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남기고 싶어 한다
1. 어원 찾기
나는 어떤 말이나 단어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쓰는 말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이의 발상이 궁금하다. 대체 왜 이런 말을 생각해 냈을까. 알고 싶어 견디기 어렵다. 그리고 어렵사리 비슷하게라도 찾아내면 그토록 속이 시원할 수 없다.
언젠가 노파심이라는 단어를 보고 문득 외할머니가 떠올라 어원을 찾아봤다.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늘 걱정하고 근심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한 단어가 맞았다.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같은 이유로 속담이 발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이 속담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어떤 일을 겪었기에 세상에 길이 남을 말을 퍼뜨렸을까? 허술하게 지은 돌다리를 건너다 낭패를 겪은 똘이 아범이나 쇠돌이 엄마가 아니었을까?
나는 발 없는 말, 돌다리, 구슬이 서 말. 이런 속담들의 첫 순간을 상상하며 동화를 쓰고 있다.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은 말이나 글, 그림 같은 것으로 세상에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를 남긴다.
2. 글과 그림, 그리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늘 생각해 온 것이 있다. '글'이라는 단어가 '그림'이나 '그리움'과 비슷한 어감을 가졌는데, 원리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정보의 바다를 두루 헤집으며 찾아보다 '긁다'로부터 글과 그림, 그리다 등이 파생되었다는 주장을 발견했다. 사실 관계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래도 그 주장의 바탕에 깔린 정서가 마음에 들어 내 안에 저장해 두기로 했다.
글을 쓰려면 반드시 뭔가를 끄적이고 긁적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려면 연필이나 붓 등으로 종이나 캔버스에 끄적여야 한다. 누군가가 그립다면 그 형상을 어딘가에 긁적이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어떤 면에서 글과 그림은 그리움을 긁어내 상기하는 것이다. 내면의 감정을 긁어내 세상에 드러내고, 마음이란 호수에 가라앉은 생각의 돌들을 쌍끌이 어선으로 긁고 훑어 인양하는 것이다.
그렇게 떠오른 나의 생각과 느낌은 실체가 되어 세상에 남는다. 불현듯 스치고 사라져 나를 잠시 지나간 아이디어와 감각을 현실에 붙잡는 것이다. 떠나지 말라고 붙잡으며, 혹은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면서.
3.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나
매 순간, 우리는 시간을 떠나보내며 살고 있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그것들이 벌어지고 있는 찰나도 지나가고 있다. 우리를 떠나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지내고 있다. 말을 하기 위해 생각하는 순간도, 뇌가 내린 명령에 따라 성대와 입을 거쳐 나오는 말들도 순간마다 과거로 변해간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가수 솔리드의 노래가 생각난다. '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가사를 참 좋아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들 중에도 여러 가지 특별함이 묻어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아프거나 슬퍼서 잊고 싶은 것이라 해도, 붙잡아 주기를 바라며 감정의 가장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시간들이다.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붙잡아두고 타인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한 때의 순간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던 것들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싶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설명해 줄 것이고, 그럼으로써 나도 미술가로 불멸의 대열에 한 발짝 담글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은 모바일로 작성하여 양식이 다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