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서부
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 눈에 밟히는 가게를 발견한다. 로또 1등 당첨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는 인파로 북적대는 작은 마트가 그러하고, 방송 출연을 밥먹듯이 했다는 유명 음식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가게들은 눈길을 끌기는 해도 궁금증이 유발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누군가는 천상의 맛을 기대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대는 실망과 매우 긴밀하게 얽혀있다.
눈길을 끌고 그것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겨지기 위해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수준의 그 무엇이어야 한다. 서부면의 루트40이 그렇다. 아내와 남당항을 가끔 다녀올 때가 있다. 가까우면서도 항구 정비가 잘 되어있어 바람 쐬기 좋기 때문이다. 우린 서부를 오고 가면서 루트40을 언급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루트40은 지역개발일을 오래 해 온 나름의 전문가 입장에선 도저히 작은 소읍에 있을 만한 가게가 아니었다.
“소읍에서 펍을 운영한다고? 인구 3,000명이 사는 서부에서?”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고, 논의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으로 확장되며, 영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을 거쳐, 나중에 이곳을 꼭 방문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루트40을 방문하지 못했다. 아내는 직장인이었고, 나는 프리랜서였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자는 누군가의 근무시간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 아침,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결국 그곳을 방문해야 했다. 루트40은 펍이자 카페였다.
루트40의 명칭은 충남의 남북을 대각으로 관통하는 서부로에서 착안한 듯했다. 서부로는 40번 국도다. 40번 국도를 영어로 하면 루트40이다. 결국 루트40은 서부로를 상징한다. 상호는 그렇게 도로명과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니 문은 열려있는 데 손잡이 부근에 옆 가게로 오라는 쪽지가 붙어있었다. 옆 가게는 작은 마트였다. 마트는 안이 보일 듯 말 듯했는데 발 사이를 비집은 내 시선이 주인 아주머니와 만났고, 주인 아주머니는 무슨 용무인지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카페 쪽으로 가리켰다. 카페에서 보자는 뜻이리라. 나는 다시 쪽지 앞으로 다가갔고, 카페 문을 열었으며, 이 시간 동안 아주머니는 건물 뒤편으로 연결된 통로를 이용해 카페 카운터로 이동했다. 우리는 비로소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로 대면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주머니께서 두 가게를 모두 운영하는 것이냐. 소읍에서 펍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냐. 장사는 좀 어떻냐. 펍을 실제로 아주머니께서 운영하고 계시는 거냐. 이런 것들이었다. 아주머니는 커피를 건네주며 이건 그래도 손주한테 배운 솜씨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펍은 손주가 운영하던 것인데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장사가 안 됐고, 지금은 손주가 인천에 있어 어쩔 수 없이 본인이 두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커피 내리는 방법은 배웠으나 메뉴판에 적인 상품들을 모두 제공하지는 못한다고도 했다. 나와 아주머니는 그렇게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제로 영업이 잘 안 되는 이유가 코로나19 때문인지 가게 위치 때문인지 고령화된 소비자층 때문인지 따져 묻고 싶지는 않았다. 이 펍은 손주를 위해 할머니와 작은 삼촌이 힘을 모아 큰 기회를 주고자 한 선물이었다. 손주를 위한 어른의 마음이 느껴졌다. 또한 너무 앞서 나가버린 사업 아이템을 서부의 실정에 맞도록 조정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손주의 도전이 혹시나 멈출까 봐 할머니는 커피 기술을 배워 지금도 가게 문을 어떻게든 열고 있다. 그렇게 루트40은 40번 국도의 상징으로서 그곳을 지켜나가고 있다. 주인장이 젊은 청년에서 노년의 여성으로 바뀐 것뿐.
서부에는 최근 문화누리센터가 생겼다. 서부 주민들이 주민자치활동과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농식품부의 중심지 활성화 사업으로 전국의 소읍 단위에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공간들을 시설 안에 집어넣고 있다. 커뮤니티 공간이니 그렇단다. 그러다 보니 공간의 기능이 복잡해진다. 시설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서부의 경우 공간 자체가 매우 단순하다. 그 흔한 회의실 하나 없다. 그냥 대강당과 헬스장이 전부다. 디폴트 값이라고 항상 생각했던 회의실이 빠져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자치활동을 강화해 나가는 데 있어 회의실 정도는 꼭 갖추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부면의 주민자치활동들을 보면 풍물, 노래, 댄스, 난타, 체조, 민요 등 주로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활동들이 대부분이다. 굳이 회의실을 만들어 활동 공간을 줄이기보다는 다이내믹한 활동들을 좀 더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주민들의 수요를 잘 녹여낸 시설물이다. 물론 좀 더 정적인 주민자치활동을 지원하기에는 공간이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나,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자치활동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설립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서부가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때문에 루트40은 좀 더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확장시킬 수 있는 콘셉트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문화누리센터가 제공하지 못하는 정적인 활동들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서 활용할 수 있다면 지역사회와 함께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40번 국도와 서부를 지키고 있는 루트40이 새로움을 계속 추구하기보다는 기본 것들을 잘 지켜내면서 융화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젊은 청년 사장이.
보통 소읍마다 하나씩 있는 하나로마트가 없어 지역의 식품 유통은 마트 삼총사가 책임지고 있다. 사실 책임진다기보다는 버티고 있다는 말이 적절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활동반경을 갈산에서 읍내로 넓혔으며,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들을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접하고 있다. 중촌마을에 전입해온 수도권 출신들은 삼총사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매우 트렌디하고 까다롭다. 자차로 어디든 필요한 물품을 수급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 그들은 도시의 소비성에 매우 익숙하다. 삼총사와의 접점이 거의 없다. 상황이 어렵지만, 그래도 삼총사는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서부의 역사를 함께한 이웃사촌들이 아직은 건재하지 않는가. 세월이 웬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서부의 어떤 집주인은 주민들을 위해 자신의 땅을 내어주기도 했다. 서부초등학교를 옆에 끼고 있는 곳에 사는 집주인 덕에 이호리 마을 주민들은 넓은 공터를 갖게 되었으며, 동네 주민 차량과 동시에 비켜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안길에서 차량을 후진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물며 이 집주인은 자신의 집 툇마루도 주민들에게 내어 주었다. 주민들은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쉴 수 있는 휴식처를 얻었다. 또한 동네 사람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노상카페를 얻었다. 물론 창호지 문 너머로 집주인 가족의 삶을 어쩔 수 없이 엿보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조용히 일어나면 될 일이지 않겠는가. 근데 집주인은 보통 대문으로 출입을 할까 아니면 두 개의 창호지 문으로 출입을 할까?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거나 아주 가끔 묘지를 관리하기 위해 방문할지도 모르겠다. 왠지 확인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서부면사무소는 동물들을 위해 작은 공간을 내어줬다. 길고양이나 유기 고양이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 고양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거처 안에 있는 고양이가 나의 기척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꽤 오랫동안 거처를 내어준 모양이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어린 고양이는 내가 그 자리를 뜰 때까지도 시선을 내게 주지 않았다. 고양이는 안전해 보였다. 면사무소의 쉼터 공간은 참새들의 아지트와 다름없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날아다녔고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덕분에 매미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쉼터 계단에 앉아 잠깐 동안 그들의 움직임과 울음소리를 감상했다. 그들은 면사무소와 주민들의 거주지를 제 집 안마당처럼 날아다녔다. 그리고 나뭇가지든 담벼락이든 안내표지판이든 착륙하여 짹짹거렸다. 그리곤 다시 날아올랐다. 안마당 주인 연합의 활동에는 어떤 패턴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무질서의 세계인 걸까?
어떤 현상이든 패턴과 규칙을 읽어내려는 태도가 때로는 인간을 피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