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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지금은 내놓고 '교회 다녀요'라고 말하지만 나의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자리 잡기까지 긴 세월이 걸렸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유아영세를 받은 천주교인이었다. 그렇다, 과거형.
지금은 개신교 기독교인이다.
성당은 내게 정말 부담을 주는 곳이었다.
뭐,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두려움'을 지고 살았다고나 할까.
성당에 안 가면 고백성사를 봐야 하고, 영성체 안 하면.. 어떻고 저떻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는 성당에서 주최하는 여름성경학교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빅 이벤트가 있을 때는 착실히 다니는 듯하다가도 곧 느슨해져서 성당에 가지 않기 일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가기 싫어졌다. '미사에 빠진 죄를 고백성사로 ...'
그런 과정이 되풀이 되는게 싫었다.
내가 회심하여 뚜벅뚜벅 미사에 참석하면 그것으로 새 출발이 되면 좋겠는데...
그렇게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음으로해서 나의 발길은 점점 멀어지고 죄책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시험이다 뭐다 다급한 상황이 생길 때면 '하나님, 잘 봐주셔요. 이제 미사에 빠지지 않겠...'
이런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러고는 다시 성당에 가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상.
이렇게 멀어졌다가 다급해지면 매달렸다가.. 하는 그런 천주교 청소년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성당.. 자체보다는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왕십리 어디던가? 수녀님이 지도하시는 성경공부 모임에 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20대 직장인이었던 그때는 1980년대 중반이었지 싶다. 수녀님과 함께 수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더 오기를 기다리고 앉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청년이 느닷없이 양김(김대중, 김영삼)의 연합이 실패되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소식을 들은 수녀님과 나를 포함해 먼저 와 있는 몇몇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공공연히 공유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시절에도,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싶은 마음으로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교회 다니는 학과 친구들과 함께 미국인 선교사님이 주제 하는 영어성경공부 모임에도 따라다녔다. 영어에 대한 관심이 미끼였지만, 그때도 나는 진짜로 답답하였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 내 마음 속 생각을 어떻게 영어로 한단 말인가 - 믿음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궁금함을 이야기하면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 누군가가 의견을 말하곤 했던 그런 시절의 모임도 있었던 것.
그때 같이 영어성경공부를 했던 친구 중 한 명은 수녀가 되었고, 한 명은 미국의 신학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와 교회의 전도사가 되었다. 우리 모임에는 서울대 법대를 다닌다는 여학생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검사, 언니는 사시를 패스하여 사법연수 중이라고 했었다. 법조인 금수저였던 그녀는 아주 신실한 기독교 청년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똑똑했던 그녀의 단단한 신앙심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던 그때의 나는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어깨에 붙은 짐만 같았다.
그럼에도 결혼하는 그날에 나는 천주교 신자였고, 친정어머니 손에 나의 딸이 키워질 그때도 나는 천주교 신자이었다. 개신교를 믿는(교회도 거지 않는, 시어머니만 열심히 다니시는) 가정의 청년을 남편으로 만났는데도 천주교이었던 나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남편과는 서로의 종교에 대하여 강요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편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지성을 핑계로한 무종교적인 삶이었던 것 같다. 신앙생활은 방 바닥이 뜨거운 안방에 펼쳐놓은 이부자리 같았다. 딱히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안 덮으면 추워질 것 같은 그런 기분. 자유롭지만 불안했던 마음.
중학교부터 미션 스쿨을 다닌 나는 대학은 물론 직장마저도 기독교 정신을 잘 지키려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딸아이가 다닌 초등학교가 바로 기독교 재단이 세운 학교였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남편,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나, 그리고 기도와 찬양이 학교 안에 가득한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딸아이..
결단이 필요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 우리 가정의 형편, 그리고 신앙생활 그 자체에 대하여 방황하고 고민하며 괴로워 하는 마음은 주변의 친구, 선배, 지인들의 조언을 구걸하고 다녔다. 그러다 내게 딱 꽂힌 조언 같은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성경을 다 읽어보셨나요?'
그렇다.
종교 생활하는데 필요한 의식과 절차에는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살아왔지만, 성경 한 두 구절씩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정작 성경 전체를 읽어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바로 성경 통독에 도전하였다. 하루에 서 너 장 읽으면서 1년 동안 신구약을 통독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표를 보고는 즉시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을 딱 정했다. 내겐 말씀과 기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교회로 가는 것이 맞다고.
다음은 어떤 교회?
집에서 가까운 교회, 그중에서도 내가 학창시절 내내 접해왔던 감리교 교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후 나의 방황은 끝이 났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교회를 다닐 수 있고, 친정의 형제들이 천주교인으로서 각자의 성당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중에도, 나와 신앙생활을 천주교인인 형제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의 이 형편이 정말 감사하다.
영세도 세례도 주지 않았던 나의 딸아이는 재수할 때 스스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얼마나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신앙생활 잘하는 가정의 청년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차세대 기독교 가정으로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오랜 방황 끝에 안정을 찾게 한 나의 성경 읽기에서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도하라'는 말씀.
기도를 많이 하단다.
그렇다. 기도는 정말 좋다. (이거 뭐 광고처럼 '좋은데, 정말 좋은데..' 이럴 수밖에 없는...)
그런데 나는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이 기도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내게 좋은 기도가 하나님께는 무슨 유익이 있지?
아주 세속적인 의문이다.
값 없이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기도하라'라고 알려주시고, '기도의 맛'을 기대하게 하시고, '기도로 평안을 얻게 하시는' 그 기독교 신앙의 놀라운 팁, 기도.
오늘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내 신앙생활의 최고 비법 '기도'를 가르쳐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앗, 그런데...
하나님은 '감사 기도' 받는 것을 좋아하셔서 '기도'를 그렇게나 강조하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