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아이들과 잠자는 시간에 나의 흑역사를 나누었다. 살다보면 갖게 되는 흑역사는 여러 시기에 계속 되었고, 그당시에 참 이불킥 여러번했던 과거인데, 지나고나니 아이들과 킥킥 웃으며 나눌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흑역사.
이걸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나의 실수 모음집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많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하물며 어른인 엄마는 아직까지도 그런 실수와 실패를 한다고 얘기해 준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또 없냐고 이야기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러면 쥐어짜내는 표정과 제스쳐를 하면서 곰곰히 생각하고 알려준다.
나름 나의 흑역사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편안한 마음을 주는 안정화 장치가 되나보다.
아이들은 변수가 가득한 환경에서 무한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성공만 할 수는 없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이 당연함이다. 아직까지 성공만 한 아이가 있다면 그것도 정말 대단한 일일 것이나, 그런 아이는 단언컨대 없다. 하물며 우유를 따르다가 조금이라도 바닥에 흘려보기라도 했겠지. 그런 경험이 없다는 건 둘 중 하나다(물론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은 나름 확신을 가지고). 우유를 싫어한다거나, 엄마가 항상 따라주기만 했다거나.
우리 둘째가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흑역사 생기면 나한테 또 말해줘."
그런 흑역사가 또 있겠는가 했는데, 오늘 아르바이트를 하러 유치원에 갔다가 실패한 경험을 했다.
유치원에서 오늘의 임무는 12월의 시작이라,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는 일이다. 그런데 잔뜩 엉켜있는 지네 전구 더미가 나왔고, 엉킨 전구 풀기가 오늘의 나의 미션이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나의 특기인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금방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전구 풀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결국은 끝까지 풀지 못하고 내일 다시 풀기로 했는데, 다 풀지도 못했는데 몸은 거의 이삿짐을 나른 것처럼 힘들었다. 끝까지 풀었다면 성취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중간에 얽혀있는 전구줄을 두고 나오는 마음이 못내 찝찝했다.
어떤 일이든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좋아서 보람을 얻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만큼 희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성공을 할 수는 없기에 어느 순간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한다. 그럴 때 내가 굉장히 '별볼일 없는 사람인가'하는 자책과 속상한 마음이 몰려온다. '이것도 못하면서 뭐를 잘하겠어'라는 나의 내면의 소리를 뒤로 하고,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못하지만, 다른 건 잘해. 결과는 안 좋지만, 난 최선을 다했어' 하고 말이다.
내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배운다. 그래야 자란다.
그래야 단단해진다. 누구보다 내 자신을 믿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이 진정 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네 전구 다 못풀고 퇴근한 나야, 그래도 그 과정 가운데 최선을 다한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잘했어! 엄지 척을 줄게(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