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서온아, 오늘 할머니가 교실에 갔는데 왜 자는 척했어?” 아들 집에 간 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손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살짝 숙이며 모른 척했다. 그 작은 머뭇거림이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였지만 그럴 수 있다고 하며 별일 아닌 듯 넘어갔다.
그런데 그날 밤, 아들이 전해 준 말은 숨을 턱 멈추게 했다. “어머니, 서온이가 오늘 그랬어요. 할머니는 나를 먼저 안아줘야 하는데 나는 안 안아주고 다른 아이만 안아줘서 외로웠다고. 그리고 이 말은 절대 비밀이라고” 말 못 하고 삼켰던 아이의 마음이 툭 하고 내 가슴에 떨어지는 듯했다. 아들은 이어 서온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외로운 게 뭐야, 서온아?”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친구가 없는 게 외로운 거고, 나무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나무 혼자 있는 게 외로운 거야.” 네 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 마음 한복판에는 “나도 할머니에게 제일 사랑받고 싶어”라는 작은 바람이 나뭇잎처럼 달렸는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원장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모든 아이를 공평하게 대하려고 애써왔다. 특히 내 손녀에게는 특별대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더 조심했고, 그 조심스러움이 어느새 거리감이 되어 아이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다른 아이들이 “원장님!”하고 달려와 품에 안길 때 서온이는 조용히 뒤로 한 발 물러서던 모습, 내가 들어서면 얼음처럼 굳어버리던 표정, 그 모든 순간이 퍼즐 맞춰지듯 이해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온이 반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쳐도 모르는 채 놀고 있는 아이 옆에 다가가 제일 먼저 번쩍 안아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주었다. 처음엔 조금 멈칫하더니 이내 폭 안겨 왔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나를 꼭 껴안는 품이 따뜻하다. 그 작은 몸에서 전달되는 체온이 내 마음을 단숨에 녹인다.
그날 다시 낮잠 자리에 누운 그 아이의 곁에 나도 살며시 누웠다. 이불속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며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 “할머니, 나 이제 하나도 안 외로워.” 그 한마디는 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여리고 깊으며, 어른의 행동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귀한 가르침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깊다. 어른들은 종종 ‘아이니까 몰라’, ‘어리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다. 누가 자신을 먼저 바라봐 주는지, 누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지, 누가 내 편인지.
아이의 외로움은 어른의 외로움보다 더 작고 빨리 사라지겠지만, 그만큼 더 쉽게 상처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 “너는 사랑받는 존재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네 마음을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 너무 행복해”라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섬세하고도 조심스러운 사랑의 과정이다.
공평함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따뜻한 눈빛과 먼저 다가가는 손길이 있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나도 사랑받고 있다’라고 느낀다. 그날 서온이가 말한 나뭇잎이 다 떨어져 나무 혼자 있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모두 한 번쯤 지나온 외로움이다. 아이도, 어른도, 가끔은 그 나무처럼 서 있을 때가 있다.
우리는 어른으로서, 교육자로서 아이의 마음에 단 한 장의 따뜻한 나뭇잎이라도 살짝 붙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작은 나뭇잎 하나가 아이에게는 긴 겨울을 건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 세상은 어른의 태도와 말로부터 자란다. 좋은 부모, 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바로 지금 아이에게 좋은 양분을 건네야 한다. 아이의 마음 한구석에서 외로움의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따뜻한 손길과 사랑으로 그 마음을 지켜주는 어른이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작은 손길 속에서 나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아이들 속에서 배우며 살아가는 할머니 원장임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