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내가 누리는 삶의 많은 부분이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내리 사랑의 빚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삶의 자원을 빌려 쓰고 있다. 그렇게 빚지고 사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조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성인으로 누릴 수 있는 지금의 많은 혜택이 결코 내가 이루어 온 노력의 대가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켜켜이 쌓여 온 부모와 그 부모들의 애정 위에 내가 있다.”
언제부터 인가 미세먼지가 공기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따뜻한 햇살이 힘겹게 뚫고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것이 안개가 아니라 미세먼지 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많은 아이들이 등교를 하는데도 많은 중학생과 어른이 분주히 다니는데도 운동장에서는 태연하게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나 태평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귀찮아서 외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미세먼지가 쌓이면 아이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인데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무지도 죄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아픈 하루였다.
얼마나 더 경험하고 시간이 흘러야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어렵던 시절을 견디고 어른이 된 지금도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지금의 부모는 모든 것이 풍족한 아이들과 같을 수 없는 세대다. 부족함을 채워가며 역동적인 삶을 살아온 부모다. 지혜가 필요하다.
풍족하기에 더 이상 미래를 꿈꾸어야 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과 소통이 되겠는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굳이 무엇이 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던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부모와 그런 부모와는 어떤 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잘 어울릴 수는 없다.
시간은 흐르고 자신도 변한다. 사회 관습도 문화도 모두 변해간다. 현재를 과거로 환원시킨 후에야 대화를 하려는 잘못된 대화 습관이 어른과 아이의 상호 공감을 방해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는 지금의 관점에서 지금의 사회문화 속에서 봐야 한다. 부모가 쓸모 없어진 자신의 과거 속에서 나오지 않는 한 아이와의 공감은 어려운 일로 남을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다면
설사 사진 밖에서는 싸울지라도
지금은 행복을 가둬 두고 싶다
조르고 짜증내고
화내는 것은 담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행복한 모습이기에
많은 이견과
생각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 작은 공간에서는
이렇게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