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부자의 세계 40에 알게 된 돈 공부 내속에 진짜 말

누구보다 꼼꼼한 a형 남자와 지지 않는 털털한 성격 b형 여자

by 디브엄마


우리 집은 남편이 돈 관리 해


20대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바닷가 어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가게 된 이유는 자의가 아닌 서울에서 함께 살던 언니와 맞지 않았던 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일자리가 없던터 친구를 따라다니다가 마트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26살에 나는 신나게 놀고 개념 없이 돈을 쓰고 다녔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하고 일이 끝나면 친구와 술자리를 즐겼으며 늦은 시간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탔고 아침이면 늦게 일어나 또 택시를 타는 반복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명품을 즐겨 산다거나 백화점의 고가 화장품을 사진 않았습니다 명품도 몰랐거니와 그곳엔 백화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월급의 얼마는 엄마에게 시집갈 적금으로 꼬박꼬박 계좌이체를 했습니다

난 돈을 번 이례로 한 번도 돈 관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언니가 관리를 했었고 고향에 오니 다시 엄마에게 인계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어부인 아빠는 돈 얘기를 하면 화를 내셨습니다 아빠의 얘기대로 라면 한 달 전 학용품을 산다고 돈을 받아가 한 달 후 다시 학용품 얘기를 꺼내면 소모품인 공책과 필기구 준비물들은 그냥 닳지 않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한테 돈 얘기를 꺼낼 때면 심장이 두근두근 성적표를 보여 드리는 것보다도 뛰었습니다

남동생은 머리가 좀 비상했던 거 같았습니다

눈치 빠삭한 막둥이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아빠가 잡아온 낙지를 단골 수산에 500원씩 팔아서 용돈 벌이를 했습니다

난 숫기도 없고 대범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꿨고 떡볶이집에서 하루 알바 후 그냥 도망 나와 버렸습니다

성적은 안됐고 친구 따라 대학은 가고 싶기도 하였지만 한 번의 첫 등록금을 못 내주시겠다던 부모님 말에 난 그냥 아무 곳에나 취업을 해야 했습니다

경제적 돈의 공부는 하나도 하지 못한 체 어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릴 적 작은집 사촌들은 외갓집의 이모 삼촌들이 근처에 많이 살았기에 명절엔 복주머니 두둑하게 받아서 돈을 세느라 바빴습니다

나의 외갓집은 전주였기에 명절 때마다 갈 수 없어서 복주머니를 걸고 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집은 2남 2녀의 애들 많은 집이었기에 뭐든 부족했고 항상 물려받았습니다

아빠가 어업이 잘 안 될 때면 엄마는 옆집 앞집 조개 까기와 김발 널기의 부업을 하셨던 거 같습니다

풍요롭게 살지 못했기에 돈벌이를 하고부터는 내 멋대로 부모님께 심장 떨며 돈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30이 다 되어 가도록 시집도 안 가고 있으니 아빠가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도 나름 눈이 높았기에 시골에서는 눈에 차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아는 분 총동원해서 소개해 주려 했지만 항상 피해 다녔습니다

같은 업종의 남편을 한참 전부터 맘에 들어했던 나는 무슨 용기인지 먼저 대시를 해서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남편은 훤칠한 키에 얼굴도 잘생기고 부티나게 생겼습니다

내가 부티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남편은 시골사람 같지 않아서 더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첫 데이트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지만 시골에 극장이 없었기에 원정 데이트로 극장이 있는 곳 찾아 차를 타고 좀 달렸습니다

도착한 극장엔 야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고 한가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며 남편이 티켓을 끊어 오길 기다렸습니다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티켓부스로 가보았습니다 남편은 카드지갑에서 10장 정도의 할인카드 적립카드 등등을 직원에게 꺼내 주며 직원이 확인하는 참에 한참을 서 있던 거였습니다

뭐 그땐 그게 나의 인생에 복선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다지 신경 쓸 거리가 아니다 생각 들었습니다 그러나 10원 하나의 차이로 엄청난 일들이 도사리고 있을 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남편과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이유는 돈 몇백 원을 더 줬다는 이유였습니다

남편은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더 주거나 덜 주거 나가 아닌 10원 하나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아빠의 돈 얘기에 치를 떨었기에 누군들 아빠보단 더한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아빠는 옛날 사람이었기에 요즘 사람은 그런 사람 없겠지 했었습니다

남편은 돈의 계념도 그렇지만 성격까지 꼼꼼했기에 털털한 성격의 나와는 초극 정반대였습니다

남편은 어릴 적 부유한 집안의 1남 2녀 중 맡아들 이었기에 모든 걸 누리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기울어 군대 다녀온 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 때 내가 대시를 한 것이고 결혼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난 지 2년이 지나고 남편이 2시간 거리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기차로 오가며 계속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먼저 좋다고 했다지만 설마 결혼 생각도 없이 나를 만날 리가 있나 싶었습니다

열이 받아 도대체 계획이 있는 건지 난 이대로 못해먹겠다 통화로 퍼부어 댔습니다

핸드폰으로 잔잔한 남편의 계획이 흘러나왔습니다 결혼까지의 자금을 어느 정도 마련해야 했기에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이내 기분이 좋아졌고 만난 지 3년째 되던 해 5월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도 순조롭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평범함과 돈의 헛쓰임을 거부하던 남편은 그저 형식적인 것들을 외면했습니다

예식장 고르는 것도 돈을 쓸 거면 티가나고 가격에 걸맞게 쓰길 원하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습니다 해외의 채플웨딩을 시작해 잘 알려지지 않던 스몰웨딩의 생각으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이벤트 하는 곳들도 삿삿히 알아봐 가며 결국 우리가 만났던 시골의 한 호텔에서 워크숍용으로 쓰이던 곳을 저렴하게 계약했습니다 또한 여자들의 로망 스드메가 있습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보통은 여자들이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알아보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나 남편은 이 모든 걸 알아보고 계약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런 남편의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결과적으론 저렴하고 좋은 조건으로 마무리를 지었기에 만족했습니다

한복도 맞추지 않고 나와 체격이 비슷한 남편 친구의 와이프 것으로 빌려 입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혼여행이 있지요 느닷없이 남들 다 가는 세부나 발리 패키지가 아닌 어딘가에서 들어보기는 했던 몰디브를 가자고 합니다

비용도 엄청날 텐데 저는 반대를 했습니다

남편은 밤새도록 몇 날 며칠 검색하며 알아낸 카페에서 자유여행으로 저렴하게 올라온 티켓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글들도 많고 불안했지만 반신반의하며 예약을 했습니다

쿠알라룸푸르 경유로 가는 몰디브행은 우리를 정말 몰디브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몰디브 샹그릴라로 해외는 다 이런 거 아냐?... 하며 즐기다 왔습니다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허니믄베이비로 첫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갔습니다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살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조리원에 들어가야겠다고 맘을 먹고 얘기를 했을 때 남편은 흔퀘히 예약을 해주었습니다

아이 셋 낳으면서 모두 다 당연히 조리원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을 때 친구들은 돈이 아깝다며 본인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럴 때 보면 쓸 때는 쓰는 남편이 좀 우쭐했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손목이나 허리가 아프다 하면 조리원 다녀왔는데 왜 아파 라며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를 해서 열이 받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몇백만 원의 돈을 지불하고 나오면 나의 아픔도 그걸로 끝인 줄 알았나 봅니다

아기가 어릴 땐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기저귀와 물티슈 뭐 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밴드 없는 기저귀가 싸다며 덜컥 주문을 해놓고는 정작 본인은 기저귀도 몇 번 갈지 않으면서 시어머니와 내가 너무 불편하다고 밴드 있는 제품으로 사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가끔가다 정말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저런 아들을 낳으셨을까 싶었는데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막둥이 아들을 보며 깨닫습니다

아빠와 혈액형 하는 행동 싫어하는 것 정말 닮았습니다 우리 남편도 누군가를 닮아 태어난 것이겠지요 싶습니다

결국 아기 헤어밴드를 잘라서 찍찍이를 꿰맨 후 기저귀의 벨트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때 이물 건은 가보로 만들리라 생각하고 현재 6살 이 된 아이 나이만큼 보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아기용품들은 인적사항과 생년월일 적어내면 받을 수 있는 공짜 물건들은 많이 받았습니다

첫째는 물도 최고로 좋은 에비앙으로 사주어서 처음으로 먹어 보았습니다

둘째는 첫째 분유를 먹여 봤기 때문에 별거 아니란 생각을 했나 봅니다 마트에 저렴하게 나온 분유나 인터넷 쇼핑할 때 저렴하게 나온 분유들을 주문했기에 둘째 딸은 같은 분유를 2달 이상 먹여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 엄마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겠지만요 다행히 먹성이 좋은 둘째는 이분유 저분유 아무 탈없이 잘 먹었습니다

둘째 딸 여름 샌들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구입하려는데 블루 계통의 딸에겐 어울리지 않는 색만 남았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막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핑크 샌들이 아닌 블루 샌들을 신었습니다 물론 첫째 딸도 스타워즈 얼굴이 박힌 블랙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세일하는 운동화였기에 놓치기 싫었던 듯합니다 어린아이들이니 남자 여자 뭘 신어야 한다고 정해 놓인 건 아니지만 딸 가진 엄마는 속상했습니다

반부자는 어딜 갈 때면 한 가지 목적으로 운전대를 잡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목적지와 볼일을 보고 거쳐서 적어도 2개 이상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랑을 반부 자라 칭하는 건 세일 상품을 보면 무조건 담는다는 거였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도 미리 사두어서 나중엔 안 사니만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 결국 쓸데없는 돈을 쓴 격이 된 겁니다

그게 너무나 맘에 안 들어 미칠 지경이었고 현재까지 조정이 안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풍족하게 살지 않아서인지 웬만해선 뭘 사는 행위는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아가씨 때 잠깐 인터넷 쇼핑 몇 번 해본 거 빼곤 결혼과 동시에 모든 쇼핑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돈 관리를 하다 보니 더 그런 게 있었습니다

워낙 꼼꼼하고 비교분석 잘하는 남편이니깐요

10년 차 지금 우리는 비우기 실천 중입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