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18
(미코노스 첫날)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

by AMAP
Screenshot_20250510_114300_Google.jpg 2001년 포카리스웨트 광고 중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손예진 배우의 리즈 시절인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 어여쁜 배우가 하얀 셔츠에 파란 치마를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채 푸른 대문과 하얀 집이 줄지어 있는 예쁜 골목들 사이로 뛰어가던 모습은 충격이었다. 저기 대체 어디야?? 저렇게 예쁜 동네가 있었어?? 그곳이 산토리니라는 그리스의 섬이라고 소문이 나서 이후 유럽에 가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여기로 몰려갔다. 그 전에는 유럽여행을 가도 그리스엔 거의 가지 않았고 산토리니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는데 포카리스웨트가 광고 한 편으로 유럽 여행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그런데 여기가 실은 미코노스(Mykonos)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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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여객선 1등석(4인실), (우) 미코노스 가는 길의 에게해

산토리니는 다녀왔으니 두번째 섬 여행은 미코노스로 정했다. 제주도에 가면 렌트카 비용이 아깝듯이 그리스에서도 섬에 가면 차를 빌려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들던 차에, 미코노스는 배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겨우 4시간 밖에 안걸린단다. 4시간이면 KTX 생기기 전 새마을호로 부산에 가는 것보다 가깝네. 더구나 차를 싣고 갈 수도 있고. 웬 떡이냐! 이참에 비행기로는 엄두도 못내는 일등석을 배에서라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 가격이면 침대칸으로 갈 수 있었다. 2층 침대 두 개가 있는 방 하나를 가족끼리 오붓하게. 갑판에 나가 바다를 감상하다가, 선상 까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다가,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보니 4시간이 금방이었다. 파도 때문에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이 모든 걸 다 하면서 에게해를 건너는 호사를 생각하면 그까짓 파도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내가 그 복을 넝쿨째 받은 사람이었다.


이렇게라도 퍼스트클래스의 한을 풀면서 미코노스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엔 산토리니가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유럽 내에선 미코노스가 더 유명하단다. '있는 사람들'끼리 초호화판으로 파티를 즐기는 초고가 호텔과 레스토랑이 있는 구역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언론보도도 있었듯이 수년 전에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전 수비수인 해리 매과이어(Harry Maguire)가 초고가 파티하다가 술김에 쌈박질 했던 곳도 미코노스이고, 코로나 시기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휴가를 즐기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을 위반해서 구설수에 오른 곳도 미코노스였다. 하여간 여긴 유럽에선 잘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명품 휴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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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리틀 베니스, (우) 광고촬영지

물론 일반 여행객들이 가는 코스도 많다. 숙소에 짐 풀어놓고 관광 1번지 리틀 베니스로 갔다. 미코노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날 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와 바람이 하나가 되어 바다에 면한 집들에 부딪쳤다. 알록달록한 2-3층짜리 건물들이 동화에 나오는 집들처럼 예쁘긴 한데 저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물싸다구' 맞으면 무섭지 않을라나. 그 옆 작은 언덕에는 미코노스의 상징 풍차 5개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가 바로 손예진 광고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곳 중 하나다. 광고 속 하늘도, 풍차도, 하얀 집도, 손예진 배우도 하나같이 천상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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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코노스 골목-1, (중) 미코노스 골목-2, (우) 펠리칸

바다 뒷편 동네로 들어가봤다. 아, 여기도 익숙하다. 이런 골목에서 광고를 찍었겠구나. 산토리니는 하얀 집들 있는 이아(Oia) 마을이 좁고 가파른 계단이 많더라구. 여배우가 뛰어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미코노스 골목 풍경은 한없이 예뻤다. 나같은 늙다리 말고 젊은 사람들 왔으면 여기저기서 사진만 찍어도 하루가 금세 갈 정도로 온 동네가 포토 포인트였다. 이런 데서 살면 하루하루가 동화같겠다. 미코노스는 평지 면적도 넓고 상가도 많아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천천히 걸어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해도 그 자체로 행복하더라. 다니다 보니 '뻬뜨로스(Petros)'라는 이름을 가진 펠리칸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알고 보니 얘가 미코노스의 명물이라고.


20180526_204947.jpg 숙소에서 내려다 보는 항구 뷰

보람찬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1박에 15만원짜리 중저가 숙소였는데 뷰가 끝내줬다. 유명 관광지 5성 호텔과 비교해도 뷰만은 압승이었다. 저 아래 항구에는 벌써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오늘의 마지막 관광객들이 바쁘게 배에서 내려 자차 또는 버스로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에게해의 작은 섬들과 푸른 바다도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저런 풍경을 보면서 와이프와 같이 맥주 한 잔 하는 맛이라니! 이렇게 미코노스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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