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지 않는 사회
술 때문에 잔소리를 듣는다. 이번에는 아내가 아니라 20살 아들이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렇게 많이 먹을 줄 몰랐다. 화장실에서 토하는 내 소리에 잠이 깬 아들은 도대체 몇 잔을 마셨냐며 추궁한다. 최근 들어 술을 마시지 않다 보니 술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늦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생각이나 말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는 술잔에 담겨 깊어져 갔다. 옛날 재미있었던 추억과 각자의 소소한 일상에 공감하며 웃다가 어느새 술이 스며드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술은 점점 나를 잠식해 버렸다.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없다.
내가 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술이 술을 먹었다. 이런 날이면 으레 숙취로 다음 날 하루가 온전치 못하다. 속은 더부룩하고 음식을 먹으면 넘어올 것 같은 역함에 식사도 못한다. 그냥 이불속에서 회복의 동면을 취할 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날 실수는 안 했는지,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했던 대화와 행동을 되돌려 본다. 어렴풋이 기억날 것 같지만 정확하지 않다.
과거에 술을 먹고 실수했던 일들이 덩달아 생각난다. 혹시나 하는 걱정은 꼬인 장만큼 머릿속을 꼬이게 한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다, 참지 못하고 동석했던 사람에게 확인 전화를 한다. 역시 상대의 상태도 좋지 않다. 같이 망가진 사람끼리 동질감으로 안심이 된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는 위로 섞인 말로 실수를 한 것처럼 하다가도, 별일 없었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재차 확인하고 확인한 끝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그렇게 머리도, 속도 진정되면서 하루를 허송한다.
사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좋아해서, 맛있어서 먹지 않는다. 술을 좋아했다면 반주로라도 혼자 집에서 술을 마셨겠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간혹 누군가가 오늘따라 술이 맛있다, 달다고 이야기하면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술맛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 했으니 애꿎은 간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술맛도 모르면서 왜 그리 술을 마셨을까.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다. 운동이나 게임 등을 잘 못하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이 오로지 술자리였다. 남자들끼리 만나서 대화하려면 술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지인과의 만남이든, 서먹서먹 관계의 사람이든, 남자들은 맨 정신에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다. 할 말, 못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술기운 덕분이고, 대화 중에 끊기는 무거운 침묵을 깰 수 있는 것도 부딪히는 술잔이 있어서다.
여자들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을 수다 떠는데, 남성들은 왜 그러지 못하는지. AI를 통해 알아봤다. 남성과 여성의 소통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 한다. 여성은 대면 방식(face-to-face)으로 마주 보면서 공감과 공유를 하지만 남성은 병치(Side-by-Side) 방식, 즉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남성들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맞추며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어색해하거나, 심지어 '공격' 혹은 '도전'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대신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행위나 같은 목표로 운동, 게임 등을 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도 수컷 본능인 있는 남자들은, 처음 만나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열 정리를 위한 탐색전이 본능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여성은 수평적이고 공감 중심적이라 금방 서로 어울리지만, 남성은 수직적 관계에 익숙해 쉽게 어울리리 못한다. 할아버지들이 경로당에 잘 안 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남성들에게 쉽게 방어기제를 깨도록 도와주는 것이 술이다. 지금은 친구들하고 차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남자끼리 무슨 커피냐며 술이나 먹자고 해서 낮술도 많이 마셨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술을 먹었지만 그래도 술은 사회생활 하면서 많이 마셨다. 그때는 왜 그렇게 술을 마셨는지. 상사의 번개로 잡힌 술자리는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참석했다. 술 한잔을 놓고 좌로 둘리고 우로 돌리고 원샵으로 마시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보였다. 남자끼리 할 말도 없으니, 술이나 돌려 마시기도 했지만, 부하 직원이 주는 술을 받지 않으려는 상사의 계산도 있었다. 부모님의 유전자 덕분에 술을 마시는 것이 어렵지 않아 다행이지만, 술을 못 마시는 직원들에게는 곤욕이었다.
술이 좋아서 먹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사회 조직 속에 살아남기 위해, 관계를 맺고 무리에 어울리기 위해 술을 먹지 않았나 싶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는 일제 강점기 때 지식인이 부패한 조선 사회에 좌절해서 술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산업화 시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과 생존의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회는 서로에게 술을 권하도록 했고 술꾼들에게 관대했다. 술을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상사의 말이 진실 인양 마지못해 다 같이 술을 먹었다. 그렇게 술을 권했던 사회는 2000년대 후반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변해 갔다.
얼마 전 뉴스에 젊은 MZ들은 예전과 같이 술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거나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한다. 그들은 건강에 관심이 높아 음주가 건강에 좋지 않고 술값이 아까워 그 돈으로 취미 생활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폐업을 제일 많이 한 업종이 1위가 간이주점, 2위가 호프집이라고 한다.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을 사귀려면 술을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들어간 아들들에게 술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 번번이 거절당했다. 술을 먹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취한 상태가 보기 싫어서, 자기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며 술을 입도 대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얼마나 술을 먹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고 강변을 했지만, 맑은 정신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살겠다 라는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술은 건강에도 좋지 않고, 본의 아니게 오해도 사고, 좋은 관계를 만들려다 사고를 치는 경우도 많다. 술에 빠져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망한 역사의 사례도 많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생활의 생존을 위해, 수컷들의 본능으로 술을 마신다 하지만, 점차 사회는 개인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술자리 회식도 줄었고, 예전처럼 상대에게 술도 권하지 않는다. 술자리도 1차만 하고 2차는 호프집보다 커피숍으로 가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서 혹은 관계 맺기를 싫어서 술을 먹지 않는다면 안타깝겠지만, 술에 취하지 않고 건전하게 사회생활도 잘하고 관계를 잘 맺는다면 그야말로 건강하고 좋은 모습이다. 젊은 시절 많은 술을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다. 술 마실 만남의 기회도 점점 줄기도 하지만 마셔도 1차에서 끝낸다. 젊은이들의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간혹 이탈하는 내가 후회스럽다. 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위안을 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