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조급하게 하지 않는 작은 기술
기다림을 ‘빈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듬는 시간’으로 바라보며, 여유를 배우는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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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 자주 기다리게 된다.
버스를 기다리고, 식당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고,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하루가 흘러간다.
예전의 나는 기다림을 그저 “지루한 시간”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 필사한 문장을 천천히 읽다 보니, 기다림에도 요령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와닿았다.
바이올린 레슨을 기다리는 작은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이는 지루해하지도, 짜증 내지도 않는다.
대신 주변의 소리와 풍경을 가만히 듣고 바라보며 기다리는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단단하고도 아름다운지,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기다리면서 늘 마음이 앞서갔다.
줄이 왜 이리 안 줄어드노, 시간은 왜 이리 안 가노 하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이 더 초조해질 때도 많았다.
문득 생각을 바꾸어 본다.
“기다리는 이 시간도 내 인생 시간인데, 왜 이렇게 허투루 쓰노?”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으며 기다림의 태도를 바꿔보기로 했다.
줄을 서 있을 땐 잠깐 눈을 감아본다.
지금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마음은 어디쯤 가 있는지 살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계절의 공기까지 들여다보면
그 짧은 순간이 오히려 여유가 된다.
필사 마지막 문장처럼,
“다음에 내가 줄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기면,
휴대폰부터 찾지 말고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만 할 거야.”
이 말이 오늘 나에게도 조용한 다짐이 된다.
기다림은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히고 단단하게 해주는 ‘숨 고르는 시간’이다.
오늘 나는 그 작은 기술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여유롭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내일이 아니라 오늘부터..
오늘이 내 인생의 출발점이니까.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우화가 생각난다
구두쇠로 소문난 농부의 집에 한 가난한 사람이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후 농부가 품삯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품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 농부에게 품삯을 요구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주겠네."
그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는 농부를 찾아가 다시 품삯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구두쇠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일 준다고 했을 때 자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는가? 지금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일세. 내일 다시 오게나."
나의 새로운 시작은 모두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