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살아봤습니다-19(미코노스 둘째 날)

난 미코노스가 산토리니보다 좋더라.

by AMAP

첫날은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새벽부터 배타고 4시간이나 걸려 왔지만 피곤할 새가 없었다. 아니 언제 또 미코노스에 온다고 피곤할 틈이 있겠나. 아니, 피곤해서도 안된다. 잠은 나중에 집에 가서 자는 거고 여기선 분초를 아껴가며 구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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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숙소 내 공용 휴식 공간, (우) 파란 창문 우리 방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7시인데도 이미 밖은 대낮같았고 벌써부터 덥기 시작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이른 아침부터 햇살을 화살처럼 쏘아대는 듯했다. 가족들 일어나기 전에 천천히 숙소를 둘러봤다. 어제는 밖에 나가기 바빠 제대로 둘러보질 못해서. 그런데 와, 인간적으로 말이 안됐다. 어떻게 15만원에 이런 숙소가 가능한지! 늘 상상만 하던 파란 창문에 하얀 벽, 밀짚 파라솔과 그 아래 테이블, 저 아래에 보이는 짙푸른 바다와 항구..etc. 우리가(또는 외국인이) 상상하던 그리스의 바로 그 멋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아침도 먹기 전부터 벌써 엔돌핀이 팍팍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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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파라포르티아니 교회, (우)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교회

어제 온종일 미코노스의 관광 1번지 리틀 베니스와 그 근처 동화같은 동네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지만 오늘도 또 나갔다. 좋은 건 보고 또 봐야 제 맛이니까. 바닷가와 풍차 한 번 또 봐주고 뒷켠으로 돌아갔다. 매분매초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하얀 건물 하나가 보였다. '파라포르티아니'라는 이름의 작은 교회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꼭대기에 작은 종이 하나 달려 있다. 아마 예배시각을 알리는 종인가 보다. 교회 전체를 덮고 있는 하얀색은 파란 바다 색깔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서 그리스의 전형적인 멋과 맛을 내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그리스지! 그리스에 산재한 수천 개의 섬에는 이런 유형의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다니다 보니 실제 그러했다. 교인들은 놀러 와서도 수시로 예배드릴 수 있어 좋고, 관광객은 이런 귀여운 교회 앞에서 인증샷 찍을 수 있으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20180527_115313.jpg 트로이 전쟁 장면을 부조로 표현한 피토스(Pithos)

미코노스에는 아름다운 바다와 예쁜 집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고학박물관도 있는데 여기에 매우 유명한 작품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트로이 멸망을 묘사한 피토스(Pithos)다. 피토스란 세라믹으로 만든 고대 그리스의 큰 저장용기를 말한다. 이 피토스 겉면에는 트로이전쟁 때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멸망시킨 단초를 제공한 목마와 전투장면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트로이전쟁은 못참지. 수백점의 유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볼 시간적 여유는 없었고 이 피토스를 향해 직진했다. 꽤 컸다. 높이가 1m는 훌쩍 넘을 것 같았다. 윗부분엔 목마가, 아랫쪽엔 트로이와 그리스군간 치열하고 참혹한 전투 장면이 피토스를 빙 둘러 부조로 표현되어 있었다.자세히 보면 목마 옆구리에 난 창문으로 그리스군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B.C. 7세기에 이렇게 정교하게 묘사했다니! 대단하단 말이 저절로 나왔다. 원래는 아무 생각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하려 했는데 이렇게 지성 한 방울 떨궈주니 여행이 훨씬 풍부해졌다.


20180528_120452.jpg 미코노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기로(Gyro) 가게

박물관에서 잠시 지적인 활동을 했더니 금세 배가 고파왔다. 그래 먹고 살아야지. 미코노스에서 유명한 기로(Gyro) 가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기로란 수블라끼의 일종인데 삐따빵 안에 고기와 채소 등 이거저거 다 때려넣고 아이스크림 콘 모양으로 만든 음식이다.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간편식이다. Jimmy's란 이름의 가게였다. 음..우리처럼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엔 평범한 관광객 바가지용 가게였다. 맛도 그저 그렇고 가격은 우리 동네의 2배나 됐고. 그래, 우리도 관광 왔으니 귀여운 바가지 정도는 써줘야지. 아는 게 병이라는 게 딱 이 경우였다.


20180527_224110.jpg 숙소에서 내려다 본 미코노스 항구 야경

꽉 채운 이틀을 후회없이 꼬박 잘 놀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어둑어둑했다. 나는 유람선이 저녁 무렵에 마지막 운항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컴컴한 밤에도 관광객들이 오는지 항구에 불이 잔뜩 켜져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동네는 밤낮이 없구나. 미코노스의 두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 또 한 잔 하면서 밤늦게까지 이 아름다운 섬의 공기를 최대한 흡입했다.


태양신 아폴론의 손자인 미콘스(Mykons)의 이름을 땄다는 미코노스, 무라카미 하루끼가 <상실의 시대>를 저술했다는 이 섬에 이렇게 발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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