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록: 10대의 사유일기 - 10

우울증의 한 단면에 대한 고찰

by 이상우

나는 살면서 ‘우울하다’라는 감정을 꽤나 많이 느낀다. 그리고 이 정도는 꽤나 심했어서 한때는 정신과 약을 안 먹으면 살아가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증에 대해서, 또한 조금이나마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우리가 ‘우울하다'라는 감정을 느낄 때는 꽤나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 한 가지로 간추려 보겠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시선, 행동 등이 두려워 그것을 피하고 그에 의해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이럴 때 우울감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경우가 단기적으로만 발생한다면 웬만하면 우울증으로 까지 가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제는, 이러한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환경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게 된다는 것에, 또한 굉장히 오래도록 ‘지속’될 때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울증의 발생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삶의 중심이었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동질감을 느꼈기에 애초에 우울증과 관련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고, 애초에 제대로 인지하지를 못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고, 애니와 만화가 삶의 중심이 되고(나는 이것에 대해 후회 따윈 하지 않는다. 애초에 난 이렇게 될 운명이었으니, 후회할 게 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마스크를 쓰는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남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는 즉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럴까? 예전보다 여러 감정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너무나 강하게 내 마음을 조여왔다. 사람들의 시선, 생각들에 지나치게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냉정함을 잃었을 때 상기하라. 무너져 내린 처절한 네 모습을’ 참조).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괴로움이었다. 그리고 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통의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학교에 있을 동안 책을 더 열심히 읽어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애들의 큰 소리로 떠드는 목소리, 다소 불쾌함이 느껴지는 대화의 주제들. 이런 것들은 나의 예민해져 버린 내면을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 핸드폰을 못 쓰게 해서 모르는 어휘를 못 찾아본 것도 한몫했고. 나는 절망을 느꼈다. 우울감을 느끼는, 무력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절대로 바꿀 수 없을 것 같다는 필연성’에 사로잡힌 순간. 나는 우울증에 잠식 돼버렸다. 나는 고3의 첫 등교 때 학교를 뛰쳐나왔다. 이후의 이야기는 전에 다뤘으니 생략하겠다.

헤르만 헤세는 본인의 저작, [데미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선, 그리고 - 내 생각으론 - 우울감과 같은 ‘정신적 외로움’을 극복해 내기 위해선 자신을 감싼 알을 깨트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전엔 그저 추상적이게만 느껴졌던 말이 이제는 사뭇 내 가슴을 짓누른다. 내 방식대로 이 말을 해석해 보면 실상은 이러하다. 알 속에 있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권태감에 사로잡히고 마치 홀로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는 여행자처럼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고독한 존재자와 같다. 그리고 이때 알을 깼다는 것은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알에 의해 봉인된 진정한 자아를 해방하는(어쩌면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자아를 해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본인에 대한 확신,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자기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를 개방한 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이미 어떠한 것에도 꺾이지 않는 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의 자아가 절대적인 행동의 기준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아에 대한 고찰은 나중에 따로 글을 작성해도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자신의 알을 깨고, 자아를 개방하는 것은 우울증을 극복해 내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육은 어떠한가. 학생들의 자아를 개방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생각을 계발시키고, 그들만의 직관(생각의 틀)을 만들어주는 교육은 제대로 하지도 않을망정 오히려 이미 생각이 완성된 사람들의 지식을 들여와 가차 없이 뇌에 박아 넣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머리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자신의 생각과 직관을 개발시키기 힘든 상태가 돼버린다. 즉, ‘내가 내 자신이 아니게 돼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우울한 학생들을 줄이긴커녕 더 늘리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실현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도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고3 첫 등교. 그때 내가 반에 들어가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온 이유를 이젠 알 것도 같다. 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진정한 나 자신을 되돌려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과거의 기록: 10대의 사유일기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