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운곡
태풍이 소멸되었다는 기상청 소식에도 불구하고 비가 연이틀 많이 왔다. 본격적인 휴가철이었고 사방팔방으로 떠나는 피서객들로 도로가 마비되었다는 전파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든 인적이 드문 비밀의 장소든 집을 버리고 떠나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소외되었다고 생각했다. 대중의 틈바구니에서 마땅히 즐겨야 할 것을 즐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길이 막히든 길에서 기름을 낭비하든, 집을 버리고 남의 집에서 자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연이틀 쏟아졌다. 새벽녘, 머그컵에 커피를 한 잔 들고 창밖을 바라보니 빗소리가 한동안 거셀 것 같았다. 휴가를 못 가 투털 거리던 얼굴이 탁상거울에 비쳤다. 투덜이는 사라지고 기쁨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약간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인간의 속내라는 것은 대체로 비인간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떠난 사람들은 우천 상황에서도 휴가를 만끽하겠지. 웃으면서 기원했다.
한데 이른 시간까지 쏟아지던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시커멓던 구름 색은 하늘색으로 변해갔고, 비는 곧 멎을 것 같았다. 문득 이 구름들과 반나절 휴가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어딘가엔 걸려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구름이 걸려있을 만한 곳은 어디일까? 구름 운자를 지명으로 사용하는 곳이라면 구름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마땅히 떠오르는 곳은 운산과 운곡이었다. 구름산과 구름계곡... 지금 상황에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마땅히 여름휴가의 최고 피서지 중 하나는 계곡이지 않던가. 아니 구름 없는 운곡은 찡코 없는 팥빵처럼 느껴졌다. 지금 출발해야 계곡에 걸려있는 구름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했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어 있었다. 어르신들은 청양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옛 장터가 거처인 한 할머니는 현관문 옆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정류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솜사탕 같은 흰 곱슬머리들이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덩어리는 운곡을 상징하는 어떤 이미지 같았다. 덩어리 중 일부는 멈춰 있었고, 일부는 구름처럼 떠 다녔다. 구름끼리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미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던 걸까. 아마 흰 구름 덩어리는 같은 시간에 운곡을 떠날 것이고, 같은 시간에 검은 구름 덩어리가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나를 이곳 운곡으로 당겼던 힘은 바로 흰 구름 덩어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몇 시여? 나는 11시 30분에 나갈껴”
흰 구름 덩어리를 무심코 지켜보던 할머니는 그렇게 말을 던졌다. 할머니는 24살에 운곡으로 시집을 와 60년의 세월을 운곡에서 살아냈다. 시장터는 할머니의 인생이었으며, 정류소는 도피할 수 있는 창구였다. 그리고 흰 구름 덩어리는 바로 자신이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의자에 앉아 할머니는 그렇게 인생을 반추하고 조금씩 잊혀가는 운곡에 슬퍼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멎지 않을 것 같다. 도로확장 공사로 길 건너 상가 건물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만간 그 의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이따금 지나다니는 문명이 이기뿐일 것이다.
11시 30분 차를 타고 청양읍내로 나간다. 한 끼에 4,000원 하는 보리밥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돌아온다. 이것이 할머니의 하루 스케줄이었다. 버스비가 무료니까 밥값만 있으면 당장에라도 정류소를 통해 운곡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운곡의 상권은 유명무실해지고 있지만, 운곡의 어르신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읍내에서 누리고 있다. 장터로 마실을 나갔던 어르신들은 이제 읍내로 마실 나간다. 수도권에 사는 어르신들의 마실 범위가 거주지역에서 경기도 전역으로 확장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게 되면 서다. 동두천이든, 인천이든, 온양이든 상관없다. 지하철은 안전하고 쾌적하게 나를 모셔주니, 도착지에선 식사 한 그릇 하고 오면 그만이다. 음식값으로 하루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읍내나 시내로 나가는 버스의 배차시간은 그래도 짧은 편이니 음식값만 가지고 읍내나 시내로 다녀올 수 있다. 읍내 인근 지역의 상권이 쇠퇴하는 데 따른 변화다.
운곡의 마을을 걷다 보면 쉴 수 있는 정자가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양천을 따라 걷든, 마을길을 따라 걷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그 공간을 주민들이 잘 채우고 있다. 걸음이 불편한 어르신은 묵묵히 운동기구에 몸을 싣고 근육을 팽창시키고 있으며, 허리가 굽으신 어르신은 공원을 뱅뱅 돌며 폐활량을 늘리고 있다. 또 어떤 어르신들은 벤치에 앉아 칠석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마땅히 한 여름을 나기 위해서 주민들은 정자들을 채우면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운산 주민들이 여름을 나는 방식이다.
날이 개면서 구름들이 걷히고 있었다. 운곡의 이름에 걸맞은 자연의 비기를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다. 날이 너무 일찍 개어버렸던 것이다. 신대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봄에 왔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대리부터 신양천으로 이어지는 벚나무길을 걸으면서 운곡의 비경을 맛볼 수 있었으리라. 벚나무는 신양천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마치 벚나무 숲에 물길을 댄 것처럼. 무심코 신대저수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저수지 풍광을 마지막으로 담고 싶었다. 물론 이건 걷히는 구름에 대한 아쉬움의 보상적인 측면이 강했다. 언제 또 운곡에 올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꾸역꾸역 저수지 둑을 향해 올랐고, 물을 담고 있는 야트막한 산과 그 아래 펼쳐진 수평선이 드러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 동안 서서 그곳을 바라봤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아!
그랬다. 운곡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게 실수였다. 산촌마을의 중심지답게 운곡은 거대한 숲으로 덮여있었다. 사통발달의 중심지라는 느낌보다는 숲에 들어앉아 있는 마을처럼 보였다. 운곡의 비기는 보지 못했지만 삼곡(森谷)의 비기는 볼 수 있었다. 하천과 골짜기를 훼손하지 않고 그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주민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계획의 영역이 아니다.
11시 30분이었다. 할머니가 앉아있던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을 것이고 읍내로 나가고 있을 것이었다. 4,000원짜리 보리밥을 파는 식당은 어딜까? 그 식당은 정류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할머니는 보리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얼마나 걸어야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이 생각은 흰 구름 덩어리로 확장됐다. 그 어르신들은 읍내에서 단체로 머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근데 많은 어르신들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미용실이 과연 있을까? 마을에 방문하여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을 한다면 돈을 벌 수 있을까?
12시에 오픈하는 카페의 주인장은 카페 안 소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조금 일찍 오픈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는 모습이 무척 피곤해 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벚꽃이 활짝 피는 내년 어느 봄날에 자고 있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구름이 완전히 흘러가버릴 때쯤 카페 주인장은 문을 열 것이고 따라서 그와 만나기는 어려울 테니.
구름에 가려졌던 햇살이 내리쬈고, 매미들은 목소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