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을 찾아가는 30개의 길 ◎

2. 낮 – 함께라서 더 따뜻한 행복

by 헤이오

⑨ 커피 한 잔의 온도

바삐 흐르는 하루의 일상 중 가끔은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멍때리는 순간이 있다. 상사로부터 되지도 않는 트집을 잡혀 혼자서 고통스러운 시간 속 ‘사직서’를 쓸지 말지를 고민하던 순간, 부하 직원이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거나, 내 말을 못 알아먹고 지맘대로 일을 처리한 후 보고하는 순간, 내 일에서 무언가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도무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결과도 보이지 않는 막연한 순간, 모두 때려치우고 싶을 때, 습관적으로 무작정 탕비실로 가서 커피포트의 단추를 누르고 준비가 되어있는 내 컵에 믹스 한 개를 멋스럽게 털어 담는다.

머리는 복잡하고, 앞은 막막할 때, 서서히 물 끓어오르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박자에 맞게, 맞지 않게 무작위로 끓는 물소리가 문득 내 삶과 같다고 느낄 때, 하얗게 춤을 추듯 흩날리는 연기 속에서 난 모든 걸 잊고 그저 내가 된다.

‘나도 너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춤추듯 날아오를 수 있다면......’

혼자 궁상에 젖어 있을 때, 둔탁한 ‘툭’ 소리와 함께 물이 다 끓었음을 알려주는 메아리가 울린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컵에 끓어 버린 물을 담고, 숟가락으로 살포시 커피를 저으며 피어오르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느낀다. 따스하게 데워지고 있는 커피잔을 잡으며 나를 위로하지만, 사무실로 돌아가기는 싫다. 그래서 복도로 자리를 옴긴다.

피어나는 달콤한 커피향이 코를 간지럽히며 나를 위로하듯 감싸준다. 청승 맞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 세상과 나를 잠시 선 긋고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복도 창밖의 분주한 세상과 양분된 조용하고 숨을 고르며 멈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가끔 들리는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조차도 내겐 동료들의 작은 움직임에서 오는 파동에 불과하다. 나를 부르지도,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은 오롯이 나를, 나만을 위한 것이고 싶다. 그래서 이 시간 나는 복도의 구석을 찾는다.

양손으로 컵을 잡으며 따스하게 전해오는 컵의 온도가 나를 위로한다. 어린 시절 겨울날 학교에 다녀오면 항상 차가운 손을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 주시던 뜨뜻한 마음의 할머니가 생각나고,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기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커멓게 그을음으로 목욕한 군고구마를 아궁이에서 조심스럽게 건네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를 위로해주는 모두가 생각난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고 따뜻함이 천천히 손바닥에서 온몸으로 퍼지며 나를 위로하는 포근함으로 변할 때, 급하게 흘러가던 부정적인 모든 생각은 점진적으로 누그러들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아 고요해진다.

커피의 온도는 묘하게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따뜻한 컵의 온기에 마음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지만, 그렇다고 바로 입으로 가져가면 뜨거워 마실 수 없다. 오히려 입술과 입천장을 데는 경우까지 생긴다. 무엇이든지 서둘러서 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보다!

그러다가 너무 식어버리면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의 춤사위도 코의 가장자리를 자극하는 달콤한 향기도 사라져 오히려 오롯이 느껴지는 본향을 얻을 수 없다. 마시는 매력도 사라진다. 마치 삶에서의 경험처럼......!

그래서 커피는 적당한 온도에서 가장 깊은 맛을 낸다. 어디서 본 듯한데 70~80도 정도라고 들은 듯 싶다. 컵에 물을 붓고 두 손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로 몸을 적심이 첫 번째요, 그 피어나는 연기의 춤사위에 시각의 독기를 재거하고, 다음으로 코로 전해지는 달콤, 쌉싸름한 향으로 몸속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기운을 몰아낸 뒤, 적당히 식어진 온도의 커피를 입에 가져가 따스함과 달콤함으로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된다.

혼자가 아니고 싶을땐, 누군가에게 함께 하자고 권하기도 좋다. 너저분한 복잡한 말이 아닌 한마디 “커피 어때?”만으로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 함께하며 수다를 떨어도 좋고, 그저 각자가 커피를 음미하며 시간을 나누어도 가운데 놓여진 두 잔의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바라봄 만으로도 ‘함께’의 의미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에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것이 커피가 가지는 매력일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굳이 분명한 형태나 보상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따뜻한 한 잔의 커피향과 춤추듯 날아오르는 연기처럼 나를 위로하고 혹은 누군가와 사이를 두고 마음의 여유를 함께 나눌 수 있기에,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잔의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처럼 말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나에게 관대해질 수 있었고,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대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가진다. 그러면 작은 미소가 입가에 번지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모든 것들의 부족함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전략을 위해 숨을 고르며 이 시간을 음미한다. 적정한 온도의 커피를 마시며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 그리고 숨을 고르며 내가 느낀 이 짧은 행복의 시간을 타인들과 나누기 위해 사무실로 다시 돌아간다. 물론 다시 혼자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여기 서 있겠지만......!

나만이 커피와 느꼈던 지금의 이 행복한 시간을 모두와 나누려 사무실의 문을 연다.

♥ 한 줄 여운

커피 한 잔의 온도처럼,

행복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만 따뜻하면 충분하다.

♥ 오늘의 명언

“행복은 작은 것에서 온다.

우리가 그것을 느낄 만큼 천천히 살아갈 때.”

— 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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