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에 대하여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흥미로운 소재와 설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면 최대한 많이 즐기고 있다. 대체로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선호하기에 좀비물이나 호러는 즐기지 않지만,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면 감상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최근에 작품 몇 가지를 감상하면서 느낀 바가 있어 서술한다.
1. 설정
설정의 정교함과 이야기의 매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순 무식하다고 느낄 정도로 과격한 한두 가지 설정이라도 좋다. 그것이 폐부를 찔러 들어올 정도로 강한 매력이 있는 설정이라면 다소 허술하더라도 끝까지 감상하게 된다.
반대로 설정의 정교함으로부터 오는 매력도 존재한다. 그 세계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지 핍진성이 제대로 성립하도록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충분한 재미가 느껴진다. 그 촘촘한 설계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고 정리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낀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애초에 그런 설정에 대한 조율을 어떻게 결정 내리는 가이다. 내러티브 전반에 대한 어지간한 확신이 없다면 간결하게 갈지 말지도 확정 짓기 어려운 게 아닐까?
그림을 그릴 때도 채색 여부, 캔버스와 재료의 활용 방법까지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된다. 다만 그림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이 가능하며 실시간으로 작업물 전반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러니 감상에 시간의 흐름이 간섭하는 매체를 다루는 이야기꾼들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하게 된다.
2. 캐릭터
등장인물의 성격과 활동에 따라, 비슷한 설정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인물이나 대상의 캐릭터가 끌어나가는 방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정석적이고 평면적인 주인공부터 소위 '힘을 숨긴 찐따'까지.
이런 인물들을 생각해 내고 구체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취재했을까. 또는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봤을까.
그 깊은 고민들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나도 글을 쓰고 싶어 간질간질해지는 것이다.
3. 배경지식
아무리 설정과 캐릭터가 명료하게 자리 잡았더라도 그들이 움직이는 과정과 상황이 독자나 관객을 명확하게 설득하도록 하는 것은 지식이다. 그것은 허구를 이야기하면서도 진실성을 느끼게 하는 기술의 바탕이 된다.
이야기를 위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쌓아두고 있어야, 감상자로 하여금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몸을 담그고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이야기란
이야기는 우리말 '니', 즉 치아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한다. 읽다나 이르다는 말도 그 니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란 나의 이가 잘 보이는 상황으로부터 탄생했다고 생각해도 될까?
이를 통해 물거나 음식을 씹고, 생존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바르고 고운 이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도 만들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