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의 막대기가 알려준 '감정의 되돌림 지점'
가만히 생각해 본다.
왜 나는 예전부터 화가 나면 꼭 참아두려 했을까?
말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까 봐,
누군가 상처받을까 봐,
“참는 게 미덕이다”라는 오래된 습관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감정을 가둬두는 일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분명히 안다.
분노는 쌓아둘수록 더 무거워지고,
마치 젖은 빨래처럼 마음 한구석을 눅눅하게 만든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
“괜찮아”, “별거 아냐”, “참자”라고 말하며
화를 눌러두는 문화가 강하다.
그러다 어느 날 작은 말 한마디에 홱 돌아서며
“왜 갑자기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라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실 그건 갑자기 난 화가 아니라
오랫동안 눌러둔 ‘묵은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엔 화가 나면 말없이 뒤돌아서
하루 종일 마음을 끙끙 앓았던 적이 있다.
상대는 내가 화난 줄도 모르는데
나 혼자만 마음이 지쳐갔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감정은 눌러두는 것이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내 방식의 해답을 하나씩 찾아갔다.
첫 번째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운동화와 모자를 눌러쓰고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천천히 걷는다.
바람에 얼굴을 맡기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분노가 조금씩 가벼워진다.
마치 종이조각이 물에 녹듯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분노가 올라오는 바로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정을 내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이렇게 말해보기도 했다.
“제가 화가 나네요.”
짧은 문장이지만
처음 꺼낼 때는 손이 떨릴 만큼 어려웠다.
그러나 말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상황이 달라진다.
상대가 멈추고, 나도 차분해지고,
더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한 문장 덕분에
마음속 작은 상처들이 조용히 아물어가는 경험도 했다.
살아보니 분노로 인해 생기는 일들이 참 많다.
요즘 시대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순간의 화로 인생이 달라지는 일이 너무 많다.
자기감정에 못 이겨 차를 인도로 돌려 인명피해를 입히고,
아래 위층 소음으로 큰 화를 입히는 등 생각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이런 말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한참 감정에 끌려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얼마 전 읽은
‘에스키모의 막대기’ 이야기가
분노를 다루는 데 큰 힌트가 되었다.
에스키모는 속상함, 슬픔, 분노가 밀려올 때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감정이 가라앉고 마음의 평안이 돌아오는 지점까지
쉬지 않고 걸어간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진 그 자리에
막대기를 꽂아둔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또 화가 나고,
어떤 감정에 휘말려 걷기 시작할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하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보지 못하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는 것.
이 이야기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감정의 막대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분노가 터졌던 자리,
마음을 다잡았던 순간,
용기 내어 처음 감정을 표현했던 장면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작은 막대기가 된다.
이제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분노를 다스릴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대신,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바라보고,
필요하면 조심스레 드러내는 것.
그리고 마음을 하나씩 되돌린 자리에
나만의 감정 막대기를 꽂아두는 것.
그래서인지 삶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이제는 감정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정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있다.
오늘 조용히 다짐해 본다.
화는 앞으로도 계속 올 수 있지만,
그때마다 나를 지키며 기다리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도 기다림이고, 꽃이 피는 것도 기다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