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같은 편
채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이 ‘안전한 투자’라는 첫인상을 떠올린다. 실제로 국채는 ‘국가가 빌린 돈’이므로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낮아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채권이 단지 ‘안전한 현금 저장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채권은 금융시장의 온도계이며, 포트폴리오에서 리스크를 흡수하고 현금흐름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글에서는 채권의 본질, 작동 원리, 개인 투자자가 실전에서 활용하는 방법까지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채권의 본질은 단순하다. 채권을 산다는 것은 누군가(정부·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약속된 이자(쿠폰)를 받으며 만기에는 원금을 돌려받겠다는 계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변수, 이자율과 신용도가 자리한다. 발행 주체가 안정적일수록 이자율은 낮다. 반대로 신용도가 낮은 발행자는 더 높은 이자를 약속해야 투자자를 모을 수 있다. 이 단순한 균형 위에서 채권의 수익성과 위험이 결정된다.
그러면 왜 개인의 포트폴리오에 채권이 필요한가. 첫째, 채권은 변동성이 높은 자산(주식, 코인 등)의 파도 속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주가가 폭락할 때, 안전자산인 국채로 자금이 몰리면 채권가격은 오르고 포트폴리오 전체 손실을 완화해 준다. 둘째, 채권은 규칙적인 현금흐름을 준다. 특히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당과 달리 매 기간 확정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은 든든한 현금원이다. 셋째, 금리 환경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채권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의 모양은 경기 사이클과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을 반영한다.
하지만 채권도 만능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리스크는 ‘금리 위험’이다. 금리가 오르면 기존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간단한 원리를 떠올리면 된다. 같은 쿠폰을 주는 채권이라도,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 신규 발행 채권의 수익률이 더 좋아지므로 기존 채권의 매력도는 떨어지고 가격은 내려간다. 이 가격 변동성은 채권의 ‘지속기간(DURATION)’으로 대략 측정할 수 있다. 지속기간이 길수록 금리 변동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만기가 긴 장기국채는 단기채보다 금리 상승 시 가격 하락폭이 크다. 따라서 금리 상승기에는 만기를 짧게 가져가거나 채권 비중을 줄이는 전략이 유효하다.
또 하나는 ‘신용 위험’이다. 회사채나 하이일드채(정크본드)는 발행 기업의 사업성·재무상태에 따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부도나면 투자자는 약속된 이자도 못 받고 원금까지 잃을 수 있다. 채권을 살 때는 발행자의 신용등급(예: AAA, BBB 등)을 확인해야 한다.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기대수익은 높지만 디폴트 위험도 높아진다.
세 번째로는 ‘유동성 위험’이다. 직접 매수한 회사채나 일부 국채는 매도하려 할 때 원하는 가격으로 바로 팔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채권 ETF는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어 유동성이 좋지만, 펀드 구조상 추적오차와 운용수수료가 발생한다. 개인 투자자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유동성 수준’에 맞춰 직접 매수할지 ETF를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실제로 채권을 어떻게 사고 활용할 것인가. 우선 투자 수단을 정해야 한다. 초보자에게 권하는 첫 단계는 채권형 ETF나 채권형 펀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은 자금으로 다양한 만기와 등급의 채권에 분산투자할 수 있고, 거래가 비교적 쉽다. 예를 들어 장기 안전을 노린다면 미국 10년 국채 ETF(TLT 등)를, 단기 유동성 확보를 원하면 단기채 ETF(SHY 등)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ETF는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라 평가액이 흔들리므로 ‘만기 보유 시 원금 보장’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직접 매수 방식을 택할 때는 증권사에서 국채·회사채를 매수할 수 있다. 국내 국채는 증권사나 은행을 통해 매수하고, 외국 국채는 해외 브로커(예: Interactive Brokers)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직접 매수의 장점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예정된 이자를 받고 원금을 돌려받는 점이다. 하지만 소액으로 다양한 채권에 분산 투자하기 어렵고, 중도 매도 시 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을 볼 수 있다.
안전성을 조금 더 높이고 싶다면 ‘채권 래더(ladder)’ 전략을 추천한다. 동일 금액을 만기가 다른 여러 채권(예: 1년·3년·5년·7년·10년)에 나누어 투자하면, 금리가 오를 때는 단기 만기 채권이 만기되며 재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금리가 내릴 때는 장기채의 자본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현금흐름이 필요한 개인에게는 만기마다 일정 금액이 돌아오는 래더 전략이 유효하다.
조금 더 전술적 관점에서는 ‘듀레이션 매니지먼트’가 핵심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기가 예고되면 포트폴리오의 평균 듀레이션을 줄여 금리 충격을 완화하고, 금리 인하가 예상되면 듀레이션을 늘려 자본 이득을 노리는 식이다. 이를 위해 채권 ETF(듀레이션이 표시된 상품)를 활용하면 편하다.
세금과 규제 측면도 실전에서는 중요하다. 채권 이자 소득은 일반적으로 과세 대상이며, 세율 및 원천징수 방식은 국가별로 다르다. 또 일부 채권(특히 국채)은 세제 혜택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세부 규정은 거주국의 세법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와 상담하라. 한국에서는 일부 절세형 계좌(ISA, 연금계좌)를 통해 채권이나 채권형 펀드를 보유하면 세금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구매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증권계좌를 연다. 국내 채권·ETF는 대다수 증권사의 모바일 앱에서 검색·매매할 수 있다. 목표 수익률과 만기, 신용등급을 정하고(예: 안정적 현금흐름용 단기 국채 30%, 수익률 보강용 회사채 10%, 달러표시 미국 국채 10% 등) 해당 상품을 매수한다. 매수 후에는 발행체의 신용상태,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인플레이션 지표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인플레이션률이 오르면 채권의 실질수익률(real yield)은 감소하므로 물가 지표를 주시하는 것은 필수다.
마지막으로,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키는 비율은 개인의 생애주기와 위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진다. 은퇴 직전의 안전 추구형 투자자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채권으로 보유할 수 있고, 젊은 투자자는 성장 자산 비중을 넓게 가져가면서도 채권을 통해 일정 비중의 방어막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으로는 ‘100 − 나이’ 룰의 변형을 사용해 주식과 채권을 배분하되, 경제적 생존을 중시한다면 채권 비중을 평소보다 조금 더 높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채권은 심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심심함이야말로 채권의 미덕이다. 시장의 전쟁터에서 채권은 폭풍을 피할 수 있는 방파제처럼 작동하며, 포트폴리오에 꾸준한 숨을 불어넣는다. 투자란 결국 ‘버티는 일’이기 때문에, 채권은 그 버티는 힘을 제공하는 가장 실용적인 도구 중 하나다. 이 도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여러분의 경제적 생존력에 큰 차이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