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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니맨 Oct 28. 2022

지방소읍 생멸의 기록

지방소멸의 스냅사진, 지방소읍

사람들은 오랫동안 살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산을 등지고 물이 바라보이는 너른 땅’이 바로 그곳이다. 사람들은 험한 지형의 영향을 받아 교류가 취약했기 때문에,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았다. 비교할 대상이나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었기에 자신의 삶을 살면 됐다. 그게 부자의 삶이든, 빈민의 삶이든.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뚫리기 시작했고,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시대가 되었다. 타지의 정보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 정보들을 발판 삼아 도전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그렇게 자본과 정보를 활용해 사람들을 빨아들였고, 사람들은 편리해진 도로망에 올라타 도시로 몰려갔다. 살기 좋은 곳은 배산임수의 너른 땅에서 정보와 자본 그리고 사람이 집중되는 좁은 땅으로 대체되었다.     


대한민국은 약 16%의 면적에 90%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약 4500만 명에 해당한다. 기형적인 인구구조다. 손가락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휴대폰 게임을 끊지 못해 병을 악화시키는 것처럼 작금의 인구구조는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가 넘었다. 불균형은 극에 달했는가. 아직인가.     



소읍, ‘주민과 산물이 적고 땅이 작은 고을’ 



소읍의 사전적 정의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민과 산물이 적은 것은 맞지만 땅이 작은 고을은 아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448.9㎢)의 면적은 세종시(465㎢) 면적과 비슷하다. 반면 홍천군 내면의 인구는 3,118명(2022년 9월 기준), 세종시의 인구는 381,925명(2022년 9월 기준)이다. 세종시 인구의 0.8%의 사람들이 비슷한 면적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읍은 ‘주민과 산물이 아주 적은 반면 땅은 아주 광활한 고을’이 되었다.      


약 500만 명의 사람들은 전 국토의 84% 면적에 거주한다. 조만간 맨 앞자리 '5'는 '4'가 될 것이다. 면적은 그대로 일 테니 소읍에 사는 주민들은 앞으로 더욱 넓은 영토에서 살게 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드넓은 영토는 모두 그들 것이 아니다. 영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 자본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소읍은 작다. 평균 5,000여 명의 인구가 작은 상권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주민들 대부분은 농어업에 종사한다. 젊은이들은 없다. 고령화는 심각하다. 활력이 저하되니 그나마도 유지되던 상권은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 현상은 멈출 수 없다. 소읍은 자원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도시로, 도시로.


소읍은 작다. 때문에 지역 쇠퇴를 눈으로 마주할 수 있다. 소읍은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읍은 오랫동안 지역의 행정, 경제, 교육, 문화 중심지였다. 도시가 인구를 본격적으로 빨아들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최근에는 지근거리의 대읍까지 소읍의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다. 小읍이 정말 消읍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방소멸의 스냅사진이 바로 소읍이다. 나주 공산은 ‘어쩌다 사장 2’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상권을 지켜가고 있는 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면서 소읍의 면면을 대중에게 잘 보여줬다. 공산에는 2,200여 명의 인구가 산다. 전국 소읍의 평균 인구를 밑도는 수준이다. ‘어쩌면 사장’은 ‘어쩌면 소멸’의 외피일지도 모른다. 소읍의 면면에는 인식하고 싶지 않은 상실감 같은 게 있다. 어떤 별난 인간들은 TV를 보면서 그 상실감을 예리하게 읽어낸다.     


대부분의 소읍은 그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운영되어오던 약국이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백령도 주민들은 이제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만 약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령도 사례는 사실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소읍의 주민들은 이미 오랫동안 대읍으로 나가 약을 구해왔다. 소읍에서 약방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떠나고 상권 기능이 약화된다고 해서, 소읍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소읍에 위치한 작은 슈퍼에서 다시다를 구매하고, 이용원에서 멋을 내며, 다방에서 정치를 이야기한다. 불편한 관성이지만 취향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지방소멸의 상징으로 치부되는 소읍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터를 잡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도 한다. 그들은 소읍에 이질적인 도구로 생채기를 내면서 소읍에 녹아든다. 생채기의 강렬한 색은 누군가의 이목을 끌고 소읍은 그렇게 덩달아 알려지기도 한다. 이질적 도구에 의한 이질적 방식으로 말이다. 소읍 원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은 물론 아니다.


지방소읍 기행은 소읍 생멸의 기록이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소멸된 광명의 기록이고, 새로운 도구를 쥐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희망의 기록이다. 그러나 나의 기록은 소읍 주민들이 밟아온 삶의 기록에 비하면 극미에 불과하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염려되는 것은 하나다. 기록의 편린들이 ‘로컬’이라는 정책 지향적이고 시장지향적인 용어에 훼손되는 것.




※ 용어의 정의

 1. 소읍 : 비자치 행정구역 읍, 면, 동 중 면에 해당하는 지역

 2. 대읍 : 비자치 행정구역 읍, 면, 동 중 읍에 해당하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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