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답했다를 읽고 이방인으로 답하다
20년 전 연수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재직자를 대상으로 경영, 기술, 품질 등 기업 현장에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을 개설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다. 당시 교육 과정 중에는 셀프리더십, 변화관리, 비전 수립 등 자기 계발 과정이 단연 인기가 많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기 위한 변화, 자신의 삶의 변화 등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에 자극을 주고 변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 과정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때마침 자기 계발서도 꽤 유행했었다. ‘시크릿’, ‘꿈꾸는 다락방’, ‘100미터만 더 뛰어봐’, ‘백만 번의 프러포즈’, ‘마시멜로 이야기’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책이 있었다. 업무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변화에 관심이 많아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책의 내용은 인생에서 큰 사고나 실패를 딛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어서서 성과를 냈던 과정과 마음가짐, 자신만의 성공 방식 등을 소개했다. 또 다른 유의 책은 인간의 뇌과학이나 성공에 대한 바람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활용하는 방법론을 제시하여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책이었다.
처음 자기 계발서를 접했을 때는 책의 내용대로 하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았다. 책을 잘못 읽었는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해서인지 그랬는지, 나 자신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상상하라. 자신의 비전을 글로 써라. 자기 확언의 구호를 외쳐라 등. 실제 따라 해 봤지만 꾸준하지 못했고, 간절함이 부족해서일까 책은 책일 뿐이었다. 점차 자기 계발서에 흥미를 잃었고 그 방면에 책은 더 이상 읽지 않았다.
고명환 작가가 쓴 ‘고전이 답했다’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자신이 살았던 삶과 읽었던 고전을 적용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시각에서 풀어낸 일종의 자기 계발서다. 오랜만에 읽은 자기 계발서이지만 예전의 책과는 달랐다. 제목만 익히 알고 있었던 고전을 기반으로, 자신의 일상과 매칭시켜 지혜를 얻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고전의 내용과 문구가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라는 책에서 목숨을 건 비행을 끝내고 동료와 함께 하는 한 끼 식사의 의미를 자기 경험에 비추어 설명한다. 치열하고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지친 상태에서 먹는 한 끼의 식사가, 몸과 영혼을 녹아내리는 양식이 될 수 있다 했다. 늘 먹는 한 끼의 식사에서 고전의 의미를 찾아 재해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을 공격적으로 확장하지 않는 이유를 그는 고전에서 찾아 설명한다. 욕망과 능력의 불균형으로 불행이 발생한다는 에밀의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능력 안에서 욕망할 것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과거에 읽었던 자기 계발서가 도움이 되지 않은 이유가 ‘능력을 키우지 않고 욕망에 따라 긍정 확언을 외쳐봐야 소용없다’라는 대목에서 이해가 되었다. 그가 식당을 확장하는 욕망보다는 내실 있게 운영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는 것이 와닿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고전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으니 이 책은 매우 성공한 책이다. 이 책에 언급된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40년 전 고등학교 때 읽었지만 의미도 모르고 완독으로 만족했던 아쉬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이방인은 역시 난해했다. 네 번을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명환 작가처럼 고전 속에 의미를 찾아 현재의 삶 속에 지혜를 얻고 싶었지만, 주인공 뫼르소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 및 결과가 납득하기 어려웠다. 고 작가도 이 책에서 카뮈의 '이방인'에 대한 의도를 설명했지만 와닿지 않았다. ‘이방인’의 책 후반부에 책을 번역한 분의 해설서도 읽고 AI를 통해 검색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주인공 뫼르소라는 인물을 보면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무심해서 어디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의 사장이 파리로 가서 생활할 것을 제안에도,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라며 거절한다. 여자친구 마리가 결혼하자고 해도, 사랑하지 않지만,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다 한다. 소설의 첫 시작인 장례식장에서도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피곤하고 몽환적인 정신 상태에서 건성으로 어머니 장례를 치른다.
그의 이런 행동과 태도가 사형을 선고받는 사유가 되는 것도 주인공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 민법의 기초가 되는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고 당시 죄형법정주의로 형사소송법을 정비하였다지만, 프랑스 법정에서 다루는 심리 과정을 보면 코미디 같았다. 주인공이 아랍인을 총으로 쏜 범행의 동기를, 사실을 기반으로 우발적인지, 계획적인지, 살인 의도가 있었는지, 정당방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었다.
재판 전 예심판사는 뫼르소가 신을 믿지 않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반기독교인으로 바라본다. 11개월간 조사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예심판사는 그를 구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결론 내리지 않았나 싶다.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의 주변인들에 대해 증인 심문에서, 검사는 살인과는 관련이 없는 어머니 장례식장에서의 그의 행동과 태도,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봤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 방청객의 반응을 보고 그제야 뫼르소는 처음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인간 본질에 대해 심판하는 재판이었다. 실제 그 당시 형사재판은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해 판사와 참심원이 증거의 무게를 스스로 판단토록 했다 한다. 사회구성원으로 질서를 지키고 보편적인 정서와 감정, 가치와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같이 살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총체가 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의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처단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살인을 했으니, 죗값을 치러야 했지만, 당시 알제리에서는 식민지인인 아랍인을 죽이는 것으로 사형에 이르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뫼르소가 눈치 빠르게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하고 그들이 원하는 신에게 자비를 구하는 척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면 그는 무죄가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고지식한 그에게 거짓말은 없었다. 그는 재판에서 사회가 원하는 종교와 관습, 정서에 따르지 않는 도덕적으로 기형적인 인물로 인정되어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라고 판정된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도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정서, 관습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뫼르소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을 믿고 자비를 받으라는 신부에게 폭발한다. 그는 신부가 말하는 죄의식을 거부하고, 사후 세계에서 신의 구원을 믿기보다 지금의 현재 삶이 중요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의 구원과 자비는 관심이 없다 한다. 광장에서 증오의 함성을 들으며 순교자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그의 주장은 남들이 강요하는 관습과 가치, 정서에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나답게 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고전이 답했더라는 책에서도 고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명예를 좇기보다는 결국 나답게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네 번을 읽고도 카뮈의 이방인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만,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불교의 숫타니파타에 등장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문구가 떠 올랐다. 그 어떤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수행에 정진하라는 것이, 죽음 앞에 유한한 인간이 죽음을 직시하면서 불합리한 현실에서 나답게 살겠다는 것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내지 않고, 고작가처럼 고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