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면천
어르신은 골정쉼터에서 구름과자를 제조하기 위해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연꽃으로 가득 찬 골정지의 장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골정쉼터로의 진입이 필요했는데 마침 어르신께서 심리적 진입장벽을 쌓아 올린 거다. 선택을 해야 했다. 그냥 쉼터를 지나치느냐 아니면 오랜만에 구름과자의 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맛보느냐. 어색함을 느낄 정도의 거리 안으로 다가가니 어르신은 잠깐 움찔했다. 라이터 부싯돌에 얹힌 엄지손가락이 힘을 줘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본인의 하려는 행위가 공원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좋은 태도였다. 그러나 엄지 손가락은 재차 움직였고, 구름과자는 3분 여간의 제작과정에 들어갔다.
“면천분이시죠 어르신?”
타지 사람이 공원에서 담배를 피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암묵적 권한은 마을 사람들에게 있다. 마을 사람들은 골정지와 면천읍성이 공원화되기 전부터 담배를 피웠을 거고 그것은 오랫동안 습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모름지기 습이라는 것은 세태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어르신은 면천분이 아니었다. 어르신은 고덕에 사는 콩국수를 매우 좋아하는 미식가였다. 미식가는 오전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콩국수 가게에서 콩국수를 한 사발 먹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면천이 왔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바람이 선선히 부는 골정지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거의 면천 사람과 진배없어. 어렸을 때부터 면천에 줄기차게 왔다 갔다 했으니께.”
미식가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를 지었는데, 고덕에서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바가지로 물을 퍼다 날랐어야 했을 정도로 물이 귀했다고 한다. 그 시절 면천은 저수지가 일찍 축조되어 저수지 물을 논에 대었는데, 미식가는 이게 정말 부러웠다. 면천과 첫 인연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면천의 효율적인 농사 환경을 접하면서 역시 큰 동네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면천은 예전부터 서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합덕 터미널에서 시작되는 긴 여정은 면천과 운산을 거쳐 서산으로 이어졌다.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만 해도 70번 지방도는 동서를 잇는 핵심 도로였다. 이 시절 면천은 정말 많은 사람들도 북적였다. 면천군 시절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활력이 넘쳤다. 미식가는 과거를 기억했고, 향수를 나눠주었다. 그러나 그 향은 담배연기처럼 쉽게 휘발되는 성질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향을 잠시나마 맡은 나 역시도 그 향이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미식가는 생판 모르는 누군가에서 옛이야기를 푸는 과정을 통해 고향의 향을 맡으면서 아련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근데 아련한 기억은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했던 것일까. 미식가는 결국 제시간에 콩국수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그 콩국수집은 맛집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면천읍성이 복원되면서 성 안과 성 밖이 묘하게 구분 지어지기 시작했다. 성 안은 관광지의 영역이고, 성 밖은 동네의 영역이다. 콩국수집을 위시한 주요 음식점들과 카페, 그리고 문화예술 공간은 성 안에 있다. 관광객들과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주요 콘텐츠들이 몰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면천의 속살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성 밖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성 밖에는 주민들의 행정 민원을 담당하는 면사무소가 있으며, 그 옆에는 주민들의 자치 활동을 지원하는 복지회관이 있다. 복지회관은 아직 오픈되지 않았지만 기존 면사무소가 가지고 있던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확장하여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면천초등학교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나와 원래 있었던 면천중학교의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형님이 아우를 지켜주듯이 면천중학교가 면천초등학교를 뒤에서 끌어안아 지켜주는 듯한 형상이다. 초등학교는 신축으로 펜스가 쳐져 있지만 중학교는 담장이 거의 없다. 경계가 없으니 학교와 학교 주위가 하나의 공간 같다. 정문과 운동장은 정원으로 나뉘는 데 이곳은 마치 하나의 숲 같다. 잘 정돈된 정원과 오래된 나무, 특히 연분홍 빛 배롱나무가 눈에 띈다. 배롱나무는 선비의 나무다. 학생들이 선비와 같은 정신으로 세상에 나아가길 빌면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성 안에는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카페들이 있지만 성 밖에는 면천 주민들의 휴식처가 있다. 면천읍성을 바라보는 차부 인근에 위치한 이 휴식처는 1년 전에 오픈했다. 이름이 우리동네 커피집이다. 주민들에겐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이다. 주요 고객은 면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면천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이다. 이 휴식처는 커피집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저녁시간에는 주점으로 변신한다. 낮에는 음료를 제공하고 밤에는 주류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민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공간이 나쁠 리 없다. 과거 다방에서도 음료 이외에 술안주, 식사 등을 제공했었다.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꼭 커피인 것만은 아니다. 그게 커피든 주류든 성 밖에 있는 주민들의 휴식처는 주민들을 위한 메뉴가 제공되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성 안이 관광객들에게 점유되었으니까 말이다.
성 안에는 청년들이 지역의 역사문화를 활용하여 공간을 운영하는 면천창고가 있다. 옛 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한 것인데 청년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경험할 수 있다. 청년들이 소읍에 정착하는 것이 사실 쉽지만은 않다. 성장과정에서 경험했던 도시 문화와 시골 문화는 도저히 섞이지 못할 정도로 갭이 크다. 시골의 정서는 지연, 학연, 혈연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시처럼 개인주의가 발달된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은 이 구조가 매우 불합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연, 학연, 혈연 중심의 사회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역은 청년들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지역 문화에 순응하면서도 지역 문화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창조적 파괴라고 했던가. 지방소멸의 마수에서 지역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의 태도가 필요하다. 지역 문화를 좀 더 합리적인 수준으로 바꾸는 것은 지역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개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개혁을 원한다면 외부의 이질적인 요소를 투입해야 한다. 청년들은 이질적이다. 기성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부딪힐 것이다. 그냥 지켜보고 지원해주자. 그들이 충분히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창조적 파괴라고는 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을 파괴 할리는 없다. 소소하게 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아직 오픈되지 않은 활력바라지복지회관 앞에는 2개의 벤치가 놓여있다. 오전 시간에는 건물로 인해 그늘이 져 여름철 휴식처로 제격이다. 그런데 이 휴식처는 주민들만을 위한 곳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제공한 흔적이 보였다. 건물이 새로 지어졌으니 주민들의 자치 활동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복지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길고양이를 위해 사비를 들여 사료를 제공함으로써 길고양이들의 복지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여러모로 복지회관은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기능을 품고 앞으로도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잘할 것 같다.
미술관에서 면천면의 옛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이 갔던 건 도로 한 켠을 점령한, 미관을 저해하는 철제 펜스에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야외 전시관이라고 하는데 면천 주민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어르신들이 미술을 접하고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농촌마을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예술 활동은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농사일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신체적 피로도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작품들을 완성하고 전시관에 게시했다는 건 정말 많은 시간을 작품에 할애했다는 얘기다. 모르긴 몰라도 농사일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작품들은 그림 자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전 10시만 넘어도 30도가 넘어가는 불볕더위다. 이 더운 날씨에도 어르신들은 밭에 나가 농작물을 가꾼다. 그리고 잠깐 짬을 내어 그림을 그린다. 종이에 땀이 묻어 물감과 섞인다. 어르신들은 그렇게 물감에 땀을 섞어 붓질을 한다. 그림은 재능의 결과물이 아닌 땀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