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만 많고 버럭하고 화도 잘 내는 나는 '감사'를 잘하지 못하...지 않고 잘하나?
얼마 전 외출을 하려다 겪은 일이다.
지인께서 원고 교정을 부탁하셨다. 더위 탓인지 집에서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도 베란다로 스며드는 햇살과 열기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요즘 너무 더워서 가끔 도서관에 가서 두어 시간 정도 보내곤 했는데,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집중해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으른 오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 애매하게 식사를 하고는 짐을 챙겼다. 오후 내내 도서관에 있다가 저녁 식사 때나 와야지. 생각하고는 집에 오자마자 바로 식사할 수 있도록 쌀도 씻으며 집 비우고 나가기 위한 소소한 일들을 재빠르게 해 치웠다. 큰 가방에 교정지와 연필과 지우개를 넣고, 또 노트북도 넣었다. 교정을 보다가 지루해지면 노트북 펴고 딴짓하려고. 거실 에어컨을 끄고는 종종종, 더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며 집안 여기저기에 있는 선풍기들도 끄고, 창문도 닫았다. 그러고는 바로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을 꿰는 순간!
푸더 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은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목욕탕 천정 속에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하고 , 방문이 혼자 열리거나 닫히기도 하곤 했지만 보통 때 들었던 적이 없는 소리에 동작을 멈추고 더 생각해 보았다. '뭐지?'
신발을 벗고 안방부터 들어가 보았다. 그러고는 까암짝 놀랐다.
문 안쪽 왼쪽 벽의 공간박스 위에 올려져 있는 옛날 거울이 방바닥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지 않은가.
그 거울은 결혼할 때 혼수로 산 것이었다.
그러니 36년도 더 지난 것.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화장할 때 보던 거울이었는데, 2년 전 집수리할 때 서랍장은 서랍들이 뒤틀려 버렸고 그 거울은 멀쩡하여 남겨 두었었다. 그런데 집을 새로 싹 고치고 나니 그 거울의 존재감이 거슬렸다. 새로운 가구를 보충할 때까지 공간박스 위에 올려놓고 오며 가며 아쉬운 데로 거울 구실을 해 주었던 물건이었다. 그런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
놀라운 것은 거울이 멀쩡했다는 것이었다.
공간 박스 2개를 쌓은 높이는 80cm가 넘는다. 그 위치에서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것이 집안의 어떤 울림으로 미끄러지면서 방바닥으로 떨어졌을 텐데, 깨지거나 금 간 곳이 전혀 없이 어떻게 멀쩡하게 드러누워 천정을 보고 있는 것인지. 거울을 감싸고 있던 나무틀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틀어졌는지 한쪽 면이 툭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고, 거울을 받치고 있던 뒷면의 널빤지도 거울과 떨어져 저만치 놓여있던 상태였다. 주섬주섬 떨어진 나뭇조각을 줍고 떨어져 나간 뒤판과 거울을 테이프로 붙여보니 멀쩡했다. 이 상황,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거 깨졌으면... 이 바닥과 이 침대 위에 유리 조각들이...
상상하기도 싫었다. 깨진 조각들을 치우는 일도 일이지만, 침대 주변을 어떻게 청소해야 그 침대 위에 다시 잘 수 있겠는가 말이다. 너무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만 아무튼 감사, 감사.
이런 놀라운 일은 2년 전에도 있었다.
당시 나는 집수리를 마치고 2주가 지난 시점. 집수리 전에 이사 나가면서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수리 후 다시 들어와서 살림살이를 새로 정리하는 일은 상상 그 이상의 일이었다. 그런 힘듦도 2주쯤 지나니 집안이 제법 정리가 된 듯하여 기분 좋게 사위와 바깥사돈을 맞으러 인천공항으로 나갔다.
교포인 나의 사위는 코로나 기간 중 미국에서 우리 딸과 결혼을 하고, 한국의 처가로 인사하러 오는 길이었다. 학기가 덜 끝난 딸은 몇 주 뒤에 오기로 하고, 딸이 올 때까지 사위는 자기 아버지와 먼저 귀국하여 꿈에 그리던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할 요량으로 입국한 것. 그런 두 사람을 맞이하러 공항에 나갔던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인천공항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를 일으켰다.
19년 된 나의 소나타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한 지도를 보며 운전을 하는 중 내 휴대폰에 남편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외국에 있던 그가 사돈과 사위의 귀국에 맞춰 전화를 했던 것인데 내비게이션에 방해가 되어 받지 않고 그냥 끊었다. 그런 나의 형편을 모르는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할 수 없이 전화 연결을 위해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의 자동차는 뺑 그르르.
서울 쪽을 향하여 달리던 내 차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 인천공항을 바라보며 왼쪽 화단에 부딪혀 겨우 멈추었다. 꽝, 그리고 뻥!
나의 19년 된 소나타는 에어백을 터트리며 탑승자를 보호해 주었지만 자동차 상태는 폐차 수준이었다.
견인차가 달려 오고 경찰이 오고.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차에 타고 있던 우리 세 명 중 누구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저녁, 미국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만난다고 시내 한 식당에 모여있던 가족들은 모두 놀라 기함을 하였지만, 그들이 더 놀란 것은 우리 세 사람의 멀쩡한 상태였다.
바깥사돈과 사위는 이튿날 바로 '우리 떠나요' 하며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는 동영상을 보냈는데, 그 두 사람이 전날, 자동차를 폐차시킬 정도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나는?
19년 동안 나의 발이 되어 주었던 EF 소나타와의 이별만아 서글펐지 내 몸 또한 너무 멀쩡하였다.
그때 그 교통사고에서 우리 세 명이 멀쩡하게 살아남은 일은, 평생 기억이 될 것이다.
그 후로 살면서 삶에 어떤 부침이 있더라도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거울이 높은 데서 바닥으로 떨어졌는데도 말짱했던 이 일까지 생각하면 이거 진짜 진짜, 이 많은 복을 다 어쩌라..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 요즘, 발가락 두 개를 꿰매고 반깁스 상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식탁 위치를 바꿔보겠다고 옮기다가 다친 일. 피가 철철철. 지혈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갔고, 육십 넘은 여자가 엉엉 울면서 눈 귀 막으며 발가락 꿰매는 아픔을 견뎠다. 그런데 더 참아야 할 울음이 있다.
이제 5개월이 된 나의 손녀를 위한 간식 보내기의 일이 좌절된 그 일이다.
이제 곧 이유식을 시작해야 하는 아기를 위해 나의 딸은 몇 가지 용품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점점 커지는 아기를 위해 아기도 엄마도 보다 더 활동성을 보장받을 새로운 아기띠. 그리고 이유식 책과 이유식 용기 몇 가지를 보내달라는 것. 미국에 그런 것이 없으랴 싶은데 한국에서 파는 것과 비교하면 2%가 부족하단다.
그런데 한살림에서 파는 영유아 간식도 좀 챙겨 보내달라고 딸은 관련 인터넷 사이트 url까지 알려 주었다.
한 봉지에 이 삼천 원 하는 간식들. 딸의 출산에 이어 주변의 지인 두어 명이 아기를 이어 낳았다니 좀 넉넉히 주문했다. 주문한 간식들을 받아보니....
내가 좀 과했나.. 싶을 만큼 EMS 특대형 상자를 2개나 꾹꾹 담아도 넘쳐났다. 상자에 들어간 물건 값 보다 우편요금이 더 나올 지경이라 딸 유학생일 때 하던 짓을 손녀에게도 하고 있네.. 자체 반성을 하면서도 '이렇게라도 K 간식을 먹어봐야지, 대한의 아가들!' 이렇게 나를 합리화하였는데...
조금 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미국에 소포 보낼 때 '입으로 들어가는 물품'은 일체 보낼 수 없단다, 요즘.
아니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관세 협상 때문이라나 뭐라
나는 그거 잘 모르겠고, 아무튼 당분간 미국으로 가는 우체국 EMS는 프리미엄 레벨로만 보내야 하고, 이때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품은 공산품이더라도 보낼 수 없단다.
떡뻥, 뻥과자, 감자과자, 채소과자, 사과칩, 당근칩, 사과맛에 당근맛에 포도맛에 감귤맛의 쏙쏙젤리, 그리고 달과자까지. 근 20만 원어치 샀다. 하찮았을 과잣값을 그렇게까지 지불하면서 장만한 것인데, 그걸 다 어떻게 한다냐.
결국 오늘 오후 '입으로 들어가는 것 빼고' 나머지를 소포로 보냈다.
우편요금이 10만원 정도 나왔다. 우리 아기 '입으로 들어갈' 것까지 챙겨 보낼 수 있었다면 우편요금은 다시 20만원이 훌쩍 넘었을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을 우편요금을 절약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
우리 집에 남겨진 그 엄청난 영유아 간식은 다 내 몫이다. 으하하... 너무 감사하다. 으하하...
다친 발은?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발 때문에 요즘 한창 재미들린 자전거 타기도 못하고 지인들과 함께 하는 둘레길 걷는 일정도 두 건이나 취소하였다. 더 성가신 것은 반깁스 한 발로 절룩거리며 걷다 보니 발바닥 엉뚱한 곳에 물집이 생겨서, 꿰맨 부위보다 손톱만 하게 생겨난 물집들이 나를 더 아프게 히고 있다. 그래도 나는 럭키비키인지라 다친 다리가 왼쪽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7년 전에 손목 골절 당했을 때도 왼쪽 손이어서 오른손을 다친 환자들보다 차원이 다른 편안한 환자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왼쪽 발이다.
덕분에 스스로 운전해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고령화 시대, 1인가족 시대에 기대고 비빌 동거 가족이 없는 내 형편에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복 중의 복이다.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 받은 복 셈하기는 불가능할 게 확실하다..
신촌의 럭키비키는 매일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