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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요란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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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드디어 브롬튼 자전거를 식구로 맞이하였다. 이름은 레몬이.


레몬색이다.

미국 딸네 집에서 지내면서 건강도 챙기고 스트레스를 풀자고 시작한 '자전거 타기'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큰 기쁨이 되었다. 그래도 서울로 돌아와서 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미국 딸네 동네처럼 사방천지 널널한 평지가... 아니다.

산동네 언덕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 동네 좋으니 이사 오시라' 했더니 '내 차는 스틱이라서 그 동네 못 올라가요. 차 바꾸면 생각해 볼게요.' 했던 그런 곳. 그래도 그 지인은 몇 년 뒤 우리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그때 그의 자동차는 자동기어인 자동차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즐거움은 커녕 공포스러운 일. 나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후배의 설득에 넘어간 것.


후배는,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나의 미국 생활이 궁금하다며 가끔 카톡을 보냈다. '어떻게 지내세요?'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자전거 탈 때의 모습을 셀카로 찍어 보내곤 했다. 그런데 그즈음 후배는 우연히 브롬튼 자전거를 알게 되어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브롬튼 자전거를 잘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거다' 싶은 마음으로 덜렁 브롬튼 자전거를 사버렸다. '선배님, 어서 서울로 오시기만을 기다린다' 고 하면서 말이다.


내가 서울에 오자, 같이 자전거를 타자며 졸랐다. 한 달을 주저하다가 마침내 나도 브롬튼을 구입하였다.

내것은 비록 중고였지만 페달을 뺀 모든 부품, 심지어 타이어까지 다 바꾼 상태이어서 나 같은 사람이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상태의 물건이었다. 색깔은 레몬색. 맘에 들었다. 후배는 오렌지색. 오렌지짱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오렌지짱과 레몬이, 아주 눈에 확 띄는 알록달록 조합이 될 것이었다.


지난 주말, 마침내 한강시민공원에서 오렌지짱과 레몬이를 처음 타 보았다.

나보다 먼저 자전거를 구매한 후배는, 자전거를 산 날, 생애 처음으로 자전거에 올라타 보았단다. 그러고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덜덜덜 시운전을 해 본 정도. 게다가 이 브롬튼 자전거는 접고 펼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도 잘 못하는 상태.


그날 나는 우리의 첫 한강 라이딩을 위해 이른 아침, 레몬이를 차에 싣고 용산에 사는 후배네 아파트로 갔다.

주차장에서 후배를 만나 레몬이를 후배의 자동차에 옮겨 실었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후배가 오렌지짱을 자유롭게 접고 펼 수 있도록 그것부터 가르쳐야 했다. 유튜브를 보았어도 실제로는 잘 되지 않아서 백남준의 설치 작품처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며칠을 지냈던 나의 경험을 교훈삼아 후배에게 잘 알려주었다. 내가 뭘 가르칠 입장은 못되지만 접고 펴는 일은 고생했던 그 경험의 팁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에헴!!!


오렌지짱과 레몬이를 후배의 차에 싣고 한강시민공원으로 나갔다.

낮 최고 기온 38도라던 지난 토요일, 오전 10시의 한강시민공원은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공원이었다.

대신 그 모든 공간을 땅에 꽂히듯 쏟아지는 햇볕이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우린 헬맷을 쓰고 고글을 쓰고, 그 모습을 서로 바라보고 웃고, 사진 찍고, 또 웃으며 날씨가 어떻든 우리의 첫 라이딩을 주저하진 않았다.


자 출발.

그런데 이상했다. 내 자전거에서 덜덜덜 소리가 났다. 아까 사진 찍을 때 쩍 하고 자전거가 넘어갔는데 그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나? 자전거에서 소리는 났지만 그래도 달릴 수는 있었다. 후배는 '저는 직진 밖에 못해요' 라며 두려워 했지만 어찌어찌...


못해요 못해요.. 하면서 한 시간 반을 탔다.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충만했다. 그러나 덜덜 소리 나는 레몬이의 상태는 라이딩이 끝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아서 점심을 먹고 브롬튼 대리점에 들르기로 하였다. AS와 판매를 겸하는 곳이 멀지 않은 서빙고동에 있었다.


사건은 바로 그 브롬튼 대리점에서 일어났다.

후배의 차에 레몬이와 오렌지짱을 실었다. 후배는 오렌지짱에 후미등을 달아야 했다.

대리점 앞에 도달하니 주차공간 네 칸 중 세 칸이 주차되어 있었고, 마지막 한 칸은 다른 칸에 비해 건물 현관 앞에 있어서 좀 불편한 위치였다. 차도에서 인도로 오를 때 오른쪽으로 바짝 꺾어야 했다.

그런데 후배의 차, 미처 주차를 다 마치기도 전에 타이어가 퍼져버렸다.


주차를 하던 중에 그렇게 되어서 후배는 당황하였고 차를 그대로 둔 체, 가게 안팎을 드나들며 안절부절. 어찌 어찌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고 있는데, 주차된 다른 차들이 움직이려 하고 있는데도 후배는 자기 일에만 절절매고 있었다. 후배의 차는 그 세 대 모두를 막아서고 있는 상황.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차된 차량 3대의 주인들이 모두 나타나고 그 중 한 차는 외국인 부부. 가게 직원과 내가 일일히 차주에게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당황하여 덤벙거리는 후배에게 몇 미터라도 네 차를 움직여서 다른 차들이 나가도록 설득하고.. .

더위와, 당황한 후배와, 퍼진 자동차와, 그 자동차 때문에 짜증이 나는 다른 차주들과...

후배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더운 날씨에 더 이상 화내는 사람이 없도록 정신을 꼭 붙잡어야 했다.

그렇게 하여 다른 차들은 모두 보내고 나는 가게 안에서 상황이 종료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후배가 실망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보험회사 사람이 왔었는데, 후배의 차는 타이어가 찢어진 것이라 자신이 수습할 수 없다며 돌아갔단다. 대신 견인차를 불러야 한다고 했단다. 견인차를? 어디에, 어떻게 부르는 건데?


모를 일이었다. 자동차... 운전만 할 줄 알지 이런 상황에 난감해할 뿐인 후배와 나.

후배는 멀지 않은 곳에 사신다는 그녀의 삼촌께 연락을 하였다. 삼촌이라고?

아니 내가 육십을 넘었고 네가 오십을 넘었는데, 이런 일 생겼다고 우리가 '삼촌'께 도와달라.. 고 한다고?


나의 그런 속내를 비치니 후배 왈, '남편은 나보다 더 몰라요. 도움이 안 돼요.'

집에 잘 자고 있을 후배의 남편이 돌연 부능력자로...


삼촌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볼 일은 다 처리되었다.

덜덜 거리던 레몬이 문제를 가볍게 바로 잡았고, 오렌지짱의 엉덩이에 후미등도 '착' 붙였다.

그리고 왠지 불편했던 두 자전거의 안장 위치도 살짝 변경하는 등 오늘의 대리점 방문 목적, 완료.


마침내 삼촌이 오시는 듯했다.

늦은 오후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더위의 기승은 여전해서 나는 주로 가게 안에서 자전거들을 지켰다.

손님이 정말 많이 들락거려서, 우리의 자전거들을 이리로 또 저리로 상황에 따라 치워야만 했다. 후배는 주로 밖에서 자동차 옆을 지키며 삼촌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잠깐 밖에 나가보니 삼촌 차인 듯한 것이 가까이 오길래 나는 다시 시원한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는데, 후배가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뭐라고 소리치듯 말하는데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젠 뭐 삼촌도 오셨으니.. 하며 느긋한 맘으로 나가보니...

삼촌이라는 분의 커다란 자동차가 아까 후배의 자동차가 있던 위치에 서 있는데, 그 때 내 눈에 먼저 보인 것은 그 자동차 타이어의 찢어진 자국.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오면서 방금 전에 그렇게 되었단다.

후배의 B 자동차, 삼촌의 제네시스 자동차가 그 대리점 앞에서 같은 자리에서 시간 차만 두고 타이어가 찟어진 것. 달려나온 직원 말씀이 5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아니, 세상에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견인차가 왔다.

그리고 타이어가 찢어진 문제의 차들 중 먼저 제네시스가 끌려가고 다음으로 후배의 차. 후배는 오렌지짱과 함께 두 번째 견인차에 올라타고 떠났다. 나와 레몬이는 택시로 후배네 아파트까지 이동한 후 집에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토요일 초저녁, 택시가 잡히질 않았다. 비싼 택시로 호출하니 겨우 한 대가 오긴 했는데, 길가에 서 있던 나와 레몬이를 보자마자 '자전거는 안된다' 며 호출비 4,000원만 처리하고는 쓱 가버리셨다. 내가 무슨 애완견을 데리고 있었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레몬이를 가게에 맡기고 혼자 후배네 집까지 간 후, 내 차를 몰고와 레몬이를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사하고 나왔던 가게에 레몬이를 다시 들고 들어갔다.

자전거를 맡기고 갔다가 내 차로 와서 가져가겠다고 말하면서 '이번엔 내 차 타이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났지만 아무튼 나의 계획을 직원분께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대뜸,


'그냥 자전거를 타고 가시지요?'


우와. 참으로 자전거 대리점에서 일하시는 분다운 발상이시다.


'저는 그렇게는 못 타요. 차들이 다니는 길은 못 가요.'


나의 목적지를 확인하시고는 초보자도 갈만한 길이니 안심하고 도전해 보라시는데...


- 일단 요기서 나가자마자 우회전, 그리고 쭉 직진. 그 아파트까지는 직진만 하시면 됩니다.

-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자동차랑 겹치지 않고 교차할 일도 없습니다.

- 그래도 무서우시면 인도로 가시면 돼요. 인도가 넓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게 ...

했다. 직진만 하고, 전용도로와 인도를 왔다 갔다 했고, 전쟁기념관 앞의 그 많은 인파도 뚫었고, 횡당보도나 부대(?) 앞 같은 곳의 초소를 지날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으며 목적지까지 직진만 하였더니, 어느 새 후배네 아파트 입구 경비실. 레몬이를 데리고 당당하게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넓디 넓은 지하주차장에서는 레몬이에 올라타고 내 자동차가 어디 있나 휘이휘이 돌아다니며 찾아냈다.


그날 아침, 후배와 만날 때는 '우리가 이런 날도 맞는다' 며 호호호, 깔깔깔, 야호야호 했었던 우리 둘.

같은 날 오후 6시, 나는 공포의 시내 라이딩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같은 장소에 돌아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견인차에 끌려간 상태. 레몬이를 차에 싣고 '나 이제 집으로 간다' 고 문자를 보내니, 후배는 아직도 타이어 수습 중이라고 답문자를 보내왔다.


참, 요란하고 정신없는 첫 라이딩 날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혹독한 첫 날이 이었는데도 지금 내 기분은 어서 다시 토요일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내 나이 되면 하고 싶어도.... '

이러시다가도,

'니 나이를 생각해서 조심해야지. 너 지금 니 나이에 다치면 어쩌려구 그런 걸.... ''


구순 친정엄마의 오락가락 하는 충고에도 '응응, 알았어.' 건성으로 대답하며 한없이 마음이 부푸는 나.


레몬이, 그리고 오렌지짱!

앞으로 잘 부탁해, 우리 두 부족한 엄마들과 잘 지내자. 우하하하.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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