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재난 시 행동 매뉴얼
4부. 재난 시 행동 매뉴얼
4화. 대규모 폭력 사태·소요·전쟁·테러
어떤 재난은 “자연”에서 오고,
어떤 재난은 “시스템”에서 오고,
어떤 재난은 “사람”에게서 온다.
지진, 홍수, 태풍은 위험하지만
적어도 우리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반면,
폭력 사태, 소요, 전쟁, 테러 같은 재난은
의도와 감정, 증오와 공포가 뒤섞인 채 다가온다.
그래서 이들은 훨씬 더 다루기 어렵다.
예측이 안 되고,
단번에 상황이 악화되며,
“누가 적이고, 누가 안전한지”조차 불분명해진다.
이 화에서는
이 네 가지를 세세하게 구분하기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는 큰 틀 아래 놓고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무엇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본다.
폭력 사태나 소요, 전쟁, 테러가 터질 때
겉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매우 다양하다.
도심에서 갑작스레 시위와 충돌이 벌어지거나
특정 지역에서 총성이 들리거나, 폭발이 나거나
군용 차량이 도로를 통제하기 시작하거나
방송과 문자, 경보 사이렌이 동시에 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안쪽 구조는 의외로 비슷하다.
정보 공백 – 정확한 상황을 아무도 모르는 시간
감정 폭발 – 분노, 공포, 증오, 패닉이 한꺼번에 터지는 시간
힘의 과시와 통제 – 군·경, 조직, 집단이 통제를 시도하는 시간
임시 질서 형성 – “누가 말이 통하고, 어디까지 안전한지”가 정해지는 시간
생존주의자 관점에서 중요한 건
누가 옳은지,
어떤 진영이 이기는지가 아니다.
“그 혼란의 안쪽에 휘말리지 않고,
어디까지나 ‘살아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
이게 전부다.
먼저, 비교적 규모가 작은 폭력 사태나 소요 상황을 떠올려보자.
시위 도중 경찰과 충돌
경기장, 축제, 집회 인근에서의 집단 싸움
특정 이슈로 인한 급작스러운 군중 대립
이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위치는
항상 “그 한가운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폭력 상황에서 ‘구경꾼’이라는 지위는
법적 현실이나, 물리적 현실 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폭력이 폭발하기 전에는
늘 작은 징조가 있다.
고성이 오가고
사람들의 동선이 꼬이고
갑자기 한쪽으로 인파가 몰리고
경찰·경비 인원이 급하게 증원되기 시작하고
주최 측 안내 방송이 잦아지고 톤이 올라가고
이때 해야 하는 건 구경이 아니라 후퇴다.
“좀 있다가 정리되겠지.”라는 생각은
생존 관점에서는 거의 항상 손해다.
불길한 기색이 보이면,
“재미있는 현장”이 아니라 “일찍 떠나야 할 곳”으로 인식해야 한다.
도심에서는
골목, 지하, 좁은 통로, 계단, 다리 위 같은 곳에서
밀집 인파에 휩쓸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한 가지 원칙은 간단하다.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거나,
목소리가 커지는 장소를 피하라.”
폭력은 사람을 향해 터진다.
따라서 인파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급격히 줄어든다.
미리 떠나지 못해
이미 소요 상황 한가운데에 있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목표는 단 하나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조용히, 그 공간에서 빠져나가기.”
구체적인 행동은 이렇다.
군중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힘으로 역행하려 하면 오히려 넘어지고 짓밟힐 수 있다.
주변 벽, 난간, 구조물을 따라 이동한다.
한가운데보다 가장자리가 빠져나가기 쉽고,
넘어졌을 때 붙잡을 것도 더 많다.
누가 어떤 구호를 외치고
누가 어느 쪽 편인지에 신경 쓰지 말고,
“출구, 골목, 지하철역 입구, 큰 도로” 쪽으로 향한다.
헬멧, 방패를 든 인원과 직접 마주치지 않도록
그와 엇갈리는 방향을 고른다.
그 앞이 곧 “충돌의 전면”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찍히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의 깃발을 들거나,
특정 집단의 상징물을 몸에 두르거나,
스마트폰을 들고 가까이서 촬영하며
사건의 일부가 되는 것.
이 모든 건 생존 관점에서는 권장되지 않는다.
폭력 사태에서는
“내 의도”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나는 그냥 찍고 있었다고 말해도,
상대에게 나는 그저
“상대 진영의 증거를 모으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고,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하는 걸 피한다.
하지만 상상을 피하는 것과,
현실이 오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생존주의자로서 전쟁을 상상할 때,
우리가 서 있는 입장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고, 지휘관도 아니다.
“전쟁이 나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전쟁·무력 충돌이 시작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서
“설마 진짜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은 보통
뉴스 한 줄로 시작되지 않는다.
군사적 긴장 고조
대피령, 민방위 경보, 공습 경보
특정 지역의 통제 강화
공항, 항만, 철도의 일시 중단
이런 것들이 겹쳐 나타난다.
이때 생존주의자에게 중요한 건
“정치적 의견”이 아니다.
“이 정도 신호가 쌓이면
나는 계획 A를 발동한다.”
이 기준을 평소에 세워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습경보가 정식 발령되는 시점,
정부 차원의 공식 대피 안내가 나오는 시점,
육안으로 군사적 움직임(차량, 통제 등)을 확인한 시점
이런 경우,
어디로 대피할지,
집과 직장 중 어디를 우선 목표로 삼을지,
가족은 어디서 만날지 등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의 행동 원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장하지 않는다.
어떤 의도든, 무장한 민간인은
여러 쪽 모두에게 위협 요소로 보인다.
특히 총기류는 절대 금물이다.
통제선을 넘지 않는다.
군·경이 설치한 검문소, 통제선, 군사시설 주변을
호기심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욕구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감정이다.
눈에 띄는 행동을 피한다.
특정 군용 장비와 비슷한 복장,
드론·카메라 사용,
군사시설 촬영 등은
오해를 부르고, 그 오해는 무엇보다 비싼 당신의 목숨으로 치뤄야 할 수도 있다.
정보·소문 유포를 조심한다.
확인되지 않은 전황, 유언비어,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을
메신저나 SNS로 무심코 퍼 나르는 행동은
실제 폭력이나 보복을 부를 수 있다.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은
가능한 한 “중립, 비표적, 비전투원”으로 남아야 한다.
여기에는 이념이나 용기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살아남는 기술의 문제가 걸려 있다.
테러의 가장 큰 특징은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의도적으로 민간이 밀집한 장소를 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 모르고
사건 직후에도 범인·동기·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테러 상황에서의 생존은
“사전에 막는 것”보다는
“직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가깝다.
폭발, 총성, 칼부림, 차량 돌진 등
어떤 형태든 테러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1) 거리 벌리기
가능한 한 신속하게
위협의 방향 반대 쪽으로 이동한다.
“상황을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는
여기서 가장 큰 적이다.
2) 장애물 확보
자동차, 기둥, 벽, 구조물 뒤편으로 움직인다.
특히 흉기 난동, 총기사건이라면(외국 여행중 맞딱뜨린 상황 등의 경우)
공격자와 일직선상에 서지 않도록 한다.
3) 시야 확보와 낮은 자세
과밀한 인파 속에서 비틀거리기보다,
상황을 흘깃이라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며 움직이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서는 몸을 낮춘 채 이동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테러의 순간에는
경찰, 군, 보안 인력이 “적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표적에서 벗어나고, 스스로를 공격자처럼 오인받지 않는 것”이다.
테러 직후에는 종종
2차 피해가 발생한다.
1차 공격 이후 사람들의 동선이 몰리는 지점을 노리거나
구경하러 몰려든 인파를 향해 추가 공격이 들어오거나
그래서 다음 기준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1) 현장을 최대한 빨리 벗어난다.
아울러 만일 정말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도와야 하는 사람”의 범위를
‘내가 직접 물리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한정한다.
(예: 바로 옆에서 쓰러진 사람의 지혈, 구조 요청 등)
(2) 수상한 물건, 가방, 상자를 만지지 않는다.
대신 위치를 기억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경찰·구조대에 정보를 전달한다.
영상 촬영을 위해 머무르거나
소셜미디어에 올릴 ‘콘텐츠’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를 버린다.
생존 관점에서는,
그 순간 머무르는 것이 리스크를 키우는 행동이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주되,
“내가 또 하나의 희생자로 추가되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냉정하지만 중요한 생존의 기준이다.
폭력 사태, 전쟁, 테러 상황에서는
눈앞의 위험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후에도 정신적 후폭풍이 길게 이어진다.
“내가 그때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라는 자책
“그 사람들을 왜 도와주지 못했을까”라는 죄책감
특정 집단·국가·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
다시는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감각
생존주의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건,
단순히 재난을 이겨내는 근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잘 돌보고,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는 마음의 기술이기도 하다.
몇 가지는 분명히 말해둘 수 있다.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사실이,
곧 당신이 부족했거나 잘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도와줄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 전체를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무너뜨려야 할 대상은
구체적인 사람이나 집단이 아니라,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되도록 방치하는 구조와 무지”이지
자신의 정신 그 자체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생존이다.
정신적 후유증, 트라우마, 불면, 공황 증상은
“참아야 할 것”이 아니라
“치료해야 할 상처”다.
대규모 폭력 사태, 소요, 전쟁, 테러.
이 네 가지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영웅이 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칼을 들고, 총을 들고,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장면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려는 생존주의자는
그런 의미의 사람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주의자는,
먼저 떠나는 사람,
먼저 숨는 사람,
먼저 몸을 낮추는 사람,
먼저 무기를 버리는 사람,
먼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가장 힘든 선택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분노와 증오는
마치 강한 술처럼,
그 순간의 고통과 공포를 잠깐 잊게 해 준다.
그러나 끝나고 나면,
그 술값은 너무 비싸다.
대규모 폭력 사태·소요·전쟁·테러의 시대에
생존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나는 가능하면 싸우지 않겠다.
나는 끝까지 살아남겠다.
나는 다시 일상을 지어 올리겠다.”
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되뇌는 일이다.
그 결심을 한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반대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지켜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