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시 행동 메뉴얼.
4부. 재난 시 행동 매뉴얼
1화. 재난이 닥치는 순간, 첫 1분 / 10분 / 1시간
재난은 보통 뉴스에서만 본다.
지진은 일본 이야기 같고, 홍수는 남의 동네 이야기 같고, 화재·폭발 사고는 늘 자막으로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정말로 어느 날,
당신이 있는 방에서 천장이 흔들리고,
바닥이 밀려 나가고,
정전이 되며,
휴대폰이 터지지 않고,
비명과 경보음이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때는 더 이상 “타인의 재난”이 아니다.
당신의 몸과, 당신의 집과, 당신의 시간이 직접적으로 침범당하는 순간이다.
이 글은 그 순간부터 시작한다.
“재난이 닥친 직후, 첫 1분 / 10분 / 1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존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초기 1시간은 이후 며칠, 몇 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간이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실제 많은 사고 기록과 재난 보고서는
“초기 몇 분 동안의 행동 차이”가
살고 죽는 갈림길이 되는 경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화의 목표는 단순하다.
재난이 닥쳤을 때,
“멍하니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되는 것.
재난 직후 1분은
“이게 진짜인가?” 하고 머리가 멍해지는 시간이다.
지진이든, 폭발이든, 갑작스러운 정전이든,
사람은 충격과 공포보다 먼저 혼란을 느낀다.
“이게 뭐지?”
“진짜야?”
“곧 끝나겠지?”
이 1분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다.
무슨 재난이든, 다음 세 가지를 우선순위 1번으로 두면 좋다.
1) 즉시 몸부터 보호한다.
2) 머리를 팔로 감싼다.
3) 책상, 테이블 아래, 침대 옆처럼 낙하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위치로 들어간다.
아울러 몇 가지 조심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유리창, 책장, 천장 조명 아래는 피한다.
이건 지진뿐 아니라
폭발, 대형 충격, 건물 흔들림 상황에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리와 상반신을 어떻게 가릴 것인가”
이 생각 하나면 된다.
당장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놀라면 본능적으로 “도망”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건물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고, 연기가 어디서 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도망은 거의 도박에 가깝다.
흔들림이 크면 멈추고, 연기가 보이면 일단 낮은 자세로 몸을 낮추고,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그대로 엎드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낫다.
눈과 귀를 열어둔다.
어디서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지
어디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는지사람들의 비명이나, 경보, 안내 방송이 들리는지
이 모든 것이 이후 행동 경로를 결정하는 정보가 된다.
머리 숙이고, 숨고, 관찰하는 것.
첫 1분은 오직 이 세 가지다.
흔들리는 와중에 엘리베이터로 뛰어가기
스마트폰부터 잡고 영상 찍기
유리창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기
무너지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호기심에 다가가기
재난 초기에 “본능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 상당수가
사실은 치명적인 행동에 가깝다.
지금은, 몸을 낮추고 버티는 시간이다.
판단은 그 다음이다.
1분이 지나고,
흔들림이 잦아들거나,
초기 충격이 멈춘 것 같을 때
비로소 ‘행동’의 단계로 들어간다.
이 10분은
“내가 다쳤는지, 주변이 괜찮은지, 여기를 계속 있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시간이다.
먼저 해야 할 건 멋있게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내 몸 상태 확인이다.
머리, 팔, 다리 움직임에 이상이 있는지
피가 많이 나는 상처가 있는지
숨이 가쁘거나, 머리가 어지러운지
피가 많이 나는 상처가 보이면,
일단 압박이 우선이다.
수건, 옷, 티셔츠 아무거나 잡아
강하게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생명이 연장된다.
생존주의자의 관점은 늘 같다.
“살아 있어야 도와줄 수도 있고,
다음 행동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제일 먼저 자기 몸부터 챙기는 것이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바로 주변 사람들을 본다.
가족, 동료,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
의식이 있는지, 응답이 가능한지
유리 파편, 쓰러진 가구, 화재의 위험이 없는지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이 정도다.
움직일 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머리만 보호하도록 도와준다.
큰 상처가 보이면, 지혈을 도와준다.
연기가 보이면, 가능한 한 낮은 자세로 옮겨준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건
전문적인 응급 구조가 아니라
“몇 분만 더 버티게 만들어주는 조치”다.
하나의 압박, 하나의 체위 변경,
하나의 담요 덮어주기가
그 사람에게는 생과 사의 경계가 된다.
10분 안에, 우리는 한 가지 결정을 해야 한다.
“여기에 계속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가야 하는가.”
이 판단은 완벽할 수 없지만,
대략 이런 기준으로 생각하면 좋다.
[머무르는 쪽이 유리한 경우]
건물 구조가 튼튼하고, 추가 붕괴 조짐이 없다.
화재·가스 냄새·심한 연기가 없다.
밖이 더 위험해 보인다 (유리, 낙하물, 혼란, 폭력 등).
공식 안내(방송, 안내문, 스피커)에서 “당분간 실내 대기”를 안내할 때.
[밖으로 나가야 할 경우]
연기가 점점 진해지거나, 불길이 보인다.
균열, 붕괴 조짐, 계속되는 심한 흔들림이 있다.
가스 냄새가 강하게 난다.
위층/아래층에서 비명, “불이야” 등의 외침이 반복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미 피난 경로를 알고 있는가, 아닌가”이다.
그렇기에 평소에 비상구 위치, 계단 구조, 지상까지의 동선이 머릿속에 있다면,
훨씬 더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무 정보가 없다면,
무리한 이동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생존주의자는,
현관문을 나설 때 한 번씩 비상구 표지판을 흘깃 보는 습관을 들인다.
재난 대응의 절반은
이런 “사소한 사전 정보”에서 갈린다.
여유가 있다면,
그리고 위험하지 않다면,
집 안에서 최소한 이 정도는 확인한다.
가스 밸브를 잠근다.
전기 차단기를 내릴지 고민한다. (화재 위험이 크다면 내리는 쪽에 가깝다.)
수돗물이 아직 나오는지 확인한다.
만약 수돗물이 잠시라도 나온다면,
바로 욕조·물통·페트병에 물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이건 이후 수 시간~수일짜리 생존의 기반이 된다.
1시간이 지날 즈음에는
상황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경보는 꺼졌는지
구조대나 방송이 도착했는지
이웃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건물 바깥은 어떤지
이때부터는
“버티기 모드”와 “이동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집, 사무실, 혹은 특정 실내 공간에 머무르기로 했다면
그 공간을 “임시 거점”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 임시 거점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낙하물, 화재 위험이 적고)
물과 식량을 꺼내기 쉽고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
이때 할 수 있는 일들:
물, 식량, 조명, 응급키트, EDC/GHB 등 핵심 물품을 한 곳에 모운다.
유리창 근처나 균열이 보이는 벽은 피해서 자리 잡는다.
휴대폰 배터리는 아껴 쓰고,
라디오나 비상 방송으로 상황 파악에 집중한다.
가족·동료와 함께 있다면,
서로 역할을 간단히 나눈다.
한 사람은 물자 정리
한 사람은 외부 상황 체크
한 사람은 부상자 관리 등
여기서 중요한 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불안해하는 것”과
“뭔가를 정리하고 준비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의 차이다.
같은 공포를 느끼더라도,
몸을 움직여서 버틸 수 있는 공간과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
결국 훨씬 오래, 안정적으로 버틴다.
반대로,
이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이제는 나가야 한다.
화재가 점점 번지는 경우
건물에 추가 붕괴 조짐이 있는 경우
가스 냄새·폭발 위험이 큰 경우
상층부에 고립된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상황”
이때 기억해야 할 원칙은 몇 가지다.
엘리베이터는 버려라.
계단이 거의 유일한 탈출 경로다.
(이미 알고 있지만, 진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새길 것.)
- 최소 짐만 들고 나간다.
EDC, 작은 GHB, 물 한 병, 조명, 마스크 정도.
- 캐리어, 큰 가방, 귀중품 상자에 욕심을 내다가
탈출 속도를 늦추는 일은 피해야 한다.
- 연기가 있다면, 아래로 낮추고, 벽을 잡고 이동한다.
젖은 수건, 옷조각이라도 코와 입을 가릴 수 있으면 좋다.
-시야가 안 보일수록, “손으로 벽을 짚고 한 계단씩 내려가는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 “군중의 흐름”에 완전히 몸을 맡기지 않는다.
속도를 맞추되, 밀치거나 밀려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낮춘다.
너무 밀집되면, 한두 계단 멈춰 서서 간격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동 모드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이유가 있을 때만 선택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재난 초기 1시간을 나누는 기준은 이렇다.
첫 1분 –
몸을 지킨다. 머리를 가린다. 움직이지 않는다.
첫 10분 –
몸과 주변을 점검하고,
머무를지 나갈지, 이 공간의 상태를 판단한다.
첫 1시간 –
머무르기로 했다면 거점을 만들고,
나가기로 했다면 최소 짐으로 이동한다.
결국 이 모든 판단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다.
“지금 이 행동이
나의 생존 확률을 올리는가, 내리는가.”
공포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군중의 속도에 끌려가거나,
SNS에서 떠도는 정보에 휘둘리거나,
타인의 표정에 의존하게 된다.
생존주의자의 목표는 그보다 조금 더 단순하다.
내 몸을 지키고
내 옆 사람을 하나라도 더 지키고
다음 1시간, 다음 하루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
4부 전체는
이 1시간 이후의 이야기,
지진·화재·홍수·정전·전쟁과 같은
각 상황에 맞춘 구체적인 행동들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세부 상황 위에
언제나 공통으로 깔려 있는 건, 바로 이 첫 1시간이다.
재난은 항상 갑자기 찾아온다.
그러나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리 결정해둘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이,
그 결정을 준비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