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 - 나를 깨우는 행복
⑥ 천천히, 느리게, 오늘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창밖에는 움직이며 빠르게 자리를 옮기는 차량들의 행렬, 여느 때 처럼과 다르지 않게 “뛰뛰빵빵”이라는 경적 소리를 동반한다. 인도를 분주히 걷는 사람들 또한 바삐 서로 부딪칠 듯 말 듯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그런 광경을 보며 어떨결에 나도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분주히 그리고 언제나처럼 빠르게......
서둘러 도착한 직장에서 또한 일 처리에 후배를 독촉하게 되고, 상사의 잔소리에 빠르게 대답하며, 내 일 또한 스스로 재촉하고 분주해진다. 집중이나 정확성보다 일단은 빠른게 우선이어야 한다.
왜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언제부턴가 그랬다. 아마도 내가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 적응하면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군대에서? 고등학교? 중학교? 아님, 초등학교?
하루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면, 내릴 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우연히 빈자리가 있어 자리에 앉는다. 다리 위를 지나는 지하철의 창 너머로 보이는 낮게 드리우는 석양빛을 바라본다.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언제 저 저무는 석양빛을 마주했던가?’라는 기억을 되뇌여 본다. 기억이 없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와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지하철 안내 방송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나는 잠시 시끄러운 세계와 단절을 꿈꾸며, 그냥 눈을 감는다. 문득 왠지 모를 차분한 마음의 안정이 나를 찾아오는 듯 싶다. 빠르고 싶어도 지하철은 내릴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좌절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잠시 찾아온 여유로 생각에 잠긴다. 분주했던 나의 하루를, 아니 나의 삶을......
언제부턴가 나를 ‘빨리’라는 단어에 구속한 채 재촉하던 그 무엇들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잠시 창밖에 석양 아래로 보이는 한강의 물줄기를 바라본다, 잔잔하다. 아니 차라리 고요하다고 해야 맡는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저 잔잔함으로 강물은 흘러 거대하고, 속 깊은 바다를 향해 흐른다. 요란하지도, 서두르지도 않은 채 천천히, 느리게, 언제나, 평소처럼......
꽃 또한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조금씩 인류가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천천히 피어올라 화려함과 그윽한 자신만의 향기를 품어 내며 자랑한다. 햇살은 하루 종일 천천히 창문을 옮겨 다니며 그 따스함과 찬란함으로 세상 전부를 비추인다. 바람도 역시 서두르지 않고 잔잔한 흐름 속에서 결국 나뭇잎을 흔든다. 인류가 이룬 문화와 기술조차도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없다. 오랜 역사의 흐름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 현재의 모습에 다다르게 되었으리라!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역사 그 무엇도 단번에 빠르게 서둘러 이루어진 것은 없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조금씩, 살며시 다가와 변화하고 변혁을 이루었다.
‘느림의 미학’아라 했던가?
이제야 숨을 고르고 분주했던 하루를 되뇌어 본다, 나의 삶을 되짚어 본다.
나는 지금까지 바쁘고 서두르는 삶 속에서 무엇을 바라 살아왔던가?
그때 알았다. 바삐 사는 하루하루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잊고, 또한 잊히며 살아온 내 삶이 이었고, 그 속에서 소중한 순간들과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행복은 결코 도착점이 아닌 걸음 사이사이에 깃든 작은 순간들의 연속된 결계 속에서,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한 천천히 스미는, 묻어나는 숨결이라는 것을......
지하철에서 내려 집을 향해 걸으며 의도적인 것처럼 난 천천히 걷는다. 수백번, 수천번 같은 길을 걸으며 인식하지 못했던 내가 걷는 걸음 속에 모든 풍경을 눈 속에 담으려는 생각과 더불어 천천히 걸어 본다.
지나가며 나누는 길가의 상인과 소비자가 나누는 대화조차도 내 귓가에 와 닿는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정겨움이 있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다정함이 있다. 문득 처음 보는 듯한 커피가게가 보여 무심히 들어가 커피를 주문해 들고 나오며, 살며시 피어오르는 커피 향을 느낀다. 어제도, 그제도 저 가게는 있었을 터인데, 이제서야......
무심했던 나를 책망하며, 커피 한 잔의 따스함과 향기로움에 내 마음을 담아본다.
해가 저물어 가고, 어둠이 짙어지며 하나, 둘 가로등과 거리의 간판들이 불을 밝힌다. 어제만 같았어도 오히려 걸음을 재촉했겠지만, 오늘은 그 하나 하나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조심히 새기며 걷는다.
분주히 걷는 많은 사람이 보인다. 속으로 그들을 다독거려 본다. 나를 위로하듯이......
‘조금은 늦어도 괜찮아!’
‘삶을 굳이 경쟁으로 여길 필요는 없잔아! 경험이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혼자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미소를 머금어 본다.
“어라 별이 있네!”
서울에서 처음 보는 듯한 별이 ‘반짝’ 눈짓한다. 아마도 저 별은 계속 서울 하늘을 맴돌았을 텐데, 나에게는 생소하다. 그만큼 내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으리라. 마음조차도 그랬을 수도......
오늘은 왠지 세상이 나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서는 듯하다.
이제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터득하려 한다.
그러니 그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내 눈에 스치듯 스며든다. 강물의 잔잔함,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 사람들의 정겹고 다정한 목소리, 반짝 빛나는 하늘의 별 그리고 내 마음에 살며시 다가오는 세상의 이러저러한 작은 순간들......
‘여전히 지속되는 삶 속에 복잡함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난 순간순간 그 안에서 천천히 나만의 삶을 찾으려, 마음에 평화를 찾으려 노력해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난 나즈막이 다짐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상을 바라본다.
분주하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연의 모습, 도시의 풍경을 다시 새겨 바라본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내 삶의 일부이며, 행복을 찾는 길은 아닐까?
◆ 한 줄 여운
빠르게 사는 삶은 기억을 잃게 하지만,
천천히 사는 삶은 마음을 남긴다.
◆ 오늘의 명언
“인생의 속도를 늦추면, 세상이 비로소 미소 짓는 소리가 들린다.”
— 틱낫한 (Thich Nhat Han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