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5화, 구조/지원이 올 때 까지 버티는 요령

4부. 재난 시 행동 매뉴얼.

by 눕더기

4부. 재난 시 행동 매뉴얼
5화. 구조/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요령






재난의 한가운데서,
세상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지진이 지나갔지만 건물은 여전히 삐걱거리고,
폭우는 그쳤지만 물은 아직 빠지지 않았고,
경보는 멎었지만, 구조대는 보이지 않는다.


뉴스 속 자막은 늘 이렇게 말한다.
“구조대가 출동했습니다.”
“곧 지원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맞닥뜨리는 순간은
그 문장과 문장 사이,
“와 줄 때까지의 시간”이다.


이 5화는 바로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다.
극적으로 구조되는 장면이 아니라,
그 전까지 어떻게 버티느냐에 대한 기술과 마음가짐을 정리해 본다.



1. “기다림”은 행동이다 – 수동적 생존 vs 능동적 생존



대부분 사람들에게
“구조를 기다린다”는 말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곧
서서히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방치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생존주의자의 관점에서
기다림은 결코 수동적 행위가 아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몸과 자원을 관리하고,


위험을 줄이고,


구조가 왔을 때 무사히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버티기”에 포함된다.


또한 기다림의 기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몸을 지키는 것


자원을 관리하는 것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구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것


이 네 가지를 차례로 살펴보자.



2. 첫째, 몸을 지키는 것 – “지금 당장 더 안 다치게”




구조가 오기 전까지의 시간은
“살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다치면 안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1) 당장 해야 할 “세 가지 체크”


재난 직후,

당신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지금 안전한 장소에 있는가?


나는 지금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가?


내가 있는 곳은 추가 붕괴·침수·화재 위험이 없는가?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이 불분명하다면,
구조를 기다리기 전에
최소한의 이동과 정리를 해야 한다.


건물 내부라면:
균열이 심한 벽, 떨어질 것 같은 천장, 유리창 가까이에서 벗어난다.
계단참, 구조물 기둥 주변, 비교적 튼튼한 구조를 가진 곳을 찾는다.




실외라면:
전선, 간판, 나무, 가로등, 유리창 아래를 피한다.
산사태·추가 낙석 가능성이 있는 비탈, 절벽 아래도 피한다.




침수 환경이라면:
물이 빠질 만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보다
“더 이상 물이 차오르지 않는 높이”를 먼저 확보한다.
물살과 하수구, 맨홀 주변을 피한다.



2) 부상 관리 – 완벽하진 않아도 “더 나빠지지 않게”


자신이 다쳤을 때,
혹은 옆 사람이 다쳤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기적적인 응급 처치가 아니라
“악화 방지”다.


피가 계속 난다면
깨끗한 천이나 옷으로
상처 위쪽을 압박해서 지혈을 한다.
(가능하면 심장보다 높은 위치로 올린다.)



부러진 것 같으면
가능한 한 그 부위를 움직이지 않게 하고,
주변 판자나 딱딱한 물건으로 임시 부목을 댄다.



의식이 흐려지는 사람은
옆으로 살짝 눕혀 기도를 확보하고,
호흡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중요한 건,
인터넷에서 본 화려한 응급술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구조대가 올 때까지 피해를 더 키우지 않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3. 둘째, 자원을 관리하는 것 – 물, 열, 에너지



어떤 재난이든 시간이 길어질수록
결국 문제는 세 가지로 모인다.

마실 것 (수분)


버틸 것 (체온)


움직일 것 (에너지)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이 세 가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 여부가 갈린다.


1) 물 – “조금씩, 오래”


물은 생각보다 빨리 떨어진다.
특히 재난 직후에는
긴장 상태 때문에
갈증을 더 심하게 느낀다.


가지고 있는 물을 한 번에 마시지 말고,
15~30분 간격으로 조금씩 나눠 마신다.




여러 명이 함께 있다면,
각자 가지고 있는 물을 한곳에 모으지 말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파악만 하고,
실제 물은 각자 분산해서 보관한다.
(우발적 분실·파손에 대비)




오염 가능성이 있는 물밖에 없다면,
바로 마시기보다는
가능하면 끓이거나,
물티슈·옷감 등으로 큰 이물질이라도 걸러낸다.
“안 마실 수 없다면,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향”으로.



2) 체온 – “젖지 않게, 바람을 막게”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옷이 젖어 있다면,
체온은 생각보다 빨리 떨어진다.


저체온은
극단적인 추위가 아니어도 온다.


가능한 한 젖은 옷부터 벗거나, 짜서 말린다.
마른 옷이 없으면,
젖은 층 위에라도 비닐, 담요, 여분의 옷을 덧대어 바람을 막는다.



바닥에 바로 앉거나 눕기보다는,
옷, 가방, 박스, 신문지 등을 깔고
몸과 바닥 사이에 한 겹이라도 단열층을 둔다.




여러 명이 함께 있다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거나,
담요를 함께 두르고 체온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추위는 조용히 힘을 빼앗는다.
“괜찮겠지” 하고 방치하는 순간
판단력부터 무너진다.


3) 에너지 – “움직이되, 소모하지 말 것”


버티는 동안 몸을 완전히 가만히 두면
근육이 굳고,
갑자기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반대로
불안해서 계속 움직이면
체력과 수분이 급격히 줄어든다.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한 원칙은 간단하다.


(1) 주기적으로 몸을 풀되,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손목, 발목, 목, 어깨, 무릎을
가볍게 돌려주고 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2) 에너지 소비가 큰 행동, 예를 들어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옮기거나,
큰 소리로 오래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은
“정말 필요할 때”를 위해 아껴둔다.




(3) 식량이 적다면
“조금씩, 천천히, 자주” 먹는 것이
한 번에 먹고 버티는 것보다 낫다.



4. 셋째, 마음을 지키는 것 – 시간에 이름 붙이기


구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몸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대부분 마음이다.


“우리, 버려진 거 아닐까?”


“누가 일부러 안 오는 거 아니야?”


“여기서 그냥 죽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사람은 쉽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무리하게 탈출을 시도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선택하고,
서로를 탓하고 싸우게 된다.


이때 도움이 되는 건,
거창한 긍정 사고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에 구조를 부여하는 것”이다.



1) 작은 루틴 만들기

한 시간을 그냥 버티는 것과,
“10분마다 할 일을 정해둔 상태로 버티는 것”은
체감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매 10~15분마다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물·부상·체온 상태를 간단히 확인한다.


30분마다
외부 소리, 구조의 징후, 상황 변화를 한 번씩 체크한다.


1시간마다
남은 물과 식량, 배터리를 다시 계산해본다.



이렇게 “반복 가능한 작은 루틴”을 만들면
마음이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묶어둘 수 있다.



2) 말과 표정을 관리하는 것


위기 상황에서는 말 몇 마디가 집단의 공기를 바꾼다.


“이제 끝난 거 아니냐.”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왜 우리한테만 이런 일이…”


이런 말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절망을 강화하는 주문에 가깝다.


반대로,

“조금만 더 버티자, 지금까진 잘 버텼다.”


“지금 상태면 구조 오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어.”


“한 시간만 더 버티면 또 한 시간 버틸 수 있다.”


같은 말은
기적을 만드는 주문은 아니지만,
최소한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는 말이다.


리더십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같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조금 더 단단한 말,
조금 덜 절망적인 말을 고르는 것.


그게 바로 위기 속 리더십이다.



5. 넷째, 구조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법



버티기와 동시에
구조를 향한 “신호”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계속 소리를 질러 목을 상하게 하거나,
배터리를 다 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1) 에너지 효율적인 구조 신호


일정 간격으로
짧고 강한 소리를 낸다.
(호루라기, 파이프 두드리기, 벽 치기 등)
계속 두드리는 것보다
간헐적으로 규칙적인 신호가 더 눈에 띈다.



손전등이 있다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일정한 패턴으로 켜고 끈다.
(예: 3번 짧게, 3번 길게, 3번 짧게 – SOS 패턴)




휴대전화는
배터리를 아껴두었다가
“통신이 터지는 구간”에서
짧게 사용한다.
(비행기 모드로 두었다가 일정 시간마다 잠시 켜 보기)



구조대 입장에서
가장 잘 잡히는 신호는
반복적이고, 일정한 패턴을 가진 것들이다.


2) 위치 정보와 신원 정리


혹시라도 의식을 잃거나,
따로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이름, 연락처,
가족 연락처, 기저질환 등을
작은 종이나 메모지에 적어
주머니나 옷 안쪽에 넣어두는 것도
일종의 “구조 준비”다.



여러 명과 함께 있다면,
각자의 이름과 상태를
간단히 적어두는 것도 좋다.
나중에 구조대가 왔을 때
빠르게 상황을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다림의 끝은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때를 위해
몸만이 아니라
정보도 함께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6. 혼자 버틸 때 vs 함께 버틸 때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완전히 혼자인 경우


가족, 동료,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경우


각 상황마다
신경 써야 할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


1) 혼자일 때


생각이 너무 안 좋은 쪽으로 흐르기 쉽다.
이때는 의도적으로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예: 몸 풀기, 물 마시기, 주변 정리하기 등)


구조 신호를 주기적으로 내되,
체력 소모가 심한 행동은 피한다.


“내가 틀림없이 발견될 것”이라는 확신을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발견될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도움이 된다.



2) 함께 있을 때


서로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 좋다.
누군가는 자원 관리,
누군가는 주변 파손물 정리,
누군가는 구조 신호 담당 등.


아이, 노인, 다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이라도 맡기는 것이 좋다.
아무 역할도 없는 사람은
가장 빨리 무력감에 빠진다.


의견이 갈릴 때는
“지금 당장 생존에 더 직접적인 행동”을 우선한다.
(예: 구조 신호 vs 먼 곳으로 이동 시도 →
지금 체력과 위험을 고려해 냉정히 판단)



함께 있다는 것은
위험을 나누는 동시에,
버티는 힘도 나누는 일이다.

문제는 그 힘이 어떻게 쓰이느냐다.



7. 맺음말 – “구조가 오는 시간”은 우리가 사는 시간이다



구조/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일은 언뜻 보면
그저 “도움이 올 때까지 버티는 수동적인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작은 선택을 해 나가고,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함께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다시 살아갈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매우 능동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여러 편을 거치며 강조하여 말하지만,

생존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재난을 완벽하게 대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재난이 왔을 때, 그 한가운데에서
“이 시간도 여전히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버티는 사람.


몸을 지키고,
마음을 지키고,
옆 사람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구조가 왔을 때
가장 또렷한 눈으로
다시 일어나서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버틴다는 것은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살겠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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