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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리 Aug 26. 2024

왜 우리는 선재에 열망하는가

“저런 남자는 세상에 없어!!”

한마디 하며 무심하게 옆을 지나간다. 들은 체 만체했다.


“선재 반만 해봐~"

며칠 전부터 보기 시작한 드라마이다. <선재 업고 튀어> 요즘 핫한 드라마다. 맘카페에 서도 꽤 유명하다. 선재를 사위 삼고 싶다는 글, 선재  꿈을 꾼다는 글….

선재 때문에 설렌다는 글….  선재가 그렇게 좋은가? 뜨거운 관심속에서도 드라마 보기를 선뜻 시작하지 않았다. 선재 업고 튀어가를 방송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송시청 후기들이 올라온다. 아직은 해피엔딩이 아닌가 보다…. 하며 방송 후기를 보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해피엔 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에야 나는 이 드라마는 나중에 아껴놨다가 봐야겠다’ 싶었다.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열린 결말도 싫고, 새드엔딩은 더더욱 싫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가 한창 들썩할  때도 바로 시청하지 않는다. 고단하고 하루하루 버거운 삶 속에 새드엔딩의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감정을  소모할 자신이 없다. 내 기억에 남은 가장 안타까운 영화의 엔딩은 ‘이프온니’였다.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하루를 반복 하다 결국 자신의 희생으로 연인을 살린다. 말이 되는가!! 싫다. 이런 결말이라니. 내가 없는 그녀의 삶 이라니!!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충격에 빠졌다. 왜 이런 엔딩을 해! 차라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입맞춤이나 결혼을 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있는 엔딩이 좋다.!! 함께하지 못하는 삶으로 엔딩을 하다니!!! 괜히  봤어!!! 하고 후회했다. 감독은 이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이런 결말을 내놓는 거야!!! 나는 화가 났다. 아직도 나는 로맨스를 꿈꾸는가 보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와 같은 해피엔딩은 없다. 아마도 내 인생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아직 어떤 결말이 될지 모르는 열린 결말을 안고 쭉 살아가는 느낌이다.


연애 이후, 결혼하며 자식을 낳고 남은 인생을 살 아가는 일들이 더 숙제이다. 영화에서 같은 해피엔딩의 끝맺음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결혼 후 이별하기도 하고, 많은 갈등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의 결혼하는 순간만큼  이 사람과 어떻게 난의 인생이 펼쳐질까…. 저 드라마의 끝에 주인공의 행복한 웃음 뒤 그 먼먼 훗날은 여전히 웃고 남아있을 거라는 나의 상상을 남길 수 있기에 나는 해피엔딩을 여전히 좋아한다.


현실에서의 사건과 사건을 겪으며 매 순간을 혼자 되돌려본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과거로 돌아가는 시계가 처럼 나에게 있다면 나는 어떤 순간을 되돌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매 순간 선택과 후회의 연속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휴직 이후 회사 복귀가 두려워 엄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신랑이 지주댁 조합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싫다고 좀 더 생각해 보자고 말렸더라면. 살고 있던 빌라의 도시개발사업에 동의하지 않고 그냥 그 집을 팔았더라면…. 내가 중도금을 넣지 않고 버텼더라면…. 그냥 신랑이 몇 년 전 봤던 그 집 이 조금은 부담스럽더라도 그냥 분양받아보는 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제안했을 때 빚이 두려워 망설이기보다 과감하게 질렀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조금 나았고 내가 더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루에 수십 번도 한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바 뀔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그때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은 하루에도 수없이 들고 나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지고 또 후회로 가득할까…. 하는 걱정이 밀려올 때가 많다. 이 생각은 하기 시작하면  온종일 나를 무력하고 우울하게 휩쓴다. 하지만 난 오늘을 살아가야 하고 후회들로 하루를 허비하기 싫다는 나의 또 다른 생각이 나를 정신 차리라고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창고를 하나 만들었다. 답답하고 견디기 벅찬 일들을 담아놓고 잠갔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혹은 잊고 싶은 과거 떠올리기 싫은 현실들을  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잠가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들을 되뇌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창고가 열리는 날이 있다. 필사적으로 창고를 두 팔 벌려 막는다. 나는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그 문틈으로 빠져나오는 생각들을 밀어 넣는다. 이 방법이 옳은 걸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게 남은 방법은 이렇게 견디는 것밖에 없다. 나 말고도 우리는 모두 하루에도 수많은 문제를 겪으며 선택하며 수도 없이 마음을 다지며 살아가고 있으리. 이런 하루가 버거워 예전에 열정적으로 좋아했고 설레했던 지금 옆 사람한테 지금은 느끼지 못하는 그런 감정들이 아쉽다.


살면서 겪은 모습들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은 말과 상처들 때문에 앓고 있었던 그런 감정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선재 업고 튀어>라는 드라마를 보며 첫사랑의 추억, 중간사랑, 지금 사는 옆 사람과의 풋풋한 그 설렘을 그리워 해본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잠든 임솔이를 보며 손의 크기를 맞대보고 혼자 두근거리는 선재의 모습을 보며 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 선재를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두려운 것 없이 온 마음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솔이의 모습에 사랑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 몇 번이고 과거를 되돌아가며 선재를 살리려는 모습에…. 그를 잃지 않기 위해 밀어내는 모습에 사랑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


친구들과 가끔 이야기하며 이제 연애 세포가 죽었다고…. 농담들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선재와 솔이의 모습을 보며 요동치는 내 마음은 연애 세포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나이가 30이든 40이든 50이든  60이든 나는 이런 드라마들을 보며 계속 설레하고 함께 울고 가슴이 찌릿한 경험을 계속할 수 있는 것만 같다. 나의 모든 감정은 살아있다. 내가 만든 창고 안에 설마 이런 감정들도 같이 넣어버렸나? 옆 사람에게 느껴야 할 설렘과 사랑을 드라마 속의 남주한테  대리만족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부터 사랑은 의리라고 생각했다. 언제고 힘든 날이 올 때도 지켜야 하는 의리…. 그런데 어느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의리만 지키려고 한다면 너무 슬프겠다…. 라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꺼내어 본다. 다정했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을….  매일 마주해서 당연한 듯하지만 같은 말이지만 다정하게 건네본다. 응답은 그 역시 다정함이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옆 사람의 말투나 말 한마디는 그날 종일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다정함이 옆 사람의 하루를 조금은 더 밝게 해 줄 것이다. 상대방 탓 말고 나에게서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아본다. 다정한 말투와 밝은 표정으로 오늘은 대해본다. 연애 6년 결혼 9년,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 지 함께 겪었던 힘겹고 화나고 가슴 답답한 일들은 지금의 옆에 그 사람과의 추억이자 같이 걸어온 일이다. 그리고 지금 앞으로 겪을 일들 또한 몇십 년 후 우리의 추억과 길이 될 것이다. 함께 지내온 좋은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아이가 건강하고 이 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함께 행복해할 것이다. 우리가 또 어떤 일을 겪으며 내 창고 안에  그 고통을 집어넣더라도 그 안에서마저도 우리는 함께일 것이다.


“우리 서로 다정해지자” 손을 걸고 약속해본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잘 살아가고 싶은가 보다. <선재 업고 튀어> 에서 선재가 날 설레게 했고 두근거리게 했고 웃음 짓게도 했지만 분명히 또 다른 드라마를 보면서 또 그 남주에게도 느끼겠지만 내 인생의 진짜 남주는 옆 사람일 테니까.


아직 결말을 다 보지 못해 곧 드라마를 보기 시작 하면 옆 사람이 또 한마디 하겠지….

그러면 이렇게 받아줘 볼까 한다.


“그래도 선재보다는 너지~”  


아마도 웃으면서 옆에 있지 않을까?  우리 오늘도 서로에게 다정해져 보자…. 내 옆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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