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아에 대해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의 잠들어 있는 히어로다.
모든 사람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이 없다. 그도 그럴게 우리 안의 히어로를 깨우기 위해선 생각을 깊이 있게 만들고, 확장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을 위해선 많은 시간,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한 명의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최고의 프로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이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만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곳에 서 있을 미래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많은 경험을 쌓고, 농구선수로서의 신념, 자부심, 실력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가 겪었던 시행착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그는 농구선수로서의 진정한 자아에 점점 발을 내디디는 것이다.
이렇듯 내면의 히어로를 깨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적인 예시고, 실상은 더 혹독하다. 그렇지 않은가? 이 농구인에겐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하게 있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강력한 동기부여 또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보통의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확실히 ‘나는 이것을 꼭 해야 해!’라는 것도 크게 없고, 당연히 그에 따른 동기부여의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그들은 끌려가고 묶이는 삶은 살아갈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나이에 따라 하는 일을 하고, 자신의 주체성이 확실치 않으니 사람들의 시선에, 말에 휘둘리고 말이다.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떤 걸 할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묶이고 끌려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아까 농구선수 예시를 들 때 ‘농구선수로서의 진정한 자아’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농구선수는 그저 가면에 불과하다. 가면을 벗기면 남는 것은 ‘나’ 뿐이다. 그저 ‘나’를(예시를 든 ‘나’가 농구선수가 되는 것을 자신의 ‘인생’처럼 여기니까) 농구선수에 투영한 것일 뿐이다.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나’라는 존재자가 세상에 떨어져 하고 싶은 구체적인 일을 못 찾아도 괜찮다. ‘나’라는 진정한 자아를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만의 성격,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남들과는 다른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점을 책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또는 갖가지 경험들을 통해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아를 자극한다. 즉, 잠자는 히어로의 잠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히어로는 기다렸다는 듯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진정한 자아가 개방된 것이다. 히어로는 거침없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들 앞에 선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왔다”라고. 너무나도 짧은 한마디. 하지만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열광한다. 그들도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이 자가 내 공허한 부분을,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을.