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 때-2(진주 귀걸이 소녀를 만난 날)

22,000원의 행복(2020년 시점).

by AMAP

예전에는 미술작품 감상에 별 관심이 없었다. 20대에 유럽 배낭여행을 할 당시만 해도 고풍스런 건물 앞 인증샷이나 축구장 방문이 우선이었다. 피 끓는 청춘에 미술관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40대가 지나고 50대가 되고..하다 보니 유명 미술작품에도 관심이 생기더라. 탁상달력 뒷면에 있는 소위 '세계의 명화'도 유심히 보게 됐고. 그렇게 하나 둘씩 알게 되고 명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유럽축구 빅경기를 직관하고 싶은 것처럼 유명 작품들을 현지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고픈 소망도 가지게 됐다. 바로 그 첫번째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만나면서.


거리 지도2.jpg 숙소에서 미술관 가는 길이 겨우 37분이라니.

전날 저녁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TV로만 보던 메시의 플레이를 직접 보러 축구장에 가는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미술관까지 도보로 37분 걸렸다. 처음 가 본 네덜란드, 학창시절 국사책 '헤이그 특사 사건'에서만 들어본 헤이그였지만 일단 다른 건 다 필요없었다. 구글지도가 알려주는대로 마우리츠하위스(Mauritzhuis) 미술관으로 직진했다.


호숫가.jpg 호숫가에서 바라본 미술관(가운데 노란색)

미술관 위치도 끝내줬다. 호숫가 끝자락에 위치했는데 그 옆으로는 고풍스런 국회의사당 건물이 늘어서 있고 저 멀리엔 최신식 고층빌딩들이 보였다. 현대 문명과 전통 유럽이 뒤섞인 전형적인 '유럽 갬성'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직원에게 우리 '진주 소녀' 위치를 물어봤다. 꼭대기층으로 가란다.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가 왼쪽 방에 고이고이 모셔있는 그녀를 드디어 만났다.


귀걸이 소녀 원본.jpg Johannes Vermeer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Screenshot_20250620_081346_Google.jpg 영화 속 스칼렛 요한슨(사진출처 : 구글)

복사본들을 하도 많이 봐서 아는 사람 만난 것 같았다. 얼핏 보니 배우 박신혜님과 비슷하다. 동명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나온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on)의 얼굴도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배경이 어두워 소녀의 얼굴이 더 빛이 났다. 표정이 묘하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건지 모르겠다. 푸른 터번 색깔에선 금방이라도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귀걸이 반사광은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진짜로 불빛을 반사하는 것 같았다. 이 작품들이 나같은 까막눈에게 '돼지목걸이에 진주'가 되는 일은 막기 위해 전날 저녁 검색도 해보고 갔지만 전문가들의 감상평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내가 그녀를 직접 만났다는 것!


델프트 풍경.jpg Vermeer <델프트 풍경>


해부학 강의.jpg Rembrandt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소.jpg Potter <소떼들>

이 미술관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다른 유명 미술관들은 수천 수만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아담한 미술관은 약 8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오늘은 처음이니 평소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들 위주로 감상했다.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외에 <델프트 풍경>도 있었고, Rembrandt의 <니콜라스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Paulus Potter의 <소떼들> 등 주옥같은 작품들이 있었다.


기념품 가게.jpg 미술관 기념품 코너

감격스러웠다. 미술사 거장들의 인생의 역작을 겨우 갈비탕 두 그릇 값으로 마주할 수 있다니! 내가 앞으로 여기에 3년을 살면서 수시로 미술관에 온다면 이 작품들을 대체 몇 번을 더 볼 수 있는 거냐. 좋아하는 연예인을 두 번 만난다고 지겨울까. 축구의 신 Messi를 세 번 만난들 두근거리지 않을까. 자주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기념품 몇 개 사들고 미술관을 나왔다(여긴 기념품도 거의 진주귀걸이 소녀다).


입장료 22,000원으로 큰 거 했다. 친구와 둘이 특갈비탕 먹거나, 삼선짬뽕에 콜라 하나씩 마시거나,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 사고 서점 내 까페에서 아이스라떼 마시거나, 네 명이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돈으로 이날은 앞에 언급한 경우 보다 약 25배 더 큰 행복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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