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정 Mar 20. 2023

자연의 것과 인간의 것의 조화

다시마 양식장에서

 희고 빨갛고 검은색의 부유물이 바다 위에 널브러져 있다. 사방에 펼쳐져 있는 것이 말로만 듣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태평양, 대서양 위에 떠다니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해 청정지역인 완도까지 쓰레기 더미가 밀려왔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저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금일도로 가는 배 위에서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인위적인 것은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 푸른색 바다 위에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물체가 신경 쓰였다. 바다 위 부유물을 확인하고 싶어 배가 좀 더 가까이 가길 기다렸지만 배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간격을 두고 색깔별로 이어져 있음을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위를 메울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어 양식장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한적 경험과 사고는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을 어렵게 한다. 여수에서 봤던 흰색의 스티로폼으로 연결된 양식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규모였다. 대규모의 양식장과 쓰레기 더미를 구분하지 못한 내 무딘 눈대중이 부끄러웠지만 처음 본 광경에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섬으로 가는 출장은 꽤 오래간만이다. 다시마, 톳 등을 수출하는 기업 지원을 위해 현장 평가를 하러 금일도를 찾았다. 고금도 선착장에서 차를 싣고 배 위에 올랐다. 하루 30분 간격으로 차와 사람을 계속 실어 나르는 것이 신기했다. 인구 감소로 이용객이 줄어 운행이 어려워진 경기도 성남과 고양의 버스종합터미널 폐쇄 소식과 비교가 되었다. 육지의 거리를 잇는 방법은 기존 버스 노선 이외에도 다양하겠지만, 남도의 섬으로 가는 방법은 배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잦은 운행이 반가울 따름이다.      


 배에는 섬으로 가는 급수차, 건설자재 덤프트럭, 화물차 등이 정박해 있다. 차를 보면서 섬에서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뭄으로 식수가 부족하고, 섬 어딘가에 공사가 진행되며, 음식점에는 식자재가 필요해 보였다. 남의 집 살림살이를 엿본 것 같지만 육지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어 섬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섬에 도착했을 때 후배 직원이 외제 차를 보고 놀랐다. 제한적 경험과 사고 안에 갇혀 양식장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후배도 섬에 비싼 외제 차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수산물 제조업체를 여러 지원했던 내 경험을 들어 ‘수산물을 거래하려면 기본적으로 현금이 있어야 하고, 좋은 원물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다’ 고 말해주었다. 어민 중에 돈 많은 분이 많아 섬에 외제차나 비싼 차가 있는 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금일도에 도착해 업체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길은 굽어졌고 1차선으로 난 작은 도로와 언덕, 공사로 끊긴 도로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헷갈리게 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60~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집들이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빈집도 만만찮게 보였다. 담장이 낮아 안이 훤히 보이는 집에는 방과 마루, 부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옛날 시골 큰 이모 댁을 보는 것처럼 익숙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방학 때 놀러 갔던 추억이 떠오르면서 도심의 깨끗하고 네모진 아파트보다 정감이 갔다. 작고 볼품없는 집의 구조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았던 우리네 옛 모습을 다시 보았다.     


 길을 가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녹색 그물망이 눈에 들어왔다. 고금도를 지나쳤을 때도 봤지만 이곳은 유난히 더 많았다. 집 앞마당이나 언덕 등 노지에 깔려 있어 무엇에 쓰이는 물건 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섬은 겨울을 이기고 났지만, 황갈색의 땅에 푸른빛이 돌기에 아직 이른 철이다. 녹색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쳐 입은 것처럼 보였다. 바다 위의 인위적 부유물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육지의 녹색망 또한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다시마 말리는 곳입니다!’ 방문했던 기업 대표자가 알려주었다. 바다에서 가져온 다시마를 노지에서 말리기 위해 깔아 놓은 것이라 한다. 가는 곳마다 녹색 망이 깔려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인위적인 양식장에서 바다가 자라게 한 다시마를, 인위적인 망에 깔아 햇빛이 말려 주면 인간이 먹고사는 것이다. 자연의 도움으로 생산하지만 거친 바다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인간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다시마 양식은 5월 중순에서 6월 말까지 한철 사업으로, 6월 말이 되면 수온이 올라 다시마가 녹고 장마로 다시마를 말리기 어렵다고 한다. 한 달 하고 보름 동안 다시마를 채취하여 배로 싣고 옮겨와 자르고 일일이 펴서 하루 동안 햇빛에 말리고 파는 일이 계속된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져 제대로 말리지 못하면 상품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초여름 한철 고생한 보람은 금일도 어가당 평균 칠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이 섬으로 가는 배의 잦은 운행이 이해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배에 다시 올랐다. 섬을 뒤로한 채 배에서 바라보니 멀어져 가는 섬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육지와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는 섬이, 나이 들면 점차 고립되는 우리네 인생과 맞닿아 보였다. 거친 자연을 상대로 평생 업으로 살아가는 나이 든 어민들의 깊은 주름이 인상에 남았다. 올 한 해 다시마 양식이 잘 되어 웃음기 넘치는 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잠시 들렀지만 이별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 섬의 매력인가 보다.      


 인간이 만든 부표와 부이, 녹색 망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여기 있는 분들에게는 고된 노동을 도와주는 소중한 인간의 물건이었다. 자연의 것은 자연으로 돌아오지만 인간의 것은 폐기물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안타깝다. 이번 주말에는 멀어져 갔던 애틋한 섬을 생각하며 다시마 육수에 국수를 말아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태초의 어둠으로 저녁이 채워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