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비 할미, 바쁘다만..

msmg

by 올리

엊그제 혼이 나간 일이 있었다.

오는 2월에 들으려고 계획했던 강좌가.. 아 글쎄..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올해는 개설 계획 자체가 없다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부랴부랴 다른 교육기관을 찾아 예비 등록을 해두기까지 한 3시간을 어찌나 떨리는 마음으로 보냈던지.


내가 들으려고 했던 강좌는 바로 '산후산모관리사' 교육이다.

미국에 사는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보내자마자, 나는 바로 딸을 돕기위해 미국에 파견되는 사람으로 낙점 되었다. 요즘 한국에서야, 산모가 아기를 낳아도 바로 가족 품으로 오지 않고 산후조리원이라는 곳에서 삼칠일 정도는 지내고 온다. 또 집에 와도 산후도우미(이제는 이름이 바뀌어서 산모관리사.. 라 한다던데..)가 일정 기간 내방하며 신생아와 산모의 새 출발을 도와주고 있으니, 시부모라고, 친정엄마라고 특별히 긴장할 일은 없다고 들었다. (친구 말로는 돈이나 준비하라고 그런데...)


이런 서울 형편과는 달리 미국 사는 딸아이의 임신 소식은 나에게 여러 걱정을 일으켰다.

유학을 갔다가 교포 청년을 만나 아예 미국 새댁으로 자리잡은 우리 딸.

결혼 2년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려주니 기쁘고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난감했다.

뭐야, 내가 '친정엄마의 미션'을 수행하러 미국에 가야 하는 거야?


덜컥 겁이 났다.

미국에서는 여기 한국처럼 나라의 체계적인 지원 같은 것이 없을 것인데, 어쩌나.

더우기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 딸 하는 말이 '나 딱 2주만 빠지고 학교 갈거야.' 하니,

아니 그럼, 아기는?

미국에서는 산모가 출산 직후 샤워하고 터벅터벅 퇴원한다더니 정말 그럴건가?

산모는 그런다 치더라도 아기는? 새빨간 아기는?


딸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돈 내외가 살고 계시다. 그런데 그 분들은 현역으로 일을 하신다.

은퇴하여, 돌볼 다른 자녀나 가족도 없이 팅카팅카 놀고 지내시는 나.

딸의 산관 하러 미국 가는 일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당연한 수순. 피할 수 없는 운명!


나도 아이를 낳아봤지만, 출산 후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잘 안날 만큼 아득하게 느껴진다.

병원서 퇴원하여 바로 친정행. 그리고는 친정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두어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을 보내고는 바로 출근했다. 그 친정살이 기간동안 신생아를 위해 내가 무엇을 했던가.

아기 목욕을 내가 시켰나? 노, 네버!!!

남편과 친정엄마가 분주히 움직이시며 목욕 준비를 하고 아기를 처억하고 씻기시던 것을 '잘 보았던' 기억은 있다.


아기에게 젖을 먹였나? 모유수유? 노노.

모유 수유를 해 보렸으나, 나의 부실한 젖꼭지 상태가 신생아가 물고 빨기엔 매우 부적합했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젖꼭지를 물려야 하는데, 출산 후 풍선처럼 잔뜩 부풀려진 빵빵한 내 젖에서 작고 이쁘기만 한 내 젖꼭지를 아기가 물지 못했던 것.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앉고, 친정엄마가 내 젖을 부여잡고, 남편은 아기를 공중들어 내 가슴에 갖다 붙이며 모유를 먹이려 하였지만, 아기가 빨려던 젖꼭지는 쏙쏙 빠져버렸다. 아기를 애태우며 울고 내 젖은 온통 아기 침만 발라진 채 제대로 수유가 진행되지 않았다.

세 사람이 그렇게 애를 쓰던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몬도가네가 따로 없네..' 라고 생각하며, 출산후 삶이 이렇게 처절한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 애를 쓰다가 '관둬라, 우유 먹여라.' 하시던 친정엄마의 말씀으로 곤혹스런 상황은 종료 되었다. 1월 중순에 아이를 낳았는데, 3월 첫날 다시 출근을 해야 했었기에 출근 이후 걱정으로 '초유면 되었지..' 하고는 모유 수유를 더 해보려던 마음을 쉽게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랬던 내가 올 3월, 친정엄마라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고 미국 딸네 집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 무서워~

나 진짜 아무 것도 모르는데.


지난 가을, 내 아우성을 들은 언니가 귀뜸을 해 주었다. '도우미 교육을 받아.'


그런 교육이 있다고?

놀라운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니 아니, 세상에, 자격증까지 준단다.

게다가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여성인력센터에서 12월에 강의가 있었던 것. 그런데 !!!

내가 백내장 수술을 받기로 한 딱 2주간이 그 교육기간이었다. 이 눈 수술 또한 미루고 미루다가 미국가기 전에 잘 정비한다는 마음으로 결정한 것인데, 이렇게 겹쳤던 것. 다행히 내년 2월쯤에 다시 교육이 있을 거래서 선 눈수술, 후 산모관리사 교육.. 의 계획을 갖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엊그제 그 '산후산모관리사' 교육 등록을 언제하나 문의하였더니 '올해는 그 교육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 않는가.

무어라? 나, 3월 13일날 출국인데 아무 교육 없이 갈 수는 없어, 못 가~~.


이렇게 저렇게 헤매다가 마침내 한국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이 기관의 다른 지부나 센터에서 교육일정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서울 시내 여러 지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당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무려 세 곳이나. 각각 교육 기간과 시간이 오전, 오후 혹은 종일 등 조금씩 달라서 상세히 살펴야 했다. 게다가 일정 수의 수강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개강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수도 있다고 하니, 각 프로그램을 면밀히 살핀 후, 한 곳에 우선 등록하되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플랜B, 플랜C도 세워야 했다.

이 교육은 꼭 받아야 한다. 출국 전 내 생활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비록 동네에서 들으려 했던 계획이 어긋나 당황했었지만 그 와중에 얻은 것도 있다.

바로 그 여성인력센터라는 곳에서는 요리, 조리 교육 프로그램도 꽤 있다는 점이었다.

출국 전에 수강미역국인 아닌 음식도 잘 마련할 수 있을 듯 해서 바로 등록하였다.


딸 하나 둔 세 가족의 주부이자 직장여성이었던 나는, '주부의 능력' 이라는 단어 앞에선 맥을 못춘다.

특히 음식 만들기는 '대학원 자취생 수준의 요리 실력'으로 살아온 내게 스트레스요 컴플렉스 였다.

그런데 내가 출국하기 전 2개월 간 수십 가지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알맞은 프로그램을 찾았으니 미역국을 엄청 끓여대야 하는 내겐 정말 요긴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 딸 낳았을 때 남편도 덩달아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핼쓱해졌던 기억을 생각하면, 처음 아빠가 되는 사위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눈을 정비하고 (수술이 잘 되었고 지금은 수술후 한 달간 관찰하는 기간이다.)

산후산모관리 교육과,

요리 교육을 받고 나면,

딸네 입주하여 도우미를 자처하는 친정엄마로서의 기초 교육은 되는 셈일까?

그 다음은 또 뭐가 있을까. '이야기 할머니' 교육? 하하하.


할머니 노릇 잘 해 보려면 진짜 엄청 바쁘겠구나.. 싶다.

내가 자식을 딱 한 명 낳고 멈춘 것은, 그 자녀 양육에 집중하려고 했던 점도 있지만, 우리 부부 자신의 삶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있다. 하나 뿐이었던 딸은 이 세상에 생기지도 않은 동생들 몫의 비용까지 혼자 다 써가며 야무지게 성장했다. 나는 딸을 키우는 과정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없다. 또한 그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나도 엄청 배우고 성장하였다고 생각한다. 엄마노릇 하는 시기는 딱 한번 뿐이었으니 한 순간 순간이 소중하였다. 아니 소중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그 시간과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버 하지는 않으련다.


지금 나, 할머니가 되는 이 시기를 딸 키우기에 최선을 다했던 그 때처럼, 핏덩어리 아기와 출산한 딸을 위해 친정엄마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다시 출근할 생각으로 그 때의 나처럼 몸과 마음이 복잡할 딸을 위해 잠시나마 내 힘을 보태고 나면, 나는 다시 나의 생활로 돌아오련다.

나도 내 인생이 있다. 내 딸의 친정엄마이고 사위의 장모이며 곧 태어날 아기의 할머니이기도 하지만,

60대 초반, 이 때를 지나는 빛나는 내 삶도 중요하다.


비록 탱글탱글 노는 아줌마라해도 말이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수가 만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