필요해

망설임이 생기면 안 되잖아

by 사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남자친구도 마침 운동을 마치고 귀가 중이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까 싶어 만났는데 왠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필요한 게 있어서 함께 마트에 갔다가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자꾸만 내 말이 튕겨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좋게 말하려고 해도 어딘가에 가로막혀 자꾸만 부딪히는 것 같았다. 결국 계산대로 향하는 길에 어떤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 진짜!" 하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때부터 기분이 확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는 데 익숙했고, 무엇이 싫은지조차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트에서 결제를 하고 나와서는 원인 모를 이유들로 가라앉은 기분이 밖으로 티가 나기 시작했고,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산책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언덕 위 공원에 올라가서 바람을 쐬었는데 계속 틱틱거리며 대답하는 내게 남자친구가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말에 기운이 없어"

"몰라"


그냥 집에 가자고 앞장서서 공원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런 나를 붙잡고 남자친구가 말했다.


"이러면 나는 대화를 해야 해"












"이러면 나는 대화를 해야 해"

남자친구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본인이 한 말 중에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있다면 알고 넘어가고 싶고,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화가 난 이유를 물었다.


그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정말로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왜 서운한지도 모른 채 서운해하는 내가 부끄럽고, 불편하고 답답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물어봐준 것만으로도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는 길이 어색했다. 공원을 내려와서 남자친구가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불편한 공기가 맴도는 듯했다.


"우리 조금만 앉아있다 가자"

남자친구가 말했다.












남자친구는 내게 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는지 다시 물어보았고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앉아 못다 한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기분이 상했을 때의 상황을 최대한 떠올려보았다. 정확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모여 결국 지금의 기분을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하려를 그의 태도에 응답하고 싶었고, 말없이 틱틱거리기만 했던 나의 미성숙함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 덕에 그나마 대화가 진전될 수 있었다.


남자친구는 오늘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하느라 체력 소모가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선 타지에서 동네의 거리를 잘 알지 못했고 오늘 지정된 운동 구역이 그렇게나 멀 줄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겠지'라는 자신의 무심한 말투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오늘 같은 일 이후에 괜찮은 척 넘어가면, 나중에도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된다고, 그럼 연락에 망설임을 갖게 된다고 말이다.


이때 처음 깨달았다. 불편한 감정을 꺼내놓는 일이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대화를 하지 않으면 결코 깊어질 수 없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혼자 감내할 수 있는 일은 흘려보내도 좋겠지만, 수용 범위를 넘어선 감정은 차라리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욱더 서로를 향하는 길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면 멀어질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오해였던 것이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졌고, 나 또한 그 사람의 좋은 면들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부정적 감정의 근원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고, 설령 안다 해도 이를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이에 대해 어린 시절, '부정적인 감정을 꺼내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라고 가르친 부모님을 탓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기억 뒤로 숨고 싶지 않아 졌다. 부모님의 방식이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성인이 되어 스스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평가절하한 채 여전히 어린 시절의 결핍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업과 연애, 그리고 삶 전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니 그 책임을 주변으로 돌리곤 했다. 타인을 미워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고통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럴수록 더 괴로워지는 건 나 자신임에도 당장의 성장통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p.s

함께 집에 들어와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남자친구는 추운 날씨에 밖에서 계속 대화해 줘서, 당장 대화로 풀어내는 게 본인 스타일이 아닐 수 있는 데도 따라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늘 '완벽한 저녁이었다.'라고 말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