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 C.J. 폴리크로니우의 대담집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내 핵시설 등을 목표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한지 벌써 1달이 다 되어간다.
미국은 단기전, 속도전을 이야기했지만 현 시점에서 그럴 경우의 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다 미국 탓이다.
오랜 기간 미국의 제재는 이란에게는 항생제 효과였을 것이다. 제재가 남용되었다.
남용되면 항상제 효과 때문에 약해지는 무기다. 그래서 기습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 같다.
제재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한 때 굳건한 친미주의 정권이었던 이란이 핵 능력을 급속도록 진전시켰던 기회를 제공한 것도 미국이다.
미국은 이란 핵 프로그램을 명분으로 이번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 예전 냉전시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수 많은 이란의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핵공학 교육을 받게 한 역사는 미국에게는 자승자박이다.
이 상황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중동 내 위기와 긴장의 중심에는 항상 이스라엘이 있다.
불과 몇 안되는 인구로 미국의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이 이 전쟁 뒤에 있을 것이고, 트럼프가 유대인에게 조정 당하는 트럼프의 마리오네트 인형의 조롱을 미국인들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스라엘은 항시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란의 수뇌부들이 계속 신경 쓰였을 것이다. 미국이 이 상황을 대리하여 명분있는 전쟁을 발발시키기 원했을 것이고 원했던 결과가 실행되고는 있으나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슬라엘에게 유리하게 작동될지는 의문이다.
이란은 피클이나 올리브를 생산하며 근근히 버티며 존재감 없는 국가였다면 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요충지, 경제 전쟁에서 초크 포인트의 핵심지점을 통제할 수 있으며 석유 매장량은 3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2위다.
아마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 진짜 목적은 중동내 지정학적 요충지와 자원을 장악하고 중동지역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하는 것이며 여기까지 온 이상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기 전까지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을 텐데, 이란 역시 오랜 제재에 대한 항생제 효과 그리고 갑작스러운 수뇌부들의 죽음이 순교로 이어지며 쉽게 끝낼 생각이 없을 것 같다. 고통 받는건 결국 나, 우리, 대한민국 그리고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국가들이며,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별 실익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가"는 기후위기, 기술의 진화, 신자유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국제 정치 질서까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구조적 위기에 대해 노엄 촘스키의 사유를 중심으로 C.J.폴리크로니우와의 대담집이다. 우리가 어떤 세계를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국제 정치 질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에 길게 꺼낸 것은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이다. 직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평범한 그들과 전쟁으로 인해 복잡해 진 전세계 경제, 국제 질서는 언제든 다시 힘의 논리로 회귀하는 현상이 굳어진다면 앞으로 힘은 정의를 밀어내고 특정 국가의 이익은 윤리를 압도할 것 같은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질 것 같다는 불안감.
지금 인류는 기후위기, 기술의 진화, 민주주의 균열, 국제 질서의 재편까지 역사상 가장 복잡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고 한다.
화석연료 이후의 시대 지금까지 탄소를 배출하며 성장한 국가들이 이제 막 성장하고자 하는 저소득 국가를 위해 역사적 책임을 지며 평등하고 정의롭게 넘어오는 과정에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핵심을 이야기하며,
기술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구조가 기술 자체보다 위험하며 지금 AI 시대에서 기술은 이윤 중심보다 기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 경제제도이며 이 모든 중심에서는 인간이 어떤 가치와 목적을 중심에 둘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언급한다.
지난 40년간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는 극단적 불평등과 계급적 긴장을 심화시켰고 이 오래된 경제, 정치 구조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민주주의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 불평등이 깊어지고 언론은 신뢰를 잃었으며 공교육은 약화되고 사람들은 냉소주의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엄 촘스키는 선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세상을 다시 설계하려는 의지를 이야기 한다. 시민이 권력 구조를 재구성하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메세지다.
책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기후위기던 기술의 폭주든 민주주의 후퇴든, 국제 정치의 불균형도 모두 인간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고 결국 이 문제는 우리의 참여, 연대, 상상력이 있을 때 비로소 변화의 길이 열린다고.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을 함께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노엄 촘스키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 였을 것이다.
서두에 전쟁 이야기가 길었던 것은 실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의 전쟁을 매일 생중계로 보고 있고 잊지 않았겠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진행형이다. 국제 정치 질서를 논하며 노엄 촘스키는 여전히 '힘의 질서'가 작동하고 강한 국가는 법 위에 서고, 약한 국가는 규범 아래 짓눌란다고 한다. 전쟁의 명분은 언제나 그럴듯 하지만 실제 목적은 대체로 자원, 지정학적 세력 확대, 동맹국과 전략적 선택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실제 그들의 목적을 보고 있으며 힘이 법을 압도하는 국제 질서의 민낯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전쟁은 어떤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그들에게도 적용 가능한지 되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