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간다.
내가 다 챙겨주려는 마음을 거두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룻 있도록 격려하며 도와야겠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너희의 몫이라고, 너희의 일이라고 그렇게 말이다.
요즘 우리 둘째가 저녁 설겆이를 하고 있다. 용돈을 벌고 싶은 것 같다. 그 꼬물거리는 손으로 얼마나 야무지게 설겆이를 하는지 참 대견한 마음이다. 혼내기보다는 칭찬을 더 많이 해주려고 한다. 자발적으로 하려는 마음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게 많아지는 건 참 귀한 일이다.
그걸 보더니 용돈을 받는 첫째도 설겆이를 한다. '받는 돈'과 '버는 돈'에 대해 두 아이는 또 생각 주머니를 하나더 늘려간다.
이제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게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거다. 믿고 맡기자. 잘할 거다. 잘할 거다. 못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대단하고 멋지다고 얘기해 주어야겠다. 진심 담은 표정, 눈빛으로 말이다.
유치원에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있으면 함께 놀이할 때 어떻게 놀아야 함께 잘 놀이할 수 있는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으로, 수용적으로 친구의 행동을 아우르는 아이들이 있고, 모든 걸 부정적이고 자신을 공격하는 걸로 보고 날서게 반응하는 아이도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객관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처리하여 적절하게 해결하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다시 건강하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 나와 우리 아이들이 가져야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감사하면서, 내가 가진 것에 자족하면서 말이다.
또, 유치원 일을 하다보니 세상에는 참 센스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행동도 빠르고 일처리도 깔끔한 선생님들이 많으셔서 말이다. 그에 비해 나는 참 일머리가 없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데, 참 둔전둔전하다. 우리 남편이 내가 하는 말 중에 제일 싫어하는 말이 "나 최선을 다했어"라는 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단다. 최선과 잘하는 것은 결과물의 차이인 것일까, 기준치의 차이인 것일까.
어쨌든 나는 그 기준치가 참 낮다. 최선을 다했다는 그 말을 믿는다. 나에게도 최선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건 최선이었다!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 곡해하지 않고 그 아이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그렇게 바라보아 주려고 한다.
그게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받고 싶은 '대우'이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바라봐 주려고 한다.
그래서 간격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그것을 기꺼이 믿어줄 수 있는 건, 바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주도 잘했다. 수고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