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모닥불 속의 돌처럼
오늘 아침, 오래전에 들었던 시인구상 선생과 이중섭 화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되어 내 마음을 두드린다.
구상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였다.
문병객들은 다녀갔는데, 유독 이중섭만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은 서운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참 뒤, 그가 찾아왔다.
“왜 이렇게 늦었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이중섭은 말끝을 흐리며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자네에게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그 안에는 천도복숭아를 그린 그림 한 점이 들어 있었다.
"어른들 말씀이 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 하지 않던가."
과일 하나 살 형편이 되지 않았던 그는, 대신 과일을 그려왔다.
그림을 들여다보던 구상의 눈이 젖었다.
가난했지만 정성은 누구보다 부유했던 친구.
그 순간, 우정은 말이 아니라 마음의 무게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오늘 이 이야기를 다시 읽다가
문득 내 친구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교복 주머니에 꿈을 넣고 함께 웃던 친구.
짝꿍으로 앉아 시험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졸업 후에도 결혼 전까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청춘을 응원해 주던 친구.
그때는 만나면 시간이 모자랐고
보고 싶으면 바로 달려가던 사이였다.
세월은 참 묘하다.
우정은 뜨겁게 타오르지 않는다.
연애가 한순간의 불꽃이라면,
우정은 모닥불 속에 묵묵히 들어 있는 돌처럼
천천히, 그러나 깊이 데워진다.
사랑이 한여름 장대비라면
우정은 봄날의 보슬비,
가을의 가랑비 같다.
소리 없이 내리지만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비.
보지 않으면 더 보고 싶고,
보지 않아도 늘 곁에 있는 듯 든든하고,
만나면 아무 말이나 꺼내도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사람.
그런 친구들이 내게는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 친구들을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먼저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건 이닐까.
거의 50년이 되어가는 시간.
그 안에는 교실의 웃음소리도,
운동장 흙먼지도,
몰래 돌려보던 편지의 설렘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정은 받기만 해서는 자라지 않는다.
주지 않으면 받을 수 없고,
받지 못해도 먼저 건네야 하는 것.
결국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좋은 친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생각한다.
복숭아 한 점을 그려 병문안을 갔던 이중섭 화가처럼
내가 줄 수 있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잘 지내지?”
“문득 네가 생각나서.”
그 말 한마디면
잠자고 있던 세월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 같다.
마음으로만 그리워하지 말고
오늘은 꼭, 전화를 걸어야겠다.
혹시 그 친구도
나의 전화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친구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